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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자점의 오후
과즙
J 노파
잠의 요정
흰색 가운
심장 가방의 가봉
고문 박물관에 잘 오셨습니다
교정기를 파는 사람
벵골호랑이의 임종
토마토와 보름달
독초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오가와 요코 (小川洋子)
1962년 오카야마현에서 태어나 일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다.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후, 1988년 《상처 입은 호랑나비》로 가이엔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데뷔 이후 《임신 캘린더》로 아쿠타가와상,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요미우리 문학상과 일본서점대상, 《미나의 행진》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등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받으며 문단과 대중의 사랑을 동시에 받아왔다.
오가와 요코의 문학은 기억, 상실, 고독, 신체라는 키워드로 관통된다. 감정을 절제한 섬세하고 정교한 문체로 일상의 고독과 상실을 그리며 인간 내면의 미세한 균열과 잔혹함, 그리고 상실의 슬픔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아 《은밀한 결정》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다이빙 풀》로 셜리 잭슨상을 수상하는 등 독보적인 문학 세계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역자 : 박성민
도쿄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어학을 전공하고 통번역사로 일했다. 시와서 출판에서 번역과 기획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 《시를 쓰는 소년》, 《풀꽃》, 《하루하루 하이쿠》, 《하루하루 와카》, 《심호흡의 필요》, 《세상은 아름답다고》, 《나쓰메 소세키 - 인생의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 내 마음의 문장들》, 《봄은 깊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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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오가와 요코는 현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1988년 〈상처 입은 호랑나비〉로 가이엔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한 이후, 『임신 캘린더』로 아쿠타가와상,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요미우리 문학상, 일본서점대상을 받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은밀한 결정』이 부커상 인터내셔널과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다이빙 풀』로 셜리 잭슨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오가와 요코 문학을 관통하는 중심 키워드라면 ‘기억’과 ‘상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수학자가 채워가는 사랑을 따뜻한 필치로 그린 『박사가 사랑한 수식』, 사물의 존재와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가는 섬을 그린 『은밀한 결정』처럼 오가와의 문학에는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그려지는 기억과 상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섬뜩함과 광기, 고독은 오가와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본질입니다.

그러한 오가와의 문학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얼음처럼 투명하고 섬세한 문장입니다. 오가와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정교하고 섬세한 문체로, 인간 내면의 미세한 균열과 섬뜩함, 그리고 상실의 슬픔을 서정적이고 우아하게 그려냅니다.

『말없는 주검 은밀한 애도』는 1998년에 발표된 오가와의 초기 명작으로, 열한 편의 단편이 서로 느슨한 연결고리를 이어가며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연작 단편소설집입니다. 1998년 작품으로 일본에서 발표된 지 거의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2013년에 영미권에 출간된 이후 서구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받은 이 작품은 지금까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잇달아 출간되어 시대를 초월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2014년에 부커상 인터내셔널의 전신인 독립외국소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3년에는 NPR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장편 못지않게 단편의 명수이기도 한 오가와 요코의 이 단편집은 무엇보다 독특한 구조가 눈길을 끕니다. 죽은 아이의 생일을 위해 딸기 케이크를 사러 가는 여자를 그린 첫 번째 이야기를 읽은 독자는 두 번째 이야기에서 이것이 단순한 단편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가락 모양을 한 당근을 키우는 노파, 몸 밖에 달린 심장을 위한 가방을 주문하는 가수, 심장의 치수를 재는 가방 장인, 온갖 끔찍한 고문 기구를 전시하는 박물관, 그곳에서 죽어간 벵골호랑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열한 편의 기묘한 이야기 속의 인물과 사건, 소품들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고 촘촘하게 얽히며 서늘한 미로 속으로 독자들을 이끌어갑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앞의 이야기에 등장한 사건을 확장하기도 하고 사소해 보이는 소품들의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또는 주변부의 인물을 화자로 내세워 무대 앞으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편은 다시 첫 번째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오가와 요코는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 살아 있는 사람 속에 죽은 이가 함께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상실과 결핍을 품은 인간의 고독과 죽음, 슬픔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사물이나 신체, 기억, 결핍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오가와가 문학에서 평생 탐구해온 방법입니다. 오에 겐자부로는 “오가와 요코는 섬세하고도 예리한 문체로 인간 심리의 가장 미묘한 움직임까지도 탁월하게 표현해 내는” 작가라고도 했습니다.

