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시는 어디까지 세계를 품을 수 있는가
철학과 역사, 예술과 죽음을 가로지르며 시의 가능성을 묻는 한 시인의 긴 사유
『시의 비의』는 한 시인이 오랜 세월 써 온 작품을 통해 시의 경계를 탐색한 기록이다. 미셸 푸코와 하이젠베르크, 막스 플랑크와 니체 같은 사상가와 과학자부터 공자와 노자, 붓다와 용수, 겸재와 안견, 한국 현대사의 인물들까지 한 권 안에서 서로 만난다.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는 전통적인 서정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 과학, 미술, 역사와 정치의 영역까지 시 안으로 끌어들이며 “시인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시가 현실과 인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 이 시집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사유가 시가 되고, 시가 다시 세계를 묻는다
황명현의 이번 작품들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지성과 감각을 서로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인은 철학적 개념이나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자연의 이미지와 색채, 음악적 리듬 속으로 끌어들인다. 미셸 푸코를 말하다가 붉은 동백과 눈밭이 나타나고, 하이젠베르크의 물리학적 사유는 바하와 모차르트의 선율을 만나며, 스티븐 호킹과 제인의 관계에서는 과학과 신앙이라는 거대한 대립이 한 부부의 사랑과 고독으로 구체화된다. 공자와 노자, 『금강반야경』과 용수의 공(空) 역시 고정된 철학적 지식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질문으로 다시 불려 나온다.
이러한 방식은 회화와 역사로도 이어진다. 겸재의 「인왕제색도」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림의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 뒤에 겹쳐진 식민지의 폭력과 정치적 죽음, 권력과 인간의 비극을 함께 불러낸다. 도시의 지하철과 광고판, 텔레비전 카메라, 사형수의 시간까지도 시적 대상이 된다. 이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들을 한 편의 시 안에서 충돌시키는 것은 세계가 하나의 단순한 의미로 설명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경의 한편에는 폭력이 있고, 인간의 위대한 사상에는 모순과 고뇌가 있으며, 문명의 발전 뒤에는 소외와 불안이 따라붙는다. 시인은 이 모순을 제거하기보다 그대로 바라보고 서로 다른 시간과 사유를 한 공간에 겹쳐 놓는다. 그래서 『시의 비의』의 시는 감정을 토로하는 언어라기보다 세계를 읽고 다시 배열하는 하나의 사유 방식에 가까워진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되묻는 시의 역할
시집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삶과 죽음에 대한 끈질긴 응시다.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캐테 콜비츠, 나치 치하에서 가족을 잃고 신념의 시험대에 선 막스 플랑크,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람들, 역사의 폭력 속에서 사라진 이름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은 죽음을 단순한 비극이나 애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죽음의 순간에 인간의 신념과 사랑, 욕망과 책임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묻는다.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시 자신도 심판대에 올려놓는다. 역사적 고통을 아름다운 언어로 옮기는 것이 과연 충분한가, 현실의 폭력을 미학적인 대상으로 바꾸는 순간 시가 오히려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 의심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제목이기도 한 「시의 비의」에서부터 이러한 물음은 이미 시작된다. 시는 현실 바깥에서 자신의 정서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맞부딪치며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야 한다는 태도다.
후반부의 「시학의 풍경」과 ‘주석하는 시’ 연작에 이르면 이러한 시적 태도는 더욱 선명해진다. 가족의 죽음과 오래된 기억처럼 개인적인 경험부터 정치범과 역사적 인물들의 삶까지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시 속에 함께 놓으면서, 서정과 기록, 시와 산문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넓힌다. 시인은 자신의 자서에서 “서사시적 경계까지 파고들어 시의 영역이 어떻게 새롭게 확장될 수 있는 것인지”를 추구했다고 밝힌다. 따라서 이 시집의 긴 주석과 역사적 기록도 부수적인 해설이라기보다 그 실험의 일부로 읽힌다. 시는 아름다운 한순간을 포착하는 언어이면서 동시에 잊힌 사람과 사건을 다시 현재로 불러내고,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인 세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언어다. 『시의 비의』가 끝까지 놓지 않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현실 앞에서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시의 비의』는 쉽게 읽히는 시집은 아니다. 철학과 물리학, 불교와 유학, 미술과 음악, 한국 현대사와 개인의 기억이 겹겹이 포개지면서 독자에게 상당한 집중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 밀도야말로 이 시집이 선택한 방식이다. 시인은 세계를 단순하게 압축하거나 아름다운 언어로 정돈하기보다 서로 충돌하는 생각과 현실을 최대한 시 안에 남겨 두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한 편 한 편의 서정을 감상하는 동시에 한 사람이 수십 년 동안 품어 온 질문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쓰인 시와 2020년대의 시가 한 권에서 만나면서 시대는 달라지지만 존재와 자유, 죽음과 사랑, 역사와 예술을 향한 물음은 계속된다. 결국 『시의 비의』에서 ‘비의’란 감춰진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세계를 바라보고 의심하며 다시 묻는 과정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끝나지 않는 질문 속에서 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간다.
책 속으로
시가 비의처럼 솟구칠 수 있을까?
자만과 신경의 곤궁 속에 깃든
실패를 이윽고 받아들이고
가파른 절벽의 현재를 모르는 의식,
순간 전도되는 의식 속에서
한 치의 행동을 내딛기 전
다시 한 번 시의 비의는
이 상황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는 것이다.
---「시의 비의(詩의 秘義)」중에서
역사가 자유와 필연성과의 통일이라면
그것은 자족적인 질서에 속하는가?
자율적인 질서에 속하는가?
---「회고전(回顧展)」중에서
어느 가을 아침
인적 끊어진 숲 속으로
마술처럼 솟아오르는 버섯들의 행진,
마지막 생명의 은유를 높여가는
그 고요한 심상의 비밀에 부딪히면
목숨을 건 사랑으로도 소통할 수 없는
죽음의 담담한 벽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12월, TV 카메라의 눈」중에서
어디로 흘러드는지 모르는 시간을 따라 함께 흐르는 세계와 얼굴의 윤곽선에서 착종하는 무상성도 긍정하는 것! 우리의 행동과 사고는 궁극적으로 그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는 거울의 자기투영이며, 거미줄에 걸리는 바람 같은 인생을 긍정하며 행동의 의미와 목표를 조준하는 것!
---「상수리나무」중에서
이미 길을 잃은 험로라구요?
그러면
팽팽한 하늘의 막을 찢으며
당신과 시는
사연 많은 시간의 계곡을 박차고
날아오를 밖에요
---「주석하는 시 8」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