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오뒷세이아』는 본질적으로 구전 전통에서 전승된 서사시다. 고대 그리스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노래를 책으로 담은 것이다. 오늘날 영화나 책은 한번 소비하고 마는 경향이 있지만 그리스인들은 이미 내용을 다 알면서도 반복해서 소비하고 귀에 피가 나도록 부르며 외우고 다닌다. 한마디로 놀이가 된 것이다. 그리스 어린이들은 이 문학을 접하면서 자랐으며 커서도 이러한 문학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서사시는 이야기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양식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뒷세이아』는 구약성경과 유사점이 많다. 유대인들 은 기원전 10세기 책이 등장하기 전부터 모세오경(토라)에 음을 넣어 수없이 많이 외우고 다녔다. 지금도 일부 유대인들은 테필린(Tefillin)으로 손과 팔에 감고 다니며 읽는다. 이들에게 성경은 세상을 이해하는 양식이고 자기의 민족적 종교적 뿌리를 근원에 두는 본질 그 자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인이 읽은 『오뒷세이아』와 유대인들의 토라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1권 I 텔레마코스를 격려하는 멘토르 아테나」중에서
‘크세니아’(ξεν?α)는 ‘환대, 후대, 친절’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그리스어다. 영어로는 ‘hospitality’로 번역한다. ‘크세니아’는 『오뒷세이아』를 관통하는핵심 소재 중 하나다. 위기와 어려움에 빠진 등장인물들이 누군가의 환대를 통해 용기를 얻고 문제를 돌파하기 때문이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가 베푼 환대는 고대 그리스 시대 환대의 정석이라 할 만하다. 시녀들은 먼저 텔레마코스와 페이시스트라토스를 목욕시키고, 새 옷을 입혀준 후에 메넬라오스 옆의 안락의자에 앉힌다. 그 후 갖가지 음식과 함께 포도주를 놓고 만찬을 즐긴다. 관례에 따르면 식사 후 게스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를 물어야 하지만, 오뒷세우스의 아들임을 직감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그의 상실감을 진심으로 위로해준다.
---「4권 I 환대의 힘」중에서
아버지를 향해 걸음을 내딛는 아들의 마음과 20년 만에 집으로 향하는 오뒷세우스의 마음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아들의 마음엔 거부감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아들은 그런 두려움으로 아버지 집의 품꾼이 되어도 마땅하다는 각오다. 아들의 마음엔 아버지의 환대는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그에 반해 오뒷세우스의 마음은 어떠할까.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며 이미 아들을 만났다. 이젠 그가 사랑하는 페넬로페를 만나야 한다. 거지의 모습을 한 오뒷세우스는 어쩌면 그의 마음을 대변할 수도 있다. 그만큼 그의 마음은 너덜너덜하고, 페넬로페에게만큼은 자신을 자신 있게 내 비출 수 없다. 이런 자신이라도 페넬로페가 맞이해 줄 수 있다면, 그 환대만으로 오뒷세우스가 집 밖에서 겪은 20년의 외로움은 보상될 것이다.
---「17권 I 돌아온 오뒷세우스, 주위의 반응」중에서
페넬로페의 직조는 ‘지혜로운 유예’이자 자신을 지키는 방어막이다. 그녀가 밤마다 베를 푸는 것은 오뒷세우스가 돌아올 ‘현실적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행위다. 그녀의 기다림은 남편의 귀환이라는 확실한 사건을 목표로 하며, 그 수단으로서의 직조는 외부 세계(구혼자)와의 싸움이다. 한용운의 “수의 비밀”에 나오는 자수(刺繡)는 “역설적 승화”이며, ‘구도(求道)의 과정’이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하는 이유는 솜씨가 없어서가 아니라, 님을 향한 사랑이 너무나 커서 인간의 기술로는 다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별의 슬픔을 자수라는 행위를 통해 ‘찬란한 기다림’으로 바꾸는 정신적 승화다.
---「5분 인문학 I ‘기다림’의 인내와 미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