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믿음과 사랑의 삶 : 김순전의 생애와 신앙
한혜경/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1. 글을 시작하며 : 천국의 문을 열다
시작은 작은 공책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기록했는지 알 수 없다. 언제 기록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런 공책이 있는지도 몰랐다. 1988년 12월, 유정은 할아버지 유홍 유홍柳鴻(1899~1988)은 일찍 개화한 부친의 인도로 서울 중앙학교를 거쳐 현 서울대 공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했다. 중앙학교 재학 중 3·1운동에 참여했고,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 중에도 항일민족운동을 계속했다. 졸업 후 은사인 김성수 선생의 권유로 경성방직회사에 입사하여 9년간 재직, 근대공업의 기초를 닦고 방직 공업 발전에 기여했다. 해방 후 반탁반공 활동을 했고 건국 사업의 일익을 담당했다. 1950년 2대 국회의원, 1958년 4대 국회의원, 1963년 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데, 사심 없고 사욕 없고 사리 없는 삼무사三無私의 정치 이념으로 일관했다. 권세에 영합하지 않고 ‘의리분별義利分別’을 좌우명으로 삼아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1927년 김순전의 둘째 딸인 서현자徐賢子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 4녀를 두는데, 장모님 김순전을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결혼 7년 후 영등포로 이사 온 후부터 김순전과 함께 살면서 장모님의 공책을 금고 맨 아래에 소중하게 보관할 정도로 유홍의 장모님 사랑은 특별했다. 유홍의 회고록 『暮歲의 회고』, 민족정기출판부, 1989 참조. 안방의 금고 맨 아래에 놓여 있던 서류 봉투. 겉에는 “김순전 할머님 유물. 영구히 보관할 일”이라 쓰여 있고 안에는 자그마한 공책 하나와 아이의 서툰 글씨체로 ‘유선자’라는 이름이 쓰여진 숙제 공책이 있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공책은 검은 가죽을 표지로 하여 실로 꼼꼼하게 꿰매어 만든 것으로, 표지를 여니 또박또박 정성 들여 쓴 4·4조의 시 구들이 정연하게 누워 있었다. 종이가 빛이 바래 희미해진 글자도 있고 잘 보이지 않는 글자도 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신심을 다해 꾹꾹 눌러쓴 글들이 176쪽에 이른다. 이 기록은 주제에 따라 모두 9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1. 천국, 2. 성자, 3. 고난, 4. 권고, 5. 방탕자의 자탄, 6. 방탕자의 회개, 7. 심판, 8. 지옥, 9. 천국의 제목이 붙어 있다. 내용은 성서에 기반한 것으로, 연관된 성경 말씀을 함께 기입해 놓았다. 또 다른 공책은 문구점에서 살 수 있는 공책으로, 손녀 유선자가 쓰다가 내버린 공책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역시 또박또박한 글씨로 부모와 어린 시절,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산문 형식의 글이 기록되어 있다.
이 두 권의 공책은 유홍의 장모님인 김순전 전도사의 공책이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유홍의 손자 유정柳晸(유홍의 장남인 유영柳泳의 장남)은 그것을 보고 감동해, 언젠가는 증조모의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세 살 무렵 증조모가 돌아가셨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거실에 안치해 놓은 관 안에 누워 있는 증조모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 주위를 돌며 놀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던 그는 공책이 발견된 시점으로부터 37년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증조모가 남긴 자취를 찾아보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증조모의 삶이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고 아름다웠음을 깨닫고 그 생애를 책으로 남기고자 결심한다.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라가 위태롭던 19세기 말 1879년에 태어나 1964년까지, 밖으로는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개인적으로는 가부장제의 폐해 속에서, 매사 성심을 다해 주어진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한 여성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조심스럽게 그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두 권의 자필 노트3와 이후 증손자 유정이 힘들여 발굴한 자료들, 가족과 주변인의 회고 등을 토대로 그 삶의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그리고 노트에 기록된 글을 통해 김순전의 믿음의 실상이 어떠한지 그 향기를 가까이 느껴볼 것이다. 그 시대 여성이 짊어져야 했던 부당함에 절망하거나 짓눌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걸어간 여정과 기독교 신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해 주변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안겨준 삶의 문을 열어보려 한다.
