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우리가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세계문학의 백스테이지
2022년 4월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후보에 올랐을 때 정보라는 “실업자(?) 신세에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후보 지명 소식을 들은 것도 전쟁 반대 집회를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이었다. “지금의 심경”을 묻는 언론사의 전화에 정보라 작가는 답했다. “춥고 배고프다”고. 그 이후 이어질 4년의 여정을 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세계 문학 행사에 초청받아 다니는 삶은 겉보기만큼 화려하지 않다. 여전히 춥고 배고픈 순간이 잦고, 종종 황당한 일도 벌어진다. 책에서 소개하는 첫 출장지는 부커상 최종후보 시상식이다. 세계문학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는 그 첫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잠긴 문’ 앞에서 시작된다. 행사 시간은 다가오는데 출연자 출입구가 굳게 잠겨 있어 정보라는 어쩔 줄 모르고 그 앞에 서 있었다. 겨우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살벌한 작품과 달리 수줍고 엉뚱한, 사람 냄새 나는 작가들이 있다. 『저 지금 탑승합니다』는 그렇게 무대 뒤편으로 독자들을 데려간다. 한국에서는 보통 기사 몇 줄과 사진으로만 접하는 세계 문학 현장의 모습들이 정보라 작가 특유의 솔직하고 꾸밈 없는 시선을 거쳐 펼쳐진다.
그곳에서 새삼 포착되는 것은 한국문학을 향한 세계의 뜨거운 관심과 열망이다. 정보라 작가는 무심한 듯 기록하지만, 한국 작가의 사인을 받으러 길게 늘어선 줄에서, 읽을 수도 없는 한국어판을 기념으로 구매하는 독자들의 들뜬 표정에서, 대담마다 쏟아지는 질문에서 그 관심이 생생히 드러난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세계의 시선이 다시 한번 한국문학으로 향한 지금, 『저 지금 탑승합니다』는 그 관심이 실제 문학 현장에서 어떤 얼굴로 나타나는지 보여준다. 정보라 작가의 표현처럼 “한국문학, 나아가 한국문화 전체가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세계로 나아가는 바쁜 움직임이 이 유쾌한 백스테이지 곳곳에 담겨 있다.
소설가 정보라이기 이전에 정보라라는 한 사람으로
정보라는 ‘유명 작가답게’ 행동하기보다 자기 방식대로 보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독자들은 당황할지도 모른다. 이름만 들어도 묵직한 시상식에 갔다는데, 수상자 호명과 축하의 순간은 온데간데없고 민망한 듯 자꾸 다른 얘기로 새어버리니 말이다. 정보라는 불편한 시상식 옷차림을 하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행사를 치르느니 집회 현장에서 경찰과 대치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끝없는 기념 촬영과 인터뷰에 바싹 말라가는 수상자들을 보며 “상 안 타서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맹렬해지는 순간이 있다. 한 사람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을 만났을 때다. 숙소 밖에서 시위 소리가 들려오면 곧장 옷을 걸치고 뛰어나가고, 정치적 탄압과 부당한 일을 목격했을 때는 성명서를 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좋은 작품 앞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재빨리 움직인다.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원저자에게 번역 허가를 구하는 식이다. 그가 4년 동안 무지막지한 해외 출장을 소화하면서도 꾸준히 소설을 쓰고 번역을 한 데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독자들은 세계적인 작가 정보라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칠 것이다. 물론 그런 장면이 많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소설가 정보라보다 그저 정보라라는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환호하는 무대와 무너지는 세계를 함께 목격한 기록
정보라가 세계를 횡단한 2022년부터 2026년은 세계가 몹시 빠르게 흔들린 시기였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이듬해에는 가자 지구에 폭격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고 세계를 뒤흔들며, 문학 현장에도 분명히 영향을 끼친다. 전쟁, 난민, 극우 정치, 혐오, 추방, 기후위기는 출장지 바깥의 배경이 아니라 정보라가 발을 디딘 자리에서 실제 장면으로 나타난다. 문학 행사장 바로 밖에서 팔레스타인 학살에 반대하는 외침이 절박하게 울려퍼지고, 책을 매개로 모인 작가들의 대화 역시 자연스럽게 전쟁과 정치로 향한다.
정보라는 초청받은 무대에서 함께 환호하다가도 그 바깥에서 들려오는 구호에 귀를 기울이고, 낯선 도시를 걸으며 그곳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본다. 문학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작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거창하게 선언하기보다 그 자신의 이동과 행보로 보여준다. 폭력 앞에서 말과 글이 무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고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세계의 한쪽은 지금도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정보라는 계속 이동하고 말한다. 『저 지금 탑승합니다』는 난데없이 세계의 호명을 받은 한 소설가의 지난한 출장기이자, 그가 이동하며 목격한 세계의 기록이다. 환호하는 무대와 무너지는 세계, 그 두 풍경이 이 책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
“소설가로서,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말과 글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삶과 진실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외국에 나가 세상의 변화를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할 것이다. 독자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고 싶고, 내 글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추천평
정보라는 주어진 만큼 세계를 지켜보고 그들의 투쟁에 함께하며, 우리의 문학을 세계에 전하는 여정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이러다 말겠지’ 하고 무심히 중얼거린다. 하지만 당신의 문학을 처음부터 지켜봐온 독자는 압니다. 그대의 자리가 마땅하며, 생애 내내 사랑받을 것이며, 이후로도 영영 기억되리라는 것을. 그대가 세상에 연대해온 만큼, 세상이 그대와 함께하리라고.
- 김보영 (소설가)
한국인으로서, 또 사회적 마이너리티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정보라 작가가 그토록 길고 지난한 비행 시간과 시차 적응의 지옥을 이겨내고 기꺼이 이 책을 써내주었다는 사실이 몹시 감격스럽다. 그에게는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강하게 예감했다. 그가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지구를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게 될 것임을. 그리고 확신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역사에 남을 작가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 박상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