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남겨진 돌 하나에도 천년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전국의 폐사지를 걸으며 사라진 가람의 역사를 만나는 여정
책은 강원도에서 시작해 경기도와 경상도, 전라도를 거쳐 충청도로 이어지며 우리나라의 주요 폐사지 30여 곳을 답사한다. 강원도의 산과 계곡에 자리한 옛 절터에서는 고승들이 남긴 흔적과 자연 속에 스며든 불교문화를 만나고, 깨달음의 의미를 생각한다. 이어 경기도에서는 한때 번성했던 사찰의 역사를 따라가며 흥망성쇠와 시간의 무상함을 떠올린다.
신라의 흔적이 짙게 남은 경상도에서는 찬란했던 과거를 마주한다. 사찰을 세우고 탑을 만들며 불국토를 꿈꾸었던 사람들의 염원,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신앙,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라져 간 과정을 함께 바라본다. 전라도에서는 백제가 꿈꾸었던 미륵의 세계와 후대 사찰의 흔적을 만나고, 문화유산이 겪은 훼손과 수탈의 역사에도 시선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충청도에서는 사라진 왕국과 옛 가람의 자취를 따라가며 석탑과 불상, 비석 등에 남은 역사의 궤적을 되짚고 변화와 기억, 길과 삶의 의미를 돌아본다. 지역마다 만나는 풍경과 이야기는 다르지만, 그 여정에서 반복해서 마주하는 것은 시간 앞에서 변하고 사라지는 인간과 그럼에도 남겨지는 기억이다.
또한 『사라진 옛 절터』에는 각 폐사지의 이야기를 여는 글귀가 실려 있다. 불교 경전과 선승의 가르침부터 이백과 보들레르, 페소아와 푸시킨, 카프카와 니체, 비트겐슈타인과 이문구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문화권을 넘나드는 문장들이 폐사지의 풍경과 만난다. 폐허와 소멸을 바라보는 문학의 시선과 인간의 의지,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오래된 절터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 결과 폐사지는 과거를 설명하는 장소를 넘어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도 끝내 남는 것이 있다”
폐사지에서 시간과 삶, 기억의 의미를 되묻는 인문기행
『사라진 옛 절터』는 폐사지의 풍광을 소개하고 유적의 연대와 건축적 특징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이 품었을 생각으로 시선을 넓힌다. 왜 이 깊은 산중에 절을 세웠을까. 무엇을 염원하며 석탑을 쌓았을까. 한때 이곳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으며, 그들의 바람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향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쌓으며 살아간다. 더 많은 것을 갖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애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쌓아 올린 것들은 얼마나 오래 남을까. 폐사지는 시간이 문명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보여 주는 풍경이기도 하다. 한 시대의 권력을 상징하던 사찰도 자취를 감추고, 그곳에 머물렀던 고승과 신도들의 이름도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천년을 견딘 석탑 앞에서는 한 사람의 생이 얼마나 짧은지 실감하고, 흔적조차 희미한 절터에서는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지는지 되새기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소멸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라진 자리에서 새로운 발견이 시작된다. 절터에 남은 흔적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과거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겨진 석탑을 통해 역사를 되살리고,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며, 잊힌 공간을 다시 기억하는 순간 과거는 현재와 연결된다.
『사라진 옛 절터』는 사라진 절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지만, 결국 사라지지 않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은 오래된 절터 앞에 선 독자에게 조용히 질문을 건넨다.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을 따라 걷는 인문기행이다.
추천사
조용헌 (칼럼니스트, 강호동양학자)
신정일 선생은 건강하다. 70대인데도 이렇게 전국의 폐사지 답사를 다니며 책을 낸다는 것이 그렇다. 폐사지를 다니다 보면 공空을 느낀다.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한 글자로 압축하면 ‘공’이다. 넓은 공터에 오직 돌탑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고, 주변 산천은 숨죽이며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 폐사지이다. 다 지나가고! 다 사라졌구나! 하루하루 뭔가 채우고 더 벌고, 더 성취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향하여 크게 한 방 먹이는 풍광이 폐사지이다. 도시의 건물이 무너지면 다시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만, 폐사지는 그대로 비어 있다. 비어 있으면서도 과거에는 불멸과 영혼을 추구했던 신앙심들이 뭉쳐 있었던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대비되는 마음이 묘한 슬픔을 준다. 그 슬픔이 공사상으로 이어지고, 그 공의 철학이 결국에는 마음을 크게 열게 하고 일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폐사지의 미학이라 할 것이다.
김태식 (문화유산 전문 언론인)
세월이 짓밟은 오래된 절터는 주름투성이에 땀범벅인 늙은 우리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 같다. 그건 아틀라스의 어깨가 짊어진 지구본보다 더한 육중이요, 제우스가 삼지창을 겨눈 분노보다 더한 근엄이다. 선도산 너머로 지는 해가 황룡사지 장육존상의 뺀질한 화강암을 비추는 찬란한 황홀과 그에서 비롯하는 거룩한 허무를 본 적 있는가? 여기 국토 유산 답사의 위인 신정일이 절터를 보듬는 따뜻한 어루만짐이 있다. 그의 발끝에서 절터들이 아우성친다. 나는 죽지 않았다고. 나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고. 여기 그 잔잔하면서도 따듯하며 둔중한 울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