2. 김순전의 삶과 그 의의
김순전이 남긴 기록과 주변 사람들의 회고로 살펴볼 수 있는 그의 삶은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얼마나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들을 낳지 못해 시댁에서 쫓겨난 한 불행한 여성에서 소신과 기개뿐 아니라 사랑을 품은 여성 지도자로 나아가는 여정을 믿음을 갖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보고 그 삶의 의미를 조명해본다.
믿음 이전의 삶 : 행복한 유년과 불행한 결혼생활
김순전의 가계에는 고려 충신의 피와 천주교 신자로 순교한 신앙의 피가 흐르고 있다. 곧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와 용기, 라이너 쿤체Reiner Kunze의 시구를 빌리면 ‘다리 건너 칼 밑으로 서슴없이 나아가는 충절의 결기가 흐른다’고 하겠다.
김순전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 선조 할아버지가 고려 충신으로 고려가 망해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을 월행시키고 자신은 두문동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하인 옷을 바꿔 입고 도망갔다고 한다.
조부 김명진金鳴振은 천주교 신자로 불과 26세 나이에 순교한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마다하지 않는 결기와 꿋꿋함은 자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김순전은 조부가 흘린 피가 자신의 아버지와 할머니를 구원했으며, 자신 역시 그 어른의 자취를 따르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친 김병은金秉殷은 9대 독자로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사촌도 없어 고독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잘 성장하여 13세에 15세 박수은朴受恩과 혼인하여 세 딸을 낳는다. 할머니는 손녀 순전을 귀히 여기어, 아들 손자와 다름없이 아꼈다고 한다.
모친 박수은은 부유하고 세력가 가정의 외동딸로 귀여움을 받고 자란 이로써, 글을 좋아하고 산수에 능하며 이야기를 잘했다. 김순전은 부계의 결기와 신의에 더해 모친의 성품을 이어받았다고 하겠다. 어머니는 50세 가까이 되어 신앙을 가졌는데, 이후 밤을 새워 성경 공부를 하고 사랑을 베풀어 집안에 성령의 향기가 가득했다. 오는 이마다 성령에 감동했는데 우연히 병을 얻어 안타깝게도 52세에 세상을 떠났다.
김순전은 1879년 황해도 신천읍 척서리에서 아버지 김병은과 어머니 박수은의 세 딸 중 맏딸로 태어났다. 추후 동생 하나가 세상을 떠나 고독했다고는 하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특히 어머니는 경우가 밝고 사랑 많고 강유겸전剛柔兼全의 성품을 지닌 분으로서, 누구에게든 하실 말씀을 다 하시는 어른이었다. 재능도 많아서 글을 좋아하고 산수에 능하며 계산을 잘하고 역사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에게서 순전은 많은 것을 배운다. 낮에 침공을 하고 밤에 고담을 읽고 옛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처음에는 글공부를 했고, 그 후 고 담을 읽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열 살 무렵 한글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굳건했던 아들 선호와 남존여비 사상의 폐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순전은 맏딸로서 4대 시집살이에 고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아픈 마음을 토로한다. “까다로운 삼사대 어른을 섬기며 어린 남편을 길러 놓으니 남편 세상이라고는 보시지 못하시고 자별한 재미 본 일도 없고 아들 못 낳는다는 멸시만 받으며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불쌍하고 애절함을 잊을 수가 없었다.”라며 애통함을 드러내고 있다. 아들을 원한 아버지가 소실을 얻었으므로 어머니는 시앗 보며 늘 슬픈 세상만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나이 오십 가까이 되었을 때 예수를 믿고 성경 공부를 시작해 어머니는 슬픔을 극복한다. 누가 와도 예배를 보고 쉼 없이 찬송을 부르며 믿음으로 충만한 어머니의 삶은 훗날 순전의 모습에 그대로 재현된다. 아버지는 예수를 믿기 전 자손을 얻기 위해 소실을 얻었으나, 예수를 믿은 후 자손을 구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장로로 신실하게 살았다. 6·25 때 순전이 남하하면서 이별하게 되었으므로, 1959년에 쓴 글에서 아버지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순전은 훌륭한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으나, 동생이 세상을 떠나 고독했고 결혼 후에는 아들을 낳지 못해 불행했다고 회고한다.
