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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작품 해설
다자이 오사무 연보
저자 소개
저자 : 다자이 오사무
본명은 쓰시마 슈지.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에서 부유한 집안의 11남매 중 열째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병약해 나면서부터 유모 손에서 자라다 이후 숙모에게 맡겨졌다. 어려서부터 작문과 외국어에 재능을 보였고,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최초의 자살 미수 사건을 일으켰다. 1930년 도쿄제국대학교 불문과에 입학 후 긴자의 술집 종업원과 함께 바다에 투신해 혼자 살아남기도 했다. 이후 좌익운동을 하다 대학을 중퇴했다. 1935년 문단 데뷔작인 소설 〈역행〉을 제1회 아쿠타가와상에 응모하나 차석에 그쳤고, 1936년 첫 소설집 《만년》을 출간해 작가로 인정받았다.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약물중독 치료를 받던 중 1938년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초대로 덴가차야에 석 달간 머물며 안정을 찾았고, 이부세가 소개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식을 올렸다. 1947년 발표한 《사양》이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정신적 공황에 빠진 일본 젊은이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데카당스 문학’ 대표 작가로 최고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48년 《인간 실격》 집필 후 결핵을 앓는 그를 돌보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다마강에 투신해 3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출간된 《인간 실격》은 전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로 현재까지 천만 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자 : 오유리
성신여자대학교 일문과를 졸업하고 롯데 캐논, 삼성경제연구소에 재직하는 동안 번역 업무에 종사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역서로 소노 아야코의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시게마쓰 기요시의 《오디세이 왜건, 인생을 달리다》, 《소년, 세상을 만나다》, 《안녕 기요시코》, 요시다 슈이치의 《워터》, 《일요일들》, 《파크 라이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사양》,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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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일본 근대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작가,
다자이 오사무 생전 최고의 인기작 《사양》


“도대체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혁명을 꿈꾸었던 적도 없고 사랑도 몰랐다.
(중략)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서서히 파멸해가는 존재의 유구한 아름다움에 관하여
높이 떠올라 온 세상을 비추었다가 빛을 잃고 한 편으로 스러져가는 태양처럼 몰락해간 사람들……. 《사양》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무너져가는 귀족 집안과 시대 의식을 그린 작품이다.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종전의 히트를 기록한 다자이 오사무 생전 최고의 인기작이자, 사후 출간된 《인간 실격》과 더불어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는 대표작이다. 소설의 주인공 가즈코는 몰락한 가난한 귀족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임신 중 아이를 사산한 아픔을 지닌 스물아홉 살의 여자다. 가즈코는 이혼 후 기품 있고 아름다운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 병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를 돌보며 지낸다. 남동생 나오지는 마약 중독자로 집에 큰 빚을 안기고 전쟁에 나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다. 가즈코와 어머니는 집안 형편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한다. 갑작스러운 나오지의 귀환으로 조용하던 모녀의 생활에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된다. 과거 나오지의 마약 빚을 갚느라 돈을 마련하기 바빴던 가즈코는 나오지가 스승으로 따르는 소설가 우에하라를 만나게 된다. 짧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에서 가즈코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우에하라는 가즈코가 훗날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어머니가 결핵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고 점차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내기를 세 차례, 답장은 오지 않는다. 그를 만난 것은 6년 전으로 그것도 딱 한 번이었지만 그를 만나야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다시 찾아간다.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술에 빠져 사는 우에하라를 만난 가즈코가 그의 아이를 가진 바로 이튿날 동생 나오지가 자살한다. 나오지는 가즈코에게 순수함과 고귀함이 존중받지 못하는 위선적인 세상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괴로웠던 자신의 처지를 고백하는 편지를 남긴다. 나오지의 사망 후 한 달여 산장에서 혼자 지내던 가즈코는 우에하라에게 마지막이 될 편지를 쓴다. 가즈코는 편지에서 자신이 우에하라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이 자신의 도덕적 혁명의 완성이라 말하면서 작품은 끝을 맺는다.

