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JODK의 네 글자에는 식민지 방송의 모순이 들어 있다
경성방송국의 호출부호 JODK는 단순한 식별기호가 아니었다. 일본 본토의 호출부호 체계와 식민지별 호출부호가 달랐던 상황, 경성방송국이 일본의 네 번째 방송국처럼 ‘JO’를 부여받은 경위, 뒤이어 부산방송국이 JBAK를 사용하게 된 사정을 따라가면 방송망의 확장 속에 내재한 식민 통치의 논리가 드러난다. 여기에 단파로 해외 소식을 듣고 전한 방송인들이 체포·투옥되고 옥사한 ‘단파방송 연락운동’까지 더해져, 전파가 통치의 수단인 동시에 저항과 정보의 통로였음을 보여준다.
해방의 환호도, 전쟁의 참상도 라디오 통해 퍼져나가
1945년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과 해방의 함성은 라디오를 통해 퍼졌다. 미군 진주와 함께 일본어 채널이 한국어 채널로 바뀌었고, 국영방송 체제가 본격화했다. 이어 6·25전쟁은 방송시설과 방송인을 동시에 파괴했다. 책은 피란방송의 열악한 환경, 남산방송촌의 건립, 전쟁 중 사망하거나 납북된 방송인들을 사료와 기록을 통해 추적한다. 한덕봉을 비롯해 저자가 파악한 납북 방송인 28명의 기록은 거대한 역사를 개인의 이름으로 되돌려놓는다.
한 개인의 발상에서 시작된 최초의 TV, 민영방송은 어떻게 태어났나
1950년대에는 CBS 기독교방송, HLKZ-TV, 부산문화방송 등 새로운 방송 주체가 등장했다. 특히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TV는 미국 RCA의 한국 대리점을 운영하던 황태영의 발상과 기자재 도입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에는 MBC, 동아방송, 라디오서울·동양방송이 잇따라 출범하며 상업방송 경쟁이 뜨거워졌다. 프로그램, 인력, 송신시설을 둘러싼 경쟁의 현장을 통해 한국 방송산업이 형성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공영방송의 출범과 언론통폐합-성장과 상처가 한 시대에 겹쳐
1973년 한국방송공사의 출범은 KBS가 국영방송에서 공영방송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었다. 여의도 청사 건립과 전문 인력 확충은 새로운 방송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1980년 언론통폐합은 민간방송을 해체하고 공영방송 단일체제를 만들었다. TBC와 DBS의 채널과 인력이 KBS로 흡수되고 MBC가 공영화되는 과정은 오늘날 방송제도의 뿌리를 이해하게 한다. 이 시기 《전국노래자랑》, 《TV문학관》, 《추적60분》, 《전원일기》, 《조선왕조 500년》 등 오랫동안 기억되는 프로그램들이 탄생한 역사도 함께 담겼다.
《겨울연가》에서 종편과 UHD까지, 방송의 무대가 국경과 플랫폼을 넘다
1990년대의 다매체·다채널화, 2000년대의 한류, 2010년대의 종합편성 채널과 UHD 방송은 방송의 경계를 크게 바꾸었다. 《가을동화》와 《겨울연가》가 아시아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었고, 교육방송은 전쟁기 ‘라디오 학교’에서 출발해 독립적인 방송공사로 성장했다. KBS의 우리말 이름 ‘한국방송’이 탄생한 과정, 월드컵 거리응원과 방송, 지상파 최초 UHD 본방송도 한 시대의 변화로 연결된다.
100주년을 앞둔 방송에 없는 것-박물관, 인물사, 그리고 미래 제도
이 책의 시선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방송 사료가 흩어지고 사라지는 현실을 지적하며 한국 방송박물관 건립과 방송 인물사 연구를 100주년의 핵심 과제로 제시한다. 종장에서는 인터넷·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의 확산과 지상파의 재원 위기를 진단하고, KBS·MBC·EBS를 둘러싼 공영방송 제도를 시대에 맞게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송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 곧 방송의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일이라는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