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누구의 잘못이었는지는 따져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을 아이에게 묻지는 말아야 한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코피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아이와 어머니를 찾고, 한국인 아버지를 추적하고, 양육비를 비롯한 법적 책임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일할 사람, 비용, 법적인 절차를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 책은 구조적 모순 위에 놓인 코피노의 삶과 현실, 그리고 필요한 지원을 연결하는 해결책까지를 강구한다. 개인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마음과 사회의 빈틈을 발견하는 데에 그 실마리가 있다.
책 속으로
양육비는 좋은 마음으로 내는 돈이 아니라, 아이를 낳았으면 응당 져야 하는 책임에 따른 돈이야. 그 여자를 믿어서 주는 돈이 아니라 아이가 있으니까 보내야 하는 돈인 거지. 그런데 남자들은 양육비를 말할 때마다 자꾸 여자 이야기를 해.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 줄 아느냐, 돈 때문에 접근한 여자다. 나만 만난 것도 아니다”라고 해. 그러다가 안 되면 “그 여자한테는 못 주겠고, 단체에 후원하겠다”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책임을 후원자의 선의로 바꾸려고 하고. 이렇게 돈을 내고 좋은 사람처럼 빠져나가서는 안 돼. 단체가 아이 아버지는 아니잖아. 아이의 돈은 온전히 아이에게로 가야 해.
--- p.11
아이 몸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제때 소독을 못 했는지 허옇게 고름이 차 있고, 벌어진 자리는 얼핏 봐도 꽤 컸다. 밴드라도 하나 붙여주면 좋겠는데, 왜 저렇게 두었을까 싶었다. 죽은 새끼고양이와 아이가 자꾸 겹쳐 보였다. 1980년대 한국에서 내가 자랄 때도 저 아이보다 훨씬 나은 옷을 입고, 훨씬 덜 위태로운 환경에서 컸다. 한국인 아버지를 둔 아이, 지호가 배수로 옆에서 저렇게 자라고 있었다.
적어도 상처가 곪도록 내버려진 채 자라게 해서는 안 됐다. 그때부터 코피노라는 말은 내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세부 마볼로에서 “하프 꼬레아노”, “코피노”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산탄데르의 지호가 떠올랐다.
--- p.27
우선 삶의 무게가 달랐다. 한국 남성에게는 돌아갈 나라가 있었지만, 여성들은 그곳에 살아야 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외국인 관광객과 닿기 쉬운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돈의 무게도 달랐다. 한국인들이 대수롭지 않게 쓰는 돈이 필리핀에서는 며칠 치 생활비가 되기도 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돈이 생계를 잇는 식비, 방세 일부, 가족에게 보낼 현금 등으로 다른 의미를 지녔다.
--- pp.31-32
그녀는 2011년 4월에 아이를 낳았다. 남자는 그보다 석 달 전인 1월에 사라졌고, 한국에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먹는 영양제가 떨어졌고, 옷도 좀 챙겨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다.
--- p.38
나는 그때까지 인생이란 어느 정도 먼 곳까지 생각하며 사는 일이라고 여겼다. 성적, 대학, 취업, 결혼, 차, 집. 그런 것들을 미리 걱정하고 계산하며 사는 게 보통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의 삶은 그렇게 멀리까지 내다보며 흐르는 게 아니었다. 하루 벌어 그날 먹을 쌀을 사는 것이 그곳의 삶이었다.
--- p.45
코피노 어머니들을 이해하려면 형편만 보아서는 안 됐다. 당장 생활이 막막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이들 중에는 가족이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카트린도 그런 엄마였다.
--- p.53
"나는 돈을 바라지 않아. 나는 내 아들에게 아버지가 생긴 게 너무 기뻐 아이에게 아버지가 있는 건 돈보다 소중해."
--- pp.78-79
코피노 남자아이들도 같은 골목을 지나 자랐다. 한국인 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남아 있다고 해서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동네 형 옆에 붙어 다니는 아이였다가, 학교를 자주 빠지는 아이가 되고 나중에는 심부름을 하며 돈을 만지는 아이가 되었다.
--- p.85
그들에게 내일의 나는 꽤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오늘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것도, 오늘 미룬 문제를 다시 붙잡아야 하는 것도 결국 내일의 나였다. 하지만 그 내일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단단히 이어져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내일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지금은 조금 밀어 두어도 되는 사람에 까웠다.
