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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하나

수세미꽃이 있는 풍경 | 소금 성자 | 따뜻한 사진 | 물의 뺨을 쳤다 | 악착, 보살 | 꽃밥 | 끓는 사과 | 수박의 흥분 | 맛 | 그믐치 | 우수서 경칩까지 | 동백에 사무치다 | 비단벌레차를 기다리며 | 지나간다는 것 | 아, 시다 시 | 어머니의 자리 | 별이름 루婁에 대하여 | 장자의 그릇 | 청와靑蛙 선생 일 획이 더해져 | 미궁의 시詩 | 미궁에서 찾아온 시詩 | 꽃, 능소 | 바다의 적바림·11 | 바다의 적바림·12 | 바다의 적바림·13 | 바다의 적바림·14 | 바다의 적바림·15 | 돌고래는 사람의 칭찬에 춤추지 않는다 | 바다에서 사람의 자리 | 고래, 52 | 추도 메기 | 대구 떡국 | 씨 없는 나라 | 접시꽃이 걸어간다 | 고추가 달린다 | 환경적 시론 | 거짓말 | 미안하다_울다 | 죽은 친구에게 편지가 왔다 | 호모패스워드쿠스 | 멸치똥 | 시인의 견적 | 양주공원 주변 | 묘묘杳杳한 밤 | 제주 감귤과 싸우다 | 붉어, 먼나무 | 종고모 | 다시, 월영동 449번지 | 핸드크림 | 기차가 온다 | 낡은 여행가방 | 피니스테레Finisterrae에서 지다 | 보다나트 스투파 가는 길 | 그리운 동쪽 | 돌아 가다면 | 마침표

해설 | 서정의 궁극-구모룡
저자 소개
저자 : 정일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를 졸업했다. 1984년 『실천문학』 제5권에 신인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1986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다.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포항국제동해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시힘’과 ‘작은詩앗·채송화’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골마을에서 어린이를 위한 동화와 동시를 쓰며 경남대학교에서 시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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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기다림과 그리움의 미학

첨성대 앞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비단벌레차를 기다린다 온다는 시간 지났다 나는 매표원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다려본 지 오래다 기다리는 동안 계림의 황금 가을이 나에게 온다 아름다운 호사다 비단벌레차가 천년 전에 출발했든 천년 후에 도착하든 조급하지 마라 신라가 나에게 오는 데 천년이 걸렸다 오늘 내게 중요한 것은 너를 기다리는 일 내 손에 탑승권이 있으니 만족한다 비단벌레차가 오고 있나 보다 황남동 쪽 어디에서 푸른 사랑의 섬광 번쩍하며 눈부처로 내려앉는다. _「비단벌레차를 기다리며-경주 남산」, 전문

이 시집은 ‘기억’과 ‘그리움’이 감각의 근원을 이룬다. 정일근 시인은 1980년대 ‘새로운 서정’의 지역문학운동을 개진한 바 있는데, 이 ‘새로운 서정’에는 세상을 바꾸자는 시인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구모룡 평론가는 1990년대 이후 정일근 시인은 삶의 거처가 옮겨지고 그의 시 세계에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였다. 구체적인 장소가 매개가 되어 시인의 ‘움직이는 시’ 세계 또한 순례의 과정을 보이는 것이다. 「비단벌레차를 기다리며-경주 남산」에서 드러나듯 기억은 기다림과 다가오는 것들, 그리고 저 너머 세계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을 안고 화자에게 돌아온다. 「고래, 52」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고래보호운동가인 그가 ‘고래’를 유토피아의 표상으로 생각하여 숭고한 아름다움을 그려낸 시다.

▶ 삶과 죽음을 껴안는 생명의 긍정성

우수서 경칩까지 같이 걸어와 보니, 아니다/ 응달에 쑥 수북하다, 산수유꽃 터진다/ 저건 어느 땅 한줌이든 버리지 않는/ 은현리의 가르침, 부지런히 볕 찾아/ 청솔당 문 앞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새마다// 봄까치꽃, 별꽃 스스로 지천이다. _「우수서 경칩까지」, 부분.

‘움직이는 시’로서 정일근 시인의 시세계가 압축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시인이 거주하는 장소인 ‘은현리’이다. 그는 “은현리 유월, 꽃 한 송이 피운 뒤에 또 한 송이 피우며 접시꽃이 걸어”(「접시꽃이 걸어간다」)가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며, “어느 땅 한줌이든 버리지 않는/ 은현리의 가르침”(「우수서 경칩까지」)을 들며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생동하는 자연사물의 움직임을 오로지 시인의 경험에 의존하여 서술함으로써 시적 공감을 획득할 뿐 아니라, 시적 화자와 다양한 의미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자연사물의 인과관계를 특유의 서정성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 삶의 미궁에 놓인 궁극의 시

시인이 제 피 찍어 시 한 편 쓰지만/ 마침표는 죄의식처럼 찍어야 한다/ 이 시가 끝났다는 시의 마침표는 되겠지만/ 그건 시인의 마침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는 시인과 함께 살아 있는 생물이어서/ 시인의 눈물로 고쳐지고 또 고쳐지며 시는 살아 있어야 한다 _「마침표」, 부분.

이 시집은 정일근 시인이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등단 3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었다. 따라서 정 시인이 갖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과 철학이 보다 압축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이는 “자갈밭에 제 몸 굴려가며 시의 뼈를 깎아야 한다”(「별이름 루婁에 대하여」), “미궁의 시”(「미궁의 시詩」), “미궁에서 찾아온 시”(「미궁에서 찾아온 시詩」)와 같은 시어들에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나 시인은 시인의 수행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소금 성자』처럼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이 “소금”처럼 읽는 이에게 스며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삶의 미궁에서 궁극의 시를 찾는 과정이 빚는 그의 ‘새로운 서정’은 80년대 이래 여전히 역사성을 가지고 전진할 것이며, 이후로도 끊임없는 운동성을 갖고 지속할 것이다.

책 속에서

그 낡은 가방 속 옛 상처 탈탈 털어 다 비우고, 작은 진공관 라디오, 공책과 연필, 편지와 그 편지가 닿을 주소, 참, 자네에게 줄 시집 한 권,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리, 나는 그 낡은 여행가방을 들고 시애틀행 비행기에 오르겠네
---「낡은 여행가방」중에서

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
소금을 신이 내려주는 생명의 선물로 받아
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
자신의 당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소금 성자」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고래가 있다, 조심해라
사람이 사람에게 겨누는 작살이 그 뒤에 숨어 있다
---「바다에서 사람의 자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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