『말없는 주검 은밀한 애도』는 말없이 사라져간 것들, 그리고 그 주변을 겉도는 인간들이 보내는 독특한 애도가 매혹적으로 펼쳐지는 소설집입니다. “스릴러와 순문학의 매력적인 결합”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기괴함과 서늘함 속에서도 특유의 서정성을 잃지 않는 오가와 요코의 매혹적인 미로 속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작가의 말

언젠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중학생 남자아이가 다가와서 “만져봐도 돼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럼” 하며 개를 앉게 했다.

소년은 개에게 관심은 있지만 익숙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머리 윗부분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듯 쓰다듬었다.
“몇 살이에요?”
“다섯 살이야.”
“아직 아이네요.”
“아니야. 벌써 어른이지. 개는 수명이 15년 정도니까.”
“네?”
소년은 손을 멈추고 짧게 소리를 질렀다.
“15년밖에 살 수 없는 거예요?”
진심으로 놀랐다는 게 느껴졌다.
“그럼,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소년은 이번에는 손으로 머리부터 목까지 정성껏 쓰다듬었다.
“이렇게 큰 개가 죽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 개는 수컷 래브라도였는데 몸무게가 나와 비슷했다.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개는 기분 좋다는 듯이 소년의 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이렇게 큰 개가 죽으면 정말 어떻게 되는 거예요…….”
누구에게 묻는 것 같지도 않은 듯 소년은 되풀이했다.
나는 뭔가 대답하고 싶었다. 예의 바르고 마음씨 착한 이 소년을 어떻게든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동물 장례식장에 맡기면 괜찮아, 아직 10년이나 남았잖아, 같은 적당히 둘러대는 말뿐이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자신이 쓰려고 하는 책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쓰였다, 라고 하면서, 얼핏 작가에게 부자유스러운 것으로 여겨질 만한 가정을 참으로 매력적인 가능성으로 비약시켰다. 내가 지금까지 맛본 독서 체험 중 가장 행복했던 것은, 아, 지금 읽고 있는 이 이야기는 먼 옛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비밀의 동굴에 새겨놓았던 것을, 폴 오스터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지금 나에게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구나, 하고 느낀 순간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동굴에 말을 새기는 일이 아니라, 동굴에 새겨진 말을 읽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요즘 생각한다. 그곳에 이미 있는 말을 내가 읽어낼 수만 있다면, 개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에 관한 이야기를 소년에게 들려줄 수 있을 텐데.

이번에 열한 편의 애도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 오가와 요코


책 속으로

이 사람은 어쩌면 ‘죽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사람이 죽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양과자점의 오후」중에서

“곰팡이라는 거, 어쩌면 이렇게도 예쁠까.”
나는 중얼거렸다. 허공에 숨어 있던 작은 요정들이 내려앉듯이, 그것들은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온갖 색깔과 정교한 모양으로 케이크를 뒤덮어갔다.
---「양과자점의 오후」중에서

왜 울고 있는 걸까. 연인과 다툰 걸까. 일하다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하지만 나에게 이유 따위는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이유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순수한 울음이었다. 언제까지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슬픔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지, 눈물이 어떤 식으로 흐르는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양과자점의 오후」중에서

죽음은 어디쯤에서 찾아오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운 냄새가 났다. 아들을 발견했을 때와 똑같았다. 습기가 있고, 어딘가 비밀스러우며, 희미하게 달콤했다.
---「양과자점의 오후」중에서