--- p.94
아버지의 이름을 알거나 아버지의 여권 사본 또는 한국 주소를 아는 경우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이들도 간절했다.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고 했고 필요하면 소송도 하겠다고 했다. 그 정도 정보가 있으면 나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자고 하면 일이 멈췄다. 출생신고서를 발급받고, 빈칸을 채우고, 관공서에 가야 할 때가 오면 어머니들은 알겠다고 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곧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서류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 물으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고, 나중에는 연락을 피했다.
--- p.105
나는 그 집에 아람배와 정배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또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니는 임신 중이었다. 이들을 함께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아이들의 아버지가 모두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이 집의 사정이 내가 들은 것보다 훨씬 복잡하겠다고 생각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살림살이가 제대로 정리된 집이 아니라는 게 더 분명해졌다. 밥그릇과 옷가지, 아이들의 물건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제때 씻고 밥을 먹는 집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씻지 못한 얼굴로 문가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 p.110
지난 12년 동안 나는 코피노 아이들이 부랑아로 밀려나거나 골목을 떠돌며 마약 심부름하는 일에 휩쓸리는 것을 보았다. 민재가 그런 길로 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2019년, 골목에서 만난 민재의 모습이 남아 있다. 민재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민재는 본인이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 p.120
영애를 보며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어 가는 코피노 아이들을 십수 년 보다 보면, 아이들이 디서부터 달라지는지 알게 되는 때가 있다. 학교에 다니긴 다니는지 의심이 들 때도 있었고, 학생답지 않은 옷을 입고 밤늦게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도심을 돌아다니는 것을 포스팅하거나, 비싸 보이는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볼 때도 있었다. 유독 여자아이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목격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영애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어 보였다. 미라플로도 그녀가 똑똑하고 학업 성적이 우수하다고 했다. 이 아이가 방황하지 않고 꽃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26
30만 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넉넉한 돈은 아니다. 하지만 그전까지 아버지들의 책임은 사실상 0원이었다.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학교에 돈을 내야 하는 날에도 아버지들의 책임은 없었다. 그래서 30만 원이라는 숫자가 필요한 것이다. 책임이 선의가 아니라, 의무라는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이 들어오기 시작한 집들이 있었다. 몇 달간 어김없이 입금되었다. 그런데 다시 끊겼다. 법원 판결까지 받아냈지만, 그 이상을 강제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 p.137
구본창 선생은 그 일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아버지 한 명을 찾으려 들자 비슷한 사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사진만 한 장 남은 경우, 이름은 있으나 성을 모르는 경우, 오래된 메시지 몇 줄 외에 아무런 단서가 없는 경우들이었다. 한 아이를 위한 추적은 금세 여러 아이가 공통으로 마주한 현실과 맞닿았다. 한 아이를 따라 들어간 길 끝에서, 같은 벽 앞에 서 있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 p.146
필리핀 어머니들에게는 소송을 시작할 돈이 없었다.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도 없고, 한국 쪽 절차를 따라갈 정보도 부족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착수금을 먼저 내라고 하는 건 사실상 시작하지 말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WLK가 먼저 움직였다. 먼저 아이를 찾고, 어머니를 만나고, 한국인 아버지의 이름과 사진과 연락처를 확인했다. 그런 다음 출생신고서를 챙기고, 진술을 정리하고, 한국 쪽 로펌과 연결했다. 돈은 나중이었다. 나중에 결과가 나오면 그 안에서 비용을 회수했다.
--- p.154
한때는 코피노 어머니들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주려는 시도도 있었다. 선교 단체와 연계해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미용실인 토니앤잭키 취업을 알아본 것이다. 물품을 나눠주고 끝나는 지원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만들어보려는 시도였다. 어머니들에게 꽤 괜찮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 p.163
나는 가끔 이 아이들이 결국 어디까지 갔을지 생각한다. 판결문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갈 가능성은 생겼지만, 현실에서는 길이 되지 못했다. 이런 사건들을 보다 보니 ‘끝까지 갔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자꾸 헷갈렸다. 판결문이 나왔다는 뜻인지, 실제 돈이 들어왔다는 뜻인지, 아이가 한국에 들어와 절차를 밟았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종이 위에서는 한 걸음 전진했는데 현실에서는 사람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었다.
---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