모래 속에 묻힌 사금을 추어내듯,
절망의 어둠 속에서 밝은 희망을 길어 올리는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 가즈코와 남동생 나오지는 과거에 귀족으로서 누렸던 모든 지위와 특권을 잃고 몰락한 현실에 맞닥뜨려 끊임없이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이 두 사람을 통해 상실의 슬픔과 삶의 허망함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다.

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재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그 전 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재밌는 시가 종전 직후 어느 신문에 실렸는데,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에 공감하게도 된다. 전쟁의 추억이란 건 말하기도, 듣기도 싫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죽었는데도 진부하고 지루하다. (42쪽)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어제 함께 이야기하고 밥을 먹던 이웃이 죽어나간다. 그런데 아무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죽음에 무감각해졌다는 것. 삶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고 곧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전쟁이 초래한 가장 큰 비극이 아닐까. 순수를 희구하던 나오지는 참혹한 전쟁을 겪고 아편 중독자가 되어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왔다. 허례허식에 젖은 예술가와 구시대 식자(識者), 귀족들에게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그들과 어울려 방탕하게 생활한다. 그러다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던 작가 우에하라의 부인에게서 가식과 사심 없이 배려하는 순수한 인간성을 발견하고 탐닉한다. 죽는 순간까지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귀족 신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는 자신의 결심을 밀고 나가기에 너무 나약했던 시대의 낙오자였다. 반면 가즈코는 낡은 도덕과 사상을 무시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힘든 현실을 타파하고자 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아 혼자서라도 키우겠다는 뜻을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이뤄 스스로 생의 씨앗을 심었다. 《사양》은 제목에서 연상되는 바와 같이 단순히 스러져가는 것, 몰락해가는 것을 주제로 한 작품이 아니다. 마치 모래 속에 묻힌 사금을 추어내듯, 진흙탕 같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 의지의 혁명을 꿈꾸고 이뤄나가는 아름다운 인간의 이야기다.

“혁명을 꿈꾸었던 적도 없고 사랑도 몰랐다.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다자이의 작품들을 혹평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그가 “다자이 오사무 작품 중에서 여성을 가장 탁월하게 그려낸 역작”이라며 칭찬한 작품이 바로 《사양》이다. 이처럼 《사양》은 일본의 패전과 몰락 계급의 비극적인 삶을 여성의 목소리로 그린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물론 이 작품이 발표된 지 70년이 넘게 흐른 데다 특히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당시 일본 사회상과 분위기가 작품 곳곳에 배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어온 현대 독자들의 감수성에 비추어본다면 이 작품을 페미니즘 작품으로 높이 칭송한 평가가 다소 퇴색되어 보일지 모른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혁명을 꿈꾸었던 적도 없고 사랑도 몰랐다. 지금까지 이 세상 어른들은 혁명과 사랑, 이 두 가지를 가장 어리석고 흉측한 것이라고 우리에게 주입해, 전쟁 전이나 전시에나 우리는 배운 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패전 후,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뭐든 그 사람들이 말하던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 진정 살길이라 여기게 됐다. (…)
나는 확신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살아왔다고. (121~122쪽)

희망찬 새천년을 맞이하며 지난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재건을 다짐했던 인류가 또다시 잔혹한 전쟁을 일으킬 거라 누가 예상했던가. 지금 우리는 시시각각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생생하게 전해 듣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을 바쁜 일상을 보내며 쉬이 잊고 무덤덤해진다. “우리는 배운 대로만 알고 있었는데 패전 후, 우리는 이 세상 어른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라는 《사양》 속 문장은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마땅한 어린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말하고 제 살길만 찾았던 어른들, 축제를 즐기러 갔다가 많은 사람이 참변을 당했지만, 실은 희생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안타까운 인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여전히 책임 회피에만 바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 “뭐든 그 사람들이 말하던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이 진정 살길이라 여기게 됐다”라는 문장에 우리는 가슴 아픈 공감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후 격변의 시기를 겪으며 불안과 암울이 만연한 일본 사회를 밝게 비추고 방황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다자이 오사무의 이 작품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많은 독자의 가슴에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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