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출판사 서평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는 시인이자 산문작가 민병일이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2011)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인문 에세이이다.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을 통해 독일유학중 벼룩시장에서 모은 오래된 만년필ㆍ타자기ㆍ유겐트슈틸램프ㆍ그룬디히 라디오ㆍ반세기 지난 연필깎이ㆍ무쇠다리미ㆍ연장통ㆍ단추ㆍ습도계ㆍ시계ㆍ바이올린ㆍLPㆍ백년 된 찻잔과 찻주전자 등 오랫동안 애착을 가져온 ‘초현실적 예술의 오브제’로서의 사물들을 이야기했던 저자는, 이번 산문집에서는 ‘길 위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창’들을 매개로 철학적ㆍ예술적 사유를 자유롭게 ...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는 시인이자 산문작가 민병일이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2011)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인문 에세이이다.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을 통해 독일유학중 벼룩시장에서 모은 오래된 만년필ㆍ타자기ㆍ유겐트슈틸램프ㆍ그룬디히 라디오ㆍ반세기 지난 연필깎이ㆍ무쇠다리미ㆍ연장통ㆍ단추ㆍ습도계ㆍ시계ㆍ바이올린ㆍLPㆍ백년 된 찻잔과 찻주전자 등 오랫동안 애착을 가져온 ‘초현실적 예술의 오브제’로서의 사물들을 이야기했던 저자는, 이번 산문집에서는 ‘길 위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창’들을 매개로 철학적ㆍ예술적 사유를 자유롭게 풀어낸다.
바이칼 호숫가 리스트뱐카 마을의 창과 샤갈의 창, 함부르크 초가집의 동화적 시정 넘치는 창, 20세기 비애 서린 탄광촌의 창, 소설가 박완서의 숨결이 남아 있는 와온 바다의 창, 일본의 홋카이도 설국의 창, 몽골 초원의 창,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창 등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순례하며 마주한 창들은 고유의 색과 질감 그리고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책에 수록된 200여 컷의, 저자가 여행 중에 직접 찍은 사진들은 여행지의 정취를 날것으로 느끼게 한다. 중세ㆍ현대 서양화로부터 일본 우키요에까지 풍부하게 다루어진 미술 작품들을 따라가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독자들은 “고흐에서 요제프 보이스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이정표를 따라 저자와 함께 산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즐거움뿐 아니라 글 전반에 흐르는,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역시 읽는 이에게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특별한 요소이다.
책의 제목에 언급된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가는 창들을 순례하던 중 ‘눈 덮인 황야에서 노루를 꿈꾸며 홀로 울부짖는’ 이리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고백한다.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는, 저자가 국내외를 방랑하며 10여 년에 걸쳐 묵묵히 ‘창’을 담아온 산문작가로서의 프로젝트이자, 예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인문적 사유의 기록으로, 문학평론가 임홍배 교수의 발문처럼 “한 편의 종합예술작품”으로서 소장가치를 지닌다.
바람이 데려간 여행길에서 내가 본 것은 창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바람은 내게 방랑자가 되라고 했다. 때로는 보헤미안처럼, 때로는 집시처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을 즐기라고 했다. 바람이 부는 대로 길을 걸었다. 코카서스인의 피가 흐르는 집시처럼 유랑에 올라 시베리아 바이칼에서 몽골 초원으로, 함부르크 초가집과 홋카이도 산골, 그리고 동해에서 남녘 끝까지, 바다 건너 제주 섬까지 바람이 되어 떠돌았다. 길 속에 길이 열리고 길 위로 날이 저물어 별이 뜨고, 어느 날은 초승달이 뜨고, 눈이 내렸다. 길 위에 창이 있었다. 창이라는 사물에 숨겨진 삶과 허무, 삶이 창에 남긴 질감, 창이라는 형태가 말하고 있는 예술적인 것을 인문적으로 사유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의 서정적 산문들은 ‘산문 문학’의 부활이라고 할 만큼 아름답다. 지적 허영에 가득 차 쓸데없이 난삽한 이론적 담론이 넘쳐나고 저급한 수준의 대중 영합적 책들이 유행하는 시절에 민병일의 이 산문집은 사물을 향해 움직이는 애틋한 감정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에 신선한 기운을 감돌게 한다. 글과 어울리는 사진작품과 그림들을 보는 즐거움 또한 흔치 않은 일이고, 무엇보다도 책 자체가 예술작품이어서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할 듯하다. 여행자의 통찰들이 깊은 울림을 주는데, 예컨대 오스트리아 빈의 한 골목길에서 나무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한 여자를 보고 “책을 보는 사람의 내면에는 ‘황야의 이리’가 살고 있다. 내면이라는 황야를 달리는 이리는 갈기를 휘날리며 꿈을 찾는다”라고 쓴다. 우리의 마음을 비롯 세상의 모든 창에는 이리가 살고 있다!
-정현종(시인)
이 책은 독자에게 다채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에 담긴 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창에 비친 사물의 내면과 나의 내면이 하나의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울러 창의 영상을 통해 자유연상처럼 펼쳐지는 심미적 사유를 접하면서 우리는 고흐에서 요제프 보이스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이정표를 따라 저자와 함께 산책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섬세한 필치로 아우르는 에세이는 루카치가 에세이의 본질이라 일컬었던 영혼과 형식의 합일에 이른다. 요컨대 이 책은 일찍이 바그너가 꿈꾸었던 한 편의 종합예술작품이다.
-임홍배(문학평론가ㆍ서울대 독문과 교수)의 발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