“나의 고독은 부모님과 같은 것이다. 고독을 승계했다.”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형제 없이 외로웠던 아버지의 삶과 딸만 낳아 멸시받은 어머니의 삶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1894년, 16세에 순전은 13세 서필순徐弼淳과 결혼한다. 시댁은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남편의 큰형이 강한 가부장적 사고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군자, 현자, 인자 세 딸을 낳았는데,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남편의 큰형이 못마땅해하다가 급기야 순전을 쫓아낸다. 남편은 형의 뜻에 순종했고 이후 순전은 친정에서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불행은 신앙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계기가 된다. 어머니가 딸들을 귀히 양육했으므로, 순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앙 깊은 할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세 딸은 예배를 드리며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으며 저절로 일찍 글자를 익히게 된다. 그리고 시댁의 반대에도 딸들을 학교에 보내 교육 시켰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앞선 의식이었다고 하겠다. 곧은 마음에 더해 소신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 확신을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력을 볼 수 있는 데, 이 힘은 신앙생활에 큰 견인력으로 작용한다.
믿음 이후의 삶 :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
믿음 이후의 삶은 주를 따르며 사는, 주 안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고스란히 행동으로 보여준 삶이라 할 수 있다. 예수가 병든 자와 소외되고 약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듯이, 순전 역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자신을 구 박 했던 시댁 식구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리라.”(잠언 8:17)라는 말씀을 그대로 구현한 삶이 아닐 수 없다.
29세에 우연히 가본 예배당은 순전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정월 보름, 친구 따라 예배당에 갔는데, 세상에서 처음 보는 광경을 마주한다. 그것은 부인들이 공부하는 광경으로서, 그녀에게는 놀라운 일로 느껴졌다고 회고하고 있다. 시댁의 구박으로 불행을 느끼던 중 여자들이 공부하는 모습은 신세계로 다가왔던 것이다. 7월에 믿기로 작정하고 주일과 삼일 예배에 참석했는데, 처음에 할머니가 꾸중하고 못 가게 한다. 잠시 중지했으나, 부친의 병을 계기로 집안이 모두 믿기에 이른다. 그해 늦가을, 부친이 마귀에게 속는 일이 생겨 믿으면 나을 거 같아 아버지를 인도했고, 부친이 믿음으로 병을 회복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어머니와 할머니까지 믿게 되어, 순전은 이를 기회로 여기며 주님의 계시를 깨닫게 된다.
이후 순전의 삶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두른 삶으로 변화한다. 곧 진리의 허리띠, 의의 가슴받이, 평화의 복음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라는 성경 말씀(엡 6:14-17)을 그대로 따르는 삶이었다. 타고난 사랑과 신실함에 이러한 믿음이 더해져 순전은 가는 곳마다 주변인들에게 놀라운 감화를 안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귀결시키며, 바라는 것 없고 낙망도 없으며 오직 감사로 일관된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믿으라고 권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 들이 감복하여 따르게 되었다.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는 “다정함이란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속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라 했는데, 김순전의 언행이 그러했다.
그리고 믿음의 힘은 불행과 고통을 지혜롭게 극복하도록 이끈다. 최초의 고난은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시댁에서 쫓겨난 일일 텐데, 원망하지 않고 감당하며, 교회 가는 일과 딸의 교육을 반대할 때도 좌절하지 않는다. 큰딸을 소학교에 입학시키자 시댁(큰아버지)이 반대하며 학교와 교회 모두 가지 못하게 했는데, 시댁에 바라는 것이 없었으므로 화도 나지 않고 낙망하지도 않았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신앙이 더 굳어져 딸들을 모두 학교에 보내는 결단력을 보여준다.
