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거울>
입안에 박하사탕 향이 번지듯 머릿속이 맑아지는 순간이 있다. 뜻밖에도 그것은 현대 수필이 아니라 고전 수필을 읽을 때 찾아왔다. 강희맹의 〈오줌통 이야기〉와 박지원의 〈도로 눈을 감으시오〉를 읽으며 오래 잠들어 있던 감각 하나가 퍼뜩 깨어났다.
세태를 풍자하고 인간의 허위를 드러내는 그 이야기들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왔어도 낯설지 않았다. 권력의 오만도, 인간의 위선도 시대에 따라 옷만 갈아입을 뿐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봉생마중 부부자직蓬生麻中 不扶自直.
쑥이 삼밭 가운데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선다는 뜻이다. 사람 또한 자신이 머무는 자리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빚어진다.
수월 선사도 그러했다. 글을 몰랐지만, 사람을 통해 배웠고, 가르침을 말로 옮기기보다 삶으로 받아들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수행의 길을 걸어 마침내 자신의 생애를 수행으로 만들었다. 세상을 떠날 때 머리에 짚신을 이고 갔다는 일화는 그가 무엇을 품고 살았는지를 말없이 전한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거울 앞에서만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거울이 되고, 어떤 말은 거울이 된다. 우리는 그 거울들 속에서 배우고 경계하며 조금씩 자신을 다듬어 간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가난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평생 거울 없이 살았다. 대신 사람을 거울로 삼았다. 바른 모습은 따라 배우고, 그릇된 모습은 스스로 경계하며 자신의 삶을 가꾸어 왔다. 어느 날 그는 깨진 동경 하나를 주웠다. 냇가에 앉아 그것을 정성껏 닦고 있는데 지나가던 이가 물었다.
“무엇을 하시오?”
젊은이는 손을 멈추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내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잠시 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껏 남을 통해 나를 다듬어 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어떤 얼굴이 되었는지 보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게 된다.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얼굴이 아니라 살아온 삶의 모습이었음을. 얼굴은 거울에 비치지만 삶은 비치지 않는다. 살아온 시간의 결도, 마음이 지나온 길도 유리 속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진짜 거울은 손에 든 동경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 보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흐려지지 않을 때 사람은 비로소 얼굴보다 삶을 먼저 돌아본다. 어느 순간 거울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자신을 비추어 온 시간의 깊이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스승이다.
<낚싯바늘의 함정>
나는 낚시를 즐기지 않는다. 물가에 앉아 세월을 낚는 한유閑遊의 멋은 아름답지만, 생명을 미끼로 속여 낚는 방식에는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낚싯바늘의 미늘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미늘은 한 번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거꾸로 돋아 있는 작은 돌기다. 물고기는 미끼를 무는 순간 먹이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함정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몸부림칠수록 미늘은 더 깊이 박히고,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미끼는 유혹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미늘이다. 유혹은 눈앞에 드러나지만, 함정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낚시는 물고기의 습성을 이용한다. 지렁이 같은 먹이를 꿰기도 하고, 반짝이는 비닐이나 섬유를 달아 살아 움직이는 먹잇감처럼 꾸미기도 한다. 물고기가 노리는 것은 먹잇감이지만, 실제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늘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에는 수많은 미끼가 떠다닌다. 작은 이권, 달콤한 유혹, 손쉬운 성공, 자기합리화, ‘나는 예외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까지 끊임없이 손짓한다. 사람은 미끼만 바라보다가 그 뒤에 숨어 있는 미늘을 보지 못한다. 한 번 걸린 미늘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함께 끌고 간다. 신뢰를 잃고, 명예를 잃고, 삶의 균형마저 무너질 수 있다.
낚시는 취미일 수도 있고 생업일 수도 있다. 그것을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낚싯바늘 하나가 삶의 이치를 일깨워 준다. 세상의 모든 유혹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늘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끼를 경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미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삶에서 필요한 것은 유혹을 피하는 일만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함정을 먼저 알아보는 눈인지도 모른다.
