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한 걸음만 더 가보자” ― 꼴찌 그룹에서 완주한 사람이 쓴, 가장 느리고 가장 정직한 완주기
도전 에세이는 대개 결승선에서 시작한다. 해냈다는 승리의 축포를 먼저 작성한 후, 고생은 그 선언을 빛내는 배경으로 소비된다. 《250킬로미터의 질문》은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새벽 알람 앞에서 여전히 망설이고, 배 안 매점 줄에서만 선두에 서 보고, 마지막 체크포인트에서 “뒤에 다섯 명이 남았다”는 말을 들으며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런 사람이 7일 동안 250킬로미터를 끝까지 간다. 이 책의 힘은 그 “끝까지”가 의지의 승리담이 아니라, “저 깃발까지만, 다음 체크포인트까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는 작게 쪼갠 마음들의 누적으로 그려진다는 데 있다.
구조가 독창적이다. 전반부 다섯 장은 헤라클레스·시시포스·아폴론의 신탁·아리아드네·오디세우스를 대구의 한여름 강변 훈련, 매일 새벽 4시의 알람, 아파트 25층 계단 오르기 같은 일상의 반복을 병치한다. 후반부 일곱 장은 레이스의 각 스테이지를 신화 인물 한 명의 이름으로 호명한다. 무엇을 짊어질지 고르는 출발 전날은 황금 사과 앞에 멈춘 아탈란타의 날이고, 길을 잃은 첫날은 길의 신 헤르메스의 날이며, 헤드랜턴이 꺼진 80킬로미터의 밤은 잠과 죽음과 낮을 함께 낳은 여신 닉스의 밤이다. 카뮈의 부조리, 에픽테토스의 헤라클레스 해석, 루크레티우스와 에피쿠로스의 소박한 즐거움, 아리스토텔레스의 “함께 소금을 먹어보기 전에는 서로를 알 수 없다” 등등 풍부한 삶과 해석을 곁들인다. 신화 교양서와 완주기가 서로를 설명하는 드문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것은 해석은 아니다. 다리 밑 그늘에서 파는 천 원짜리 얼음 커피, 남편이 침목 위에 슬쩍 떨어뜨려 둔 육포 한 조각, 시골 마을 아주머니가 “브라보” 한마디와 함께 건넨 포도 한 송이, 결승선을 넘고도 메달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스승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저자. 남편과 레이스에 참가해 혼자 먼저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걸음에 맞춰 함께 결승선에 닿는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왜 또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해 망설이는 사람, 되풀이되는 하루가 헛수고처럼 느껴지는 사람, 무언가를 끝내고도 자신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해 본 사람에게 권한다. 마라톤과 트레일러닝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자급자족 스테이지 레이스의 생생한 기록으로,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신화를 자기 삶으로 읽는 방법의 예시로 읽힐 것이다. 전작 《나는 사막에서 삶을 배웠다》가 싱가포르의 서점과 국립도서관까지 닿았듯, 이 두 번째 여정 또한 국경과 언어를 넘어 “흔들리는 나를 끝내 버리지 않는” 모든 이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흔들려도 괜찮다. 멈춰도 끝난 것은 아니다. 어설픈 나를 데리고도, 우리는 생각보다 멀리 갈 수 있다.
책 속으로
■ 프롤로그
나는 내가 믿었던 만큼 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무너지지도 않았다. 한 걸음만 더 가보자. 저 깃발까지만 가보자. 다음 체크포인트까지만 가보자. 오늘 하루만 끝내보자. 그렇게 작게 쪼갠 마음들이 나를 조금씩 앞으로 데려갔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던 길이 다시 나를 불렀다. 이번에도 뚜렷한 확신을 품고 떠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안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질문 하나가 남아 있었다.
왜 다시 출발선 앞에 서게 되는가.
---p.20
■ 제2장 「사라지는 것은 헛된 것일까」
그 질문을 안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다리 밑 그늘에 닿는다. 그곳에는 자전거 한 대가 서 있다. 자전거 뒤에 커피와 얼음을 싣고 온 아저씨가 자리를 잡고, 종이컵에 얼음을 몇 조각 넣어 시원한 커피를 타서 판다. 한 잔에 천 원. 우리는 그 한 잔을 생각하며 달린다. 잔 속에서 얼음이 달그락, 서로 부딪친다. 서늘한 기운이 목을 타고 몸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시원함은 금세 지나간다. (…) 다음 주가 되면 우리는 다시 같은 갈증을 안고 그 자리에 선다. 그런데도 그 한 잔은 매번 반갑다. 어쩌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마실 때마다 그토록 반가운 것인지도 모른다. 영원한 커피는 우리를 반갑게 하지 않는다. (…)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그러나 사라지는 것과 헛된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pp.47-49
■ 제10장 STAGE 4 「함께 간다는 것」
뒤에서 달려오던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 곁을 지나 앞서갔다. 조금 전까지 가까이 보이던 배낭들이 점점 작아졌다. 나는 무심코 그들을 따라 속도를 높이려다가 다시 걸음을 늦췄다. 남편이 한 발을 내디디면 나도 한 발을 내디뎠다. 그가 잠시 멈추면 나도 멈췄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뒷모습보다 이제는 곁에서 들리는 남편의 거친 숨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나는 남편의 보폭에 내 걸음을 맞췄다. 내 걸음도 반 발쯤 짧아졌다.
---p.190
■ 제11장 STAGE 5 「포도 한 송이의 브라보」
마을로 접어들자 집집마다 마당의 포도 덩굴에 노랗게 익은 포도송이가 빽빽이 매달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갔다. 그때 집 앞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한 단어만은 또렷하게 들렸다.
“브라보.”
그녀는 마당으로 들어가 포도 한 송이를 따서 우리에게 건넸다. (…) 서툰 그리스어로 고맙다고 말하고, 우리는 동시에 포도 한 알씩을 입에 넣었다. 달았다. 남편이 천천히 말했다.
“이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포도야.”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함께 웃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지쳐 가던 우리에게 자기 마당에서 자란 포도 한 송이를 내어주었다. 오래 남은 것은 거창한 격려가 아니었다. 환하게 웃던 한 사람과 그녀가 건넨 포도 한 송이, 그리고 짧은 한마디였다.
브라보.
---pp.210-211
■ 제11장 STAGE 5 「불빛 하나로」
남편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은 절대 없어. 너는 이미 충분히 했어. 이 정도면 됐어.”
잠시 뒤 그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나도 이번 한 번이면 충분해.”
나는 힘없이 웃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그리고 천천히 덧붙였다.
“결승선을 넘으면 생각이 달라질걸.”
(…)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자.”
잠이 쏟아졌지만 여기서 잠들 수는 없었다. 남편도 절뚝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더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몸만 앞으로 움직였다. 터벅, 터벅.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우리는 그렇게 밤을 지나갔다.
---pp.218-219
■ 에필로그
나는 아직 이 모든 이야기가 내 삶에서 무엇으로 남게 될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흔들려도 괜찮다고. 멈춰도 끝난 것은 아니라고. 어설픈 나를 데리고도 우리는 생각보다 멀리 갈 수 있다고.
(…) 나는 사막에서 삶을 배웠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다시 삶을 물었다. 끝까지 간다는 것은 결승선까지 나를 밀어붙이는 일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나를 끝내 버리지 않는 일이었다.
---pp.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