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치킨의 전설’은 나라시장 한구석에 자리한 배달 전문점이다. 가게 주인 ‘배준환’은 터키식 양념치킨을 내놓고 독일식 맥주치킨을 개발하며 세계 치킨 경연 프로그램 ‘치킨 요리사’의 우승을 준비한다. 왕복 8차선 도로 건너편에 있는 뉴치킨은 이미 대회에서 ‘전설의 치킨’으로 선정되어 황금날개를 차지한 상태다. 뉴치킨을 운영하는 사람은 준환이 과거 근무했던 왕식품의 ‘박성민’ 대표와 그의 아들 ‘준형’이다. 준환은 자신의 처지를 “황금날개는커녕, 나는 아직 길 건너로 배달도 한 번 가보지 못한 처지”라고 말한다. 길 건너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지 못하던 그는 뉴치킨을 이길 새로운 치킨을 만들기 위해 ‘황금닭 컨설턴트’에 비밀 레시피를 의뢰한다.
준환이 박성민 부자를 이기려는 데에는 아들 진수의 일도 관계되어 있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진수’는 준형의 지시로 벌어진 폭력 사건에서 혼자 책임을 졌다. 박성민은 준형을 보호했고, 준환은 왕식품을 떠났다. 진수는 축구를 그만둔 뒤 어머니와 함께 영국으로 갔다. 이후 준환은 채식 식품 사업 등을 시작했지만 여러 차례 실패했고, ‘치킨 요리사’에서 박성민 부자와 다시 만나기 위해 대회를 준비한다.
가게 옆 옥탑에는 흰 수탉 알리를 키우는 ‘이사도라 할머니’가 산다. 할머니는 매주 탑 타워 앞에서 “담을 허물어라!”라고 쓴 피켓을 든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기존 통학로가 담으로 막혔고, 할머니의 손자는 학교에 가기 위해 담을 넘다가 추락해 숨졌다. 준환은 과거 박성민의 부탁을 받고 탑 타워 입주민 동의서에 대신 서명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사도라 할머니는 오래전 청하대학교에 다니던 큰아들이 사 준 치킨을 다시 먹고 싶어 한다. 할머니는 그 맛을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잊히지는 않고 먹어 보고는 싶”은 맛이라고 설명한다. 할머니가 병원에 실려 간 뒤 준환은 황금닭 컨설턴트에 의뢰한 레시피의 목표를 바꾼다. 뉴치킨을 이길 새로운 맛 대신 약 40년 전 청하대학교 근처에서 팔았던 양념치킨을 재현하기로 한 것이다.
치킨의 맛을 찾는 과정에서 준환의 기억은 1983년으로 이동한다. 연탄가스 사고로 할머니를 잃은 어린 준환은 아버지와 함께 오리동 셋집으로 이사한다. 오리동과 길 건너 수리동 사이에는 왕복 8차선 도로가 놓여 있다. 준환은 수리동에 사는 것처럼 행동하며 부잣집 반장 무리에 들어가려 하고, 같은 동네에 사는 양미를 학교에서 모른 척한다. 그림을 잘 그리는 ‘호영’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차별받는다. 준환의 집 뒤채에 사는 대학생 ‘윤하’는 아이들에게 치킨을 나누어 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시 어른들은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과 해고 노동자,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을 ‘불온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말을 따라 친구의 집안과 부모를 평가한다. 준환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피하려고 양미 아버지의 과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운동회에 ‘멋진 엄마’를 데려오겠다는 아버지의 약속과 윤하의 비밀을 맞바꾼다.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학교 운동회가 취소된 날, 경찰은 윤하의 방을 수색한다. 현재의 준환은 옛 치킨집과 레시피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이 외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알렸던 일들을 다시 떠올린다.
여러 사람의 기억을 확인한 준환은 청하대학교 근처에 있었던 치킨집 ‘레전드’와 당시의 레시피를 찾아낸다. 완성된 치킨은 이사도라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놓이고, 배우 강로사가 된 윤하에게 전달된다. 준환은 이 치킨을 들고 ‘치킨 요리사’ 결선에도 참가한다. 그는 대회 인터뷰에서 자신의 치킨에 “추억과 잘못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 무엇보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고 설명한다.
대회가 끝난 뒤 ‘치킨의 전설’에는 탑 타워에서 첫 주문이 들어온다. 준환은 치킨을 배달하기 위해 가게 앞 왕복 8차선 도로를 건넌다. 소설은 “길을 건넌 나는, 하지만 다시 더 먼 길을 건너길 꿈꾼다”는 준환의 말과 함께, 영국에 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그의 다음 계획을 보여 준다.
책 속에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황금날개는커녕, 나는 아직 길 건너로 배달도 한 번 가보지 못한 처지다. 길 건너 사람들은 한 번도 내 치킨을 찾지 않았다. 실수나 호기심으로라도 한 번쯤 찾을 법한데, 내 배달지는 여전히 나라시장 주변에 머물러 있다.
― 1장 웰컴 투 치킨 월드, 10쪽
‘나 좀 구해줘!’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달리는 차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었다. 누군가 내게 구해 달라고 했다.
― 1장 웰컴 투 치킨 월드, 42쪽
“닭은 닭이고 고기는 고기지. 어째 장사한다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 세상일이 그렇게 딱 선을 긋는다고 되는 건 줄 알아? 그렇게 모든 일에 선을 딱딱 그으려고 하니 세상이 이 모양이지.”
― 2장 할머니와 치킨, 73쪽
“그게 말이야. 딱히 어떤 맛이었는지 생각이 안 나. 먹어보면 알 것 같은데 딱히 뭔 맛인지는 모르겠거든.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잊히지는 않고 먹어 보고는 싶고.” 기억은 안 나는데 결코 잊히지 않는 맛. 나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 2장 할머니와 치킨, 85쪽
“안 싸울 것 같아서. 데모도 안 하고. 우리 형이 그랬어요. 만나서 얘기하면 싸울 일도 없다고. 그런데 만날 수가 없잖아요. 육교가 없어서.” 아닌 게 아니라 그림 속 육교 위엔 전투복을 입은 전경과 안경을 쓰고 책가방을 든 남자가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었다.
― 3장 수리동 치킨, 139쪽
한 입 베어 물자 단맛이 강하게 풍겼다. 단맛 속에서 찐득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치킨을 씹고 음미하고 생각하고 떠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비밀의 집으로 달리고 있었다.
― 4장 치킨의 전설, 204쪽
“네, 요리는 단순히 먹을거리가 아닌 만든 사람, 먹는 사람, 바라보는 사람. 여러 사람과 세대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많이 담겨 있지만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담길 겁니다. 제 치킨엔.”
― 4장 치킨의 전설, 230쪽
길을 건넌 나는, 하지만 다시 더 먼 길을 건너길 꿈꾼다. 이번엔 내 앞엔 왕복 8차선 도로보다 더 넓은 바다가 놓여 있다. 눈에 보이는 길을 건너기 위해 한없이 멀어진 또 다른 길.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막막하지만, 꼭 건너야 할 길이다.
― 4장 치킨의 전설, 2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