<버려진 의자>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나온 길이었다. 하치장 한쪽에 오래된 목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버려졌다기보다 밀려난 쪽에 가까웠다. 사람의 손을 떠난 물건이라기보다, 사람의 자리에서 비켜난 물건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니스칠은 거의 벗겨져 있었다. 나뭇결이 드러나 있었고, 팔걸이 한쪽에는 금이 가 있었다. 그럼에도 의자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앉을 수 있음”이라는 기능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잠시 의자를 바라보았다. 앉지 않는 의자는 여전히 의자인가. 아니면 이미 이름을 잃은 잔해인가.
버려진 것이 아니라, 버텨낸 것일지도 모른다. 앉는 순간마다 조금씩 닳아가면서도 끝내 형태를 지켜온 시간의 흔적.
바람이 하치장 사이를 지나갔다. 의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앉은 사람도 없는데, 앉아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각이 스쳤다. 버려진 것은 의자가 아니라, 앉는다는 행위의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의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더 이상 인간의 자리가 아니었다. 시간이 잠시 걸터앉았다가 지나간 자리였다.
나는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내가 본 것은 의자가 아니라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의 형태였다는 것을.
<재등장한 오토바이 문화>
요즘 정오 무렵 도로에 나가면 오토바이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조용히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다. 자동차보다 큰 엔진 소리를 내며 곁을 지나가기에, 소리만 들어도 오토바이가 다가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예전의 도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더 흔했다. 그 사이로 소나 말이 끄는 달구지가 오가던 시절도 있었다. 오토바이는 50cc에서 250cc로 배기량이 커지며 한동안 도로를 누볐지만, 자동차가 급속히 보급되면서 그 자리를 내주었다. 어느새 오토바이는 달구지처럼 과거의 풍경 속으로 밀려난 듯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오토바이가 다시 도로를 채우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부분 뒤편에 커다란 배달통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운전자는 헬멧을 쓰고 스마트폰을 거치한 채 주문을 확인하며 달린다. 인기 있는 음식점 앞에는 배달 기사들이 대기하다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출발한다.
이 풍경은 단순히 오토바이가 늘어난 현상이 아니다. 우리의 식문화와 소비문화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사람들은 식당을 찾아가기보다 집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는 일에 훨씬 익숙해졌다. 편리함을 선택한 생활 방식이 한때 사라졌던 오토바이를 다시 도로 위로 불러낸 것이다.
도로의 풍경은 시대의 생활 방식을 가장 먼저 비추는 거울인지도 모른다. 오토바이의 귀환은 교통수단의 변화가 아니라 생활양식의 변화가 만들어 낸 결과이다.
머지않아 드론이나 로봇이 배달을 대신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오토바이 또한 시대가 요구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예전에는 오토바이를 ‘과부틀’이라 부를 만큼 사고가 잦았다. 배달 오토바이가 늘어날수록 안전 문제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속도보다 생명이 먼저라는 원칙만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을 생각하면 배달이라는 새로운 일거리가 생겨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는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도로 위를 다시 달리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시대는 사라진 것을 그대로 되돌려 놓지 않는다. 새로운 필요를 입혀 다시 불러낼 뿐이다. 돌아온 것은 오토바이가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 낸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호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향 집에 들렀다.
허청 벽에 호미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손잡이와 날이 함께 닳아 있었다.
손의 시간이 빠져나간 자리였다.
이제 잡을 사람은 없다. 호미는 벽에 남았다.
어머니가 떠올랐다.
늘 그 호미로 텃밭을 일구던 분, 집에서 몇 걸음 떨어진 땅이었다.
거기서 계절이 지나갔다.
어머니는 허리를 굽혔다. 흙을 뒤집고, 김을 맸다.
그 사이로 전쟁이 지나갔고, 가난이 지나갔고, 자식들은 떠났다.
돌아온 옷에는 쉰내가 배어 있었다. 땀과 흙이 섞인 냄새였다.소매 끝에는 흰 염기가 앉아 있었다.
호미는 그 시간을 함께 견뎠다. 지금은 벽에 걸려 있다.