가장 이겨내기 힘든 큰 고통은 어머니의 소천이었다. 어머니만 의지하고 살던 까닭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에 복통까지 일으키며 막막해한다. 슬픔과 고독함을 손으로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라고 표현한 것에서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탄식하는 중에 하나님이 안 계시냐 소리를 듣는다. 이에 나의 눈을 열어주시고 주님의 빛을 보게 했음을 깨닫고 고독을 떨쳐버리고 일어서게 되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큰 뜻을 품은 지도자의 면모이다. 당시 많은 제약이 있었던 여성의 몸으로 큰일을 하고자 한 점은 아주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큰딸 서군자는 어머니가 “나는 적은 일만 위해 애쓴다.”고 한탄하며 영생의 일을 하고 싶어했다고 회고한다. 그리하여 31세에 집안은 어떻게 되었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는 것이다.
순전이 간 곳은 함경남도 삼수갑산 근방의 풍산으로, 척박한 오지였다. 그런데 몸을 사리지 않고 주민의 집안일과 밭일을 도우며 전도한 결과, 40명이던 교인이 1년 후 120명으로 늘어나는 놀라운 결과를 얻는다. 타고난 사랑과 배려심으로 그들의 피폐한 생활을 도왔으므로, 그 진심이 그들의 마음을 두드렸을 것이다. 이러한 기적 같은 일은 이후에도 순전이 머무는 곳마다 일어난다. 이후 원산 신풍리 교회에서 거주하며 10개의 교회를 돌보다가 신학 공부를 위해 5개 교회로 줄인다. 원산 마르다윌슨여자신학교Martha Wilson Women‘s Seminary에서 5년 공부한 후 전도사로서 신풍리 교회에서 15년을 봉사한다. 어떤 일이든 주님의 종으로 보내는 대로 가고 시키시는 대로 했다는 고백에서 신앙의 자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삶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이어져, 사위 유홍의 집안마저 감화시킨다. 1933년 사위 유홍이 영등포에 새 집을 지은 후 장모님을 모셔와 함께 살았는데, 새벽 2~4시에 일어나 교회와 가정, 이웃, 친지를 위해 기도하고 예배를 보며 사랑을 전한다. 유씨 집안은 믿지 않는 집안이었는데, 순전과 현자의 행동에 감복하여 모두 예수를 믿고 목사와 선교사까지 배출하는 결실을 맺는다. 6·25로 인해 유씨의 고향 천안으로 피난 갔을 때, 새벽마다 뒷산에 올라가 기도하며 예배를 드려 그 동네 사람들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86세로 소천하기 며칠 전까지 신구약을 연구했다고 하니, 믿음 이후의 순전의 삶은 언제나 주 안에서 충만함을 누리는 삶이었다고 하겠다. 조용하고 온화하고 웃음과 기쁨 이 가득한 얼굴로 항상 위로와 사랑과 격려와 기도로 사람들을 도왔던 김순전의 삶은 항상 주의 빛으로 환하게 주변을 밝혔다.
김순전의 삶의 의미
김순전의 삶은 사랑과 온유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 리더의 소양을 느낄 수 있는 삶이다. 그의 배려심과 따뜻함은 최근 공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리더십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며, 원대한 포부와 추진력, 지혜, 세속적 욕심에서 자유로운 점 등 훌륭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요소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은 교육할 필요 없다는 통념이 지배적일 때 세 딸을 교육시켰으며, 영생의 일을 하고자 딸들을 어머니께 맡기고 풍산으로 떠나 교회 일을 하고 신학교에서 공부한 점 등 사사로운 일보다 큰 뜻을 추진하며 개인의 안위를 우선으로 하지 않는 대범함이 엿보인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힘이 있으므로, 자신만의 삶을 단단하게 구축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삶은 큰 나무를 연상케 한다. 뿌리가 깊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풍성한 잎을 드리워 그 그늘 아래 사람들이 쉴 수 있으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믿음이라는 뿌리는 깊고도 굳건하여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수많은 이들이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위로를 얻고 안식을 취하며, 나아가 믿는 이들과 목사, 전도사를 배출하여 세상 곳곳을 환하게 하는.
