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 자연을 닮은 문장
류순희의 산문은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하루를 바라본다. 대부도의 바다, 산골의 별빛, 오래된 워낭소리, 병원 주차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한 사람의 뒷모습까지, 작가는 일상의 작은 풍경 속에서 삶의 본질을 길어 올린다.
그녀의 문장은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느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아름다운 주인공이 된다.
특히 이 산문집에는 '쉼'이라는 키워드가 흐른다. 빠르게 달리는 시대일수록 잠시 멈추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는 메시지가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가족, 자연, 세월, 사랑, 노년, 그리고 희망까지. 서로 다른 이야기는 결국 '사람'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 류순희는 독자에게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 편의 풍경을 보여 주고, 그 풍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문득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게 되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어진다.
『잠시 숨고르기 할까요』는 지친 하루 끝에서 만나는 따뜻한 의자 같은 책이다. 삶을 견디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오늘도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숨을 고르게 하는 산문집이다.
책 속으로
3층 강의실에도 저마다의 소망을 품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늦은 나이에 처음 시를 쓰는 사람, 가족을 돌보느라 오래 접어 두었던 꿈을 다시 펼치는 사람,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수필로 남기고 싶은 사람이 같은 책상에 앉았다. 처음에는 원고를 읽는 목소리가 떨리던 이가 몇 달 뒤에는 다른 사람의 글에 따뜻한 의견을 건넸다. 한 줄도 쓰기 어렵다던 사람이 어느 날 원고지 여러 장을 내밀기도 했다. 그 작은 변화를 지켜보면서 나는 소망이란 단번에 하늘로 치솟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주 같은 시간에 계단을 오르고, 빈 종이 앞에 앉고, 서툰 문장을 다시 고치는 동안 소망은 조금씩 제 날개를 얻는다.
창밖 솟대의 새가 한곳을 바라보듯 나도 강의실을 오래 지키고 싶었다. 사람이 적은 날의 쓸쓸함도, 수업을 준비하느라 늦도록 불을 밝힌 시간도 돌이켜 보면 모두 장대를 세우는 일이었다.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땅속에 단단히 뿌리내려야 한다. 솟대의 장대가 흔들리는 새를 붙들어 주듯, 꾸준히 지켜 온 시간은 쉽게 꺾이는 마음을 받쳐 주었다.
3층 강의실 창밖의 새는 오늘도 말없이 하늘을 바라본다. 날개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침묵은 수많은 사람의 소망을 품고 있는 듯하다. 경제가 조금 더 따뜻해지고 사람들이 서로를 믿으며 웃을 수 있기를, 자연과 인간이 다시 화해하여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상처 입는 일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도 새의 등에 살며시 얹어 본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을까.
박필상 시인은 「솟대」에서 “날자꾸나, 날자꾸나, 하이얀 나래 펴고”라고 노래했다. 그 외침은 단지 더 높이 날자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더 따뜻한 삶으로 나아가자는 소망일 것이다. 솟대는 하늘에 닿기 위해 세운 장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하늘에 잇기 위해 세운 기도의 길이다.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사람이 돌아간 뒤, 나는 불을 끄기 전에 다시 창밖을 본다. 어둠 속 솟대는 낮보다 더 또렷한 윤곽으로 서 있다. 그 새가 날지 못하는 것은 발이 묶여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소망을 오래 지키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속에 작은 소망 하나를 얹고 강의실 문을 닫는다. 오늘 이곳에서 태어난 문장들이 누군가의 삶을 조금 밝히고, 언젠가 새의 날개를 따라 푸른 하늘 끝까지 닿기를 바라면서
---「솟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