굽은 날, 짧은 자루. 그것은 물음표였다.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없다.”
호미 위에 겹쳐졌다.
나는 오래 서 있었다.
호미가 묻고 있었다. 너는 무엇을 일구고 있는가.
<베접비 화로火爐>
설이 가까워지면 오래된 방 한편의 화로가 먼저 떠오른다. 숯이 잠든 듯 붉게 숨 쉬던 그 작은 불씨 하나로 방 안의 공기는 달라졌다. 바깥에서 언 손을 들이밀면 감각이 천천히 돌아왔다. 난방이란 말이 아직 가벼웠던 시절, 화로는 집의 중심이 아니라 집의 온도 그 자체였다.
화로는 살림의 격을 드러내는 물건이었다. 백동의 단단한 빛을 지닌 집이 있었고, 청동의 묵직한 숨을 가진 집이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집에는 곱돌의 거친 표면이 있었다. 재료의 차이는 곧 불의 품격이자 온기의 깊이였다. 겨울밤 문풍지가 떨리는 방 한가운데서 잉걸불 하나만 살아 있어도 사람들은 오래 버틸 수 있었다.
설이 다가오면 어른들은 그 불을 먼저 피웠다. 객지에 나간 자식보다 화로부터 먼저 깨웠다. 손님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돌아올 사람의 시간을 데우는 일처럼 보였다. 나 또한 설 무렵이면 괜히 집 앞길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지나가는 차 한 줄기 불빛에도 마음이 먼저 흔들렸다.
입춘이 지나 우수가 가까워지면 겨울은 물러갔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 속 추위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요즘처럼 집 안이 지나치게 따뜻할수록, 오히려 그 옛 온도가 더 선명해진다. 현관을 넘어 들어
오는 순간의 냉기, 그리고 그 끝에서 맞이하던 화로의 숨결.
설날 아침이면 산소를 다녀온 뒤 집집을 돌며 세배를 올렸다. 어느 집이든 먼저 내어주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불이었다. “이리 와서 손부터 녹여라.” 그 말은 문장이 아니라 배려의 온도였다.
그중 오래 남은 장면이 있다. 낮은 처마 아래 금이 간 곱돌화로 하나. 깨진 자리를 삼베 헝겊으로 감싼 채 불을 품고 있던 화로였다. 불은 작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앉아 있었다. 그 집은 늘 넉넉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표정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어른은 늘 먼저 일을 맡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의 일을 외면하지 않았다. 비어 있음이 비굴로 이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선친은 설이면 그 집에 먼저 들르라 하셨다. 이유는 말하지 않으셨지만, 아이였던 나도 알 수 있었다. 그 집에는 ‘있음’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 집의 시간은 고요하지 않았다. 큰아들은 떠돌았고, 작은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마을에 돌아온 것은 사람의 무게를 잃은 작은 유골함 하나였다. 그 뒤로 그 집의 불은 더 오래 꺼지지 않았던 것처럼 기억된다. 꺼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꺼지는 법을 잊은 불이었다.
며칠 전 생활사 박물관에서 인두 하나를 보았다. 짧고 무거운 쇠끝
은 낯설지 않았다. 한때 그것은 화로의 숨으로 달궈졌을 것이다. 옷깃을 다리고, 냄비를 데우고, 굳은 것을 다시 풀어내던 시간. 불은 늘 다른 일을 위해 존재했다.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리는 방식으로.
설이 다가오면 여전히 그 장면들이 함께 떠오른다. 성묘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세배받던 얼굴들, 그리고 이름 대신 온도로 기억되던 말들. “몇째냐”라는 질문은 사람을 확인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데우는 방식이었다.
지금의 집은 너무 쉽게 따뜻하다. 스위치 하나로 온도가 완성된다. 그러나 완성된 온도는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불이 필요 없는 시대일수록 사람은 오히려 불을 더 자주 떠올린다.
내가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은 화로가 아니라, 그 불빛 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금 간 곱돌화로의 삼베 덧댄 자국처럼, 삶은 완전해서가 아니라 깨진 채로 더 오래 남는다.
그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