3. 기독 가사의 특성과 의미
김순전이 남긴 또 하나의 작은 공책에는 또박또박 정성 들여 쓴 글이 그득하다. 4·4조를 활용해 8행으로 이루어진 형식의 글인데(간혹 4행과 9행도 있다), 이는 당시 널리 분포되어 있던 가사歌辭 형식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는 고려말에 발생하여 조선 초기 사대부 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 잡아 시조와 함께 조선 시대의 중요한 시가 양식으로 자리매김한다. 초기에는 사대부의 삶과 자연, 임금을 향한 사랑 등을 노래하다가, 임진왜란 이후 현실 문제를 담기 시작한다. 숙종 이후 규방에서도 가사 창작과 유통이 활발해졌으며,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포교를 내용으로 하는 천주가사가 등장한다. 천주가사가 천주교를 알리고 신도를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비슷하게, 김순전의 글은 가사 형식을 빌려 성서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기독가사’라 이름 붙일 수 있다.
모두 173쪽에 이르는 글은 목차를 나누어 정연하게 전개되어 있으며, 각 목차 아래 연관된 성경 내용이 제목 아래에 첨부되어 있다. 천국, 성자, 고난, 권고, 방탕자의 자탄, 방탕자의 회개, 심판, 지옥, 천국, 모두 9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각 주제에 맞게 4·4조로 묘사하고 있으므로, 기독교적 차원에서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각 장의 내용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제일 먼저 ‘천국 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천국으로 돌아오기를 권면하고, 두 번째 ‘성자 편’에서 는 이사야 53장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세 번째 ‘고난 편’은 베드로전서 2장 22~25절을 중심으로 십자가 처형까지의 과정을 묘사한다. 네 번째 ‘권고 편’은 잠언 23장 29~35절을 중심으로 음주자에게, 잠언 7장 19~27절을 중심으로 창기에게, 로마서 5장 25절을 중심으로 자살기도자에게 각각 권고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다섯 번째부터 방탕자를 다루는데, 누가복음 15장 11절을 중심으로 ‘방탕자의 자탄’, 요한계시록 3장 20절과 누가복음 15장 3~7절, 아모스 5장 14절을 중심으로 ‘방탕자의 회개’,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심판 편’, 누가복음 16장 19~31절, 요한계시록 20장 10절을 중심으로 한 ‘지옥 편’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인 ‘천국 편’은 요한계시록 21~22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천국 편’이 하나님을 향한 찬송과 거룩한 천국, 하나님께 돌아오길 권하는 내용이라면, 마지막의 ‘천국 편’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구체적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부록 희망사 망향곡’이라 제목 붙인 글이 나오는데, 이 글들은 모두 15개로 4·4조가 아니라 7·5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곡이라고 칭한 것에서 노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추정된다. 전도서 1장 2절을 중심으로 성경의 내용을 시화한 것도 있으나, 성경과 무관하게 김순전 전도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글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세상만사가 헛되고 재물과 명성, 권세, 학문과 지혜, 아름다움 등이 헛수고임을 설파하고 있는데, 다채로운 비유와 대구對句 형식을 활용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4. 글을 닫으며 : 천국의 향기
김순전의 생애는 사랑과 온유함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신앙 인이 살아온 여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고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가야 할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며,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고 믿음의 길로 인도한 그의 삶은 수많은 이들의 귀감으로 자리매김한다고 하겠다. 아울러 믿음의 실상을 가사 형식으로 기록함으로써, 믿는 자들과 후손들에게 그 신실한 삶의 초상을 생생하게 남길 뿐 아니라, ‘기독가사’로서 중요한 위상을 확립하고 있다. 곧 그의 삶과 글은 한 개인이 베푼 사랑의 결실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줌으로써, 모범적인 기독교인의 길을 제시할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좌표가 된다. 그리하여 그의 삶과 기록으로 열린 천국의 문은 닫히지 않는다. 아니, 닫을 수 없다. 그 문을 통해 흘러나오는 은혜와 사랑을 막을 수 없으므로. 그 천국의 향기는 오래도록, 영원토록 우리를 황홀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