나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슬픔의 발작이 지나가버릴 때까지 곁에서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입술에서 흘러넘친 과즙이 눈물처럼 그녀의 뺨을 적셨다. -
〈과즙」중에서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 남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 우체국에서 흘렸어야 했던 눈물이 이제서야 쏟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먼 기억의 한 점에서 고요히 다가오는 눈물이었다.
---「과즙」중에서

순간, 고요한 차내의 공기가 떨렸다. 맑은 노랫소리가 우리 위로 내려앉았다. 그것은 목소리가 아닌 무언가처럼 아름다웠다. 고막을 빠져나가 아득히 먼 기억의 샘물에까지 닿아 수면을 흔들었다. 아직 아주 어린 아이들인데도, 그들은 사람의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잠의 요정」중에서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끈 것은 항공우편 봉투를 봉하는 그녀의 혀였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입술 사이로 모습을 내비치더니 연하늘색 봉투의 가장자리를 핥았다. 붉고, 젖어 있었다.
---「흰색 가운」중에서

그곳도 역시 겉모습처럼 매력적일까. 선명한 붉은빛을 띤 점막은 황홀해질 만큼 따스하다. 주름과 돌기, 움푹 팬 곳이 복잡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잘 훈련된 하인처럼 섬모들이 일제히 나부끼면서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유혹한다. 조교수는 더욱 깊숙이 내시경을 밀어 넣는다.
---「흰색 가운」중에서

그것들은 전부 독특한 빛깔을 띠며 냄새를 풍겼다. 인간의 몸속은 왜 이렇게나 많은 불결한 액체로 가득 차 있는 걸까.
---「흰색 가운」중에서

“심장을 넣기 위한 가방 말씀이시군요.”
“네, 맞아요.”
인상적인 목소리였습니다. 한순간 고막을 얼려버릴 듯한 차가움을 숨긴 목소리였습니다.
---「심장을 담는 가방」중에서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설명을 들어도 그 모습을 제대로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튼 정상이라면 당연히 몸속에 있어야 할 심장이 피부 바깥쪽에 붙어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심장을 담는 가방」중에서

먼저 나는 심장에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한쪽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자 앞에서 갑자기 나 자신이 작아져버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줄자를 당겨 심장의 치수를 쟀습니다. 최대 가로 폭, 최소 가로 폭, 세로 길이, 두께, 동맥과 정맥의 직경, 혈관 사이의 간격을 쟀습니다.
---「심장을 담는 가방」중에서

어째서 다들 이렇게도 갑작스레 죽어버리는 걸까. 어제까지는 분명히 살아 있었을 텐데.
---「고문 박물관에 잘 오셨습니다」중에서

반짝이는 눈에 비쳐 호랑이 모피는 더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짐승의 냄새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아 나는 무릎을 꿇고 눈 위에 누워 있는 호랑이의 파편들을 주워 모았다.
---「고문 박물관에 잘 오셨습니다」중에서

처음부터 바로 토마토라고 알아챈 것은 아니다. 나는 이름 모를 붉은 꽃이 독살스러울 만큼 흐드러지게 핀 꽃밭에서 갑자기 길을 잃은 건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아니면 운전수의 피가 흘러 이토록 아름답게 도로를 물들이고 있는 건가 하고.
---「벵골호랑이의 임종」중에서

타이어의 감촉이 핸들에 전해져왔다. 손끝이 저릿해지는 것 같았다. 차 뒤로 이어지는 붉은 띠가 백미러에 비쳤다. 사람을 치어 죽일 때도 이런 느낌일까.
---「벵골호랑이의 임종」중에서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질 듯 호랑이가 한 번 울부짖었다. 그 여운이 사라져가는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손바닥에 와 닿은 따스함도 사라져갔다. 송곳니 부딪히는 소리가 멎고 마지막 숨이 흘러나왔다. 우리들 위로 천천히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벵골호랑이의 임종」중에서

나의 주검이다. 이런 답답하고 어두운 곳에서, 독초를 먹고, 아무도 지켜봐주는 이 없이 나는 죽어 있었던 것이다. 냉장고 앞에 쭈그려 앉아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죽은 나 자신을 위해 울었다.
---「독초」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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