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한 후 문예평론가, 작가, 저널리스트, 편집인, 고미술 수집감정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1902-1983)에 대한 수사는 놀라우리만치 화려하다. 가령 그는 ‘근대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비평가’, ‘일본 현대 비평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비평을 문학의 경지에 진입시킨 인물’, ‘일본 비평 문학의 최고봉’, 심지어 ‘비평의 신’이라 불릴 만큼 일본 지성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상가로 말해진다. 사실상 일본의 비평이 고바야시 히데오라고 하는 하나의 패러다임 위에서 형성되었음을 부정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가 일본예술원상, 요미우리문학상, 노마문예상, 일본문학대상 및 문화공로자, 문화훈장 등을 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바야시 비평이 지닌 최대의 특징은, 시종일관 ‘예술의 자율성’에 입각하여 마르크스주의 문예운동에 전면적으로 맞서며 이른바 자유주의 문학의 수호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는 1920년대 후반, 당시 가장 과학적이고 정교한 정치 이론으로 득세하던 마르크스주의를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통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문학을 혁명적 목적에 동원하려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한 고바야시는 문학의 자율성을 옹호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 중세 문학을 주요한 사상적 참조점으로 삼았다. 무엇보다 그는 현실을 재단하는 추상적 이론에 대한 방법론적 회의와 비판을 지적 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은 인물이었다.
복합적인 평가를 받는 고바야시의 라이프워크이자 최고 걸작이 바로 본서이다. 이미 고전이 된 이 책은 1965년 6월부터 1976년 12월까지 장장 11년에 걸쳐 문예잡지 〈신초(新潮)〉에 총 64회 연재된 끝에 1977년 10월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고문 원서로부터의 직접 인용이 차고 넘칠 정도로 지나치게 많고 고도의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출간 당시 10만 부 이상이 팔릴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으며, 다음 해인 1978년 제10회 〈일본문학대상〉을 수상한 명작이다. 이후 〈모토오리 노리나가 보기(本居宣長補記)〉(Ⅰ·Ⅱ)가 각각 〈신초〉 1979년 1·2월호와 1980년 2·3·5·6호에 게재되었고, 1982년 4월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이 두 저작은 단순한 사상사 연구가 아니라, 고바야시 자신의 사유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만년의 대표작이자 그의 비평 활동 전체를 집대성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본서는 이 두 저작에다 에토 준과 고바야시의 대담을 함께 수록하고 거기에 각주를 첨부한 문고판 本居宣長(上·下, 新潮社, 2007년 개정판)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이다.
노리나가를 ‘탁월한 사상극의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는 본서의 주요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자. 먼저 고바야시는 본서의 집필 의도와 관련하여, 노리나가 사상의 형태나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그저 “노리나가의 육성을 듣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과도하리만치 많은 원전 인용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사실 본서는 노리나가의 원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전에서 발췌한 원문들을 창발적으로 재배치한 ‘하나의 모자이크 작품’이라 칭해도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본서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그 인용들을 일일이 다 큰따옴표로 처리하지는 않았는데, 정작 고바야시 자신은 “이해하기 어려운 노리나가의 원문만 잔뜩 인용하면서 그것을 잘 해설하지도 못한다.”며 몸을 낮춘다. 하지만 그가 노리나가의 사유는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해설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그 육성의 “독특한 어세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노리나가를 읽을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주의를 줄 때, 우리는 거기서 지식인 특유의 오만한 낌새마저 느끼게 된다. 어쨌든 고바야시는 노리나가 학문은 원문을 통해 직접 그의 서술 방식을 읽어내야만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의 매력”을 알 수 있다며, 본서를 일종의 “노리나가 문장의 훈고 작업”으로 규정한다. 공자가 말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을 염두에 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싶다. 본서에는 명백히 고바야시 자신의 ‘육성’임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후 일본의 많은 보수적 평론가와 지식인들은 본서를 단순한 인물론이 아니라 고바야시 비평의 ‘정수’이자 ‘선언문’에 해당하는 저술로 보면서, 거기서 ‘일본적 정신과 정서의 복권’을 읽어내곤 한다. 다시 말해 본서는 ‘이성 이전의 인간’을 복권시키려는 고바야시의 가장 급진적인 비평서라는 것이다.
본서는 ‘모노노아와레’론을 중심으로 삼아 만엽집론, 겐지이야기론, 배로소선을 필두로 전개된 와카론, 관사 및 조사(데니오와)론, 게이추의 가론 등을 통해 노리나가의 가도론을 재해석하고 있다. 노리나가는 모노노아와레와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을 구별했다. 즉 모노노아와레가 ‘사물에 접하여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을 뜻한다면,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은 실재(事, 고토)의 마음, 사물(物, 모노)의 마음을 아는 것을 가리킨다고 정의내렸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정의는 사실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대단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이 점을 잘 간파한 고바야시는 크게 ‘감정’과 ‘완전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모노노아와레’와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을 재해석하고 있다.
본서의 학문적 의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오늘날 일본 인문학계에서 ‘일본사상 최고의 학자’로 손꼽힌다. 따라서 노리나가에 관한 연구는 단순히 근세 국학의 영역을 넘어, 일본 인문학 연구의 수준과 동향을 가늠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게다가 저자인 고바야시 히데오는 그 자체로 ‘근현대판 노리나가’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바야시의 라이프워크인 본서는, 근현대 일본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노리나가 붐’ 또는 ‘노리나가의 재생’이라는 일본 지성계의 독특한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줄 것이다. 본서야말로 노리나가와 고바야시라는 두 걸출한 사상가의 초상이 가장 완벽하게 중첩되어 드러나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본서의 백미는 역시 마지막 장인 제50장[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담겨 있다. 고바야시는 여기서 노리나가의 죽음관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고바야시는 본서의 논의를 노리나가의 묘소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 묘소로 돌아 나오는 기묘한 수미상관의 구도로 전개한 셈이다. 그러나 제50장의 서정적인 죽음 묘사는, 노리나가의 유언서를 다룬 제1장과 제2장의 기괴하고 강박적인 죽음관과는 선뜻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제50장에 투영된 죽음관은 차라리 고바야시 자신의 실존적 고백이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 같다. 가령 우리는 “죽은 자는 아주 떠나버린 것이 아니라, 다만 돌아오지 못할 뿐이다. 죽은 자는 산 자에게 격한 슬픔을 남기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떠날 수 없다.”라는 고바야시의 문장에서 비로소 보편적인 실존의 울림을 공유하게 된다. 이러한 절대적 죽음과의 대면 없이는 학인(學人)들의 지적 사랑 또한 불가능할 거라는 일종의 깨달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