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지금도 나는 배운다
저자는 “사십 대만 되어도 대가 행세를 하고, 소속 집단에서 군림하려 들며, ‘나 때는 말이지’를 예사롭게 읊조리는 그런 ‘권위의 조로 현상’이 대세인 한국에서 고야와 같은 행보는 몹시 낯설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일명 ‘꼰대’들이 사용한다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을까? 고야는 죽기 직전 해, 82세의 나이에 <지금도 나는 배운다>라는 작은 소묘를 그렸다. 허리가 굽은 백발의 노인은 지팡이를 두 개나 짚어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와 배움을 향한 눈빛만은 잃지 않았다. 고야의 삶에서, 첫 분기점은 사십 대 후반이었고 두 번째 분기점은 육십 대였다. 육십 대 이후 고야의 예술은 절정에 이르렀으며,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는 석판화를 배워 활발한 작업을 했다.
우리는 고야를 유심히, 제대로 보아야 한다. 고야를 깊이 이해하지 않은 채 그림만을 두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고야를 알기 위해서는 18세기, 19세기 스페인을 알아야 한다. 스페인은 유럽이지만 당시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이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모두 엉망인 그런 극단적 모순에서 철저한 부정과 완전한 신생의 사상이 나오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지금, 우리에게도 그러한 사상이 필요하다.
고야, 권력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저항하다
고야는 권력이 사랑했던 비너스나 모나리자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부정했다. 그런 수만 년 동안 수용되었던 아름다움 대신, 고야의 그림에는 기괴한 괴물들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고야를 아예 ‘괴물’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그러나 고야는 고약하지도 않고 괴물도 아니다. 고야가 그린 괴물은 오락영화에 나오는 괴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지배하고 억압하며 차별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하며 비합법적인 권력을 뜻한다.
고야는 권력을 추악하게 그린 최초의 화가이다.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숭상되던 절대 권력을, 다른 관점에서 그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고야는 미의 해방자, 이단자가 되었지만 고독했다. 그러나 고야는 젊은 화가들이 마음속에 품었던 표현의 자유를 대변해 주었다. 이로써 출세를 위해 그림을 그리던 시절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택하면서 그야말로 근대 회화는 물론 현대 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야가 살았던 18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야가 그토록 내쫓고자 했던 괴물은 아직도 우리 곁에 존재한다. 온갖 사회악과 욕망, 위선으로 가득 찬 이 시대에서, 고야는 우리에게 낱낱이 드러난 괴물의 실체를 보여주며 인간 정신의 모순을 성찰하고 반성하게 한다. ‘괴물’을 그린 화가, ‘괴물’같은 화가 고야가 진정으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 붓 끝을 통해 저항한 지성인 고야를 만나 보기를 바란다.
『저항하는 지성, 고야』 이렇게 읽자
이 책의 제1장은 서론 또는 총론 격으로 스페인 문화와 역사, 스페인 지방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는 스페인에 대한 이미지로부터 시작해, 고야 시대까지의 스페인 역사와 스페인의 지역적 특성을 소개한다. 본론에 해당하는 제2, 3, 4장에서는 고야의 삶과 예술을 시대상황 속에서 추적한다. 제2장은 스페인 미술을 소개하는 것으로 문을 연다. ‘스페인 미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저자에게 고야는 어떤 의미인지로 시작하여 고야의 출생, 출세의 시기, 카를로스 3세 시기의 개혁과 진보와 반동의 역사를 다룬다. 또한 초기 칼톤과 함께 종교화, 초상화, 자화상을 소개한다. 제3장은 고야에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위기였던 세기말을 다룬다. 프랑스 대혁명이 있었고 청각을 상실했을 때의 작품 활동들이다. 또한, 《로스 카프리초스》에 실린 작품들과 함께 그에 담긴 사상도 같이 소개한다. 그리고 고야가 그린 마지막 왕족 초상화인 〈카를로스 4세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그림은 왕족을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 매우 인상적인 작품으로, 화려한 복장의 묘사 속에서 고야는 그들에 대한 모욕과 결별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 후 고야는 왕가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끝내고 더 이상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다음 제4장에서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침략으로 이어지는 제2의 비극과 전쟁 속의 고야에 대해 다룬다. 1810년대의 유화들과, 전쟁을 바라본 고야의 시각을 다루며 판화집 《전쟁의 참화》에 대해 소개한다. 이어 1814년, 고야는 5월의 그림들을 그린다. 고야는 민중을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역사화를 등장시켰다. 전쟁 그 자체의 현실을 그린 것이다. 후기 작품에서는 〈이단심문소의 풍경〉으로 대표되는 종교나 권력의 풍자 및 권위에 대한 조롱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판화집 《투우》에서는 고야가 사용한 다양한 기법들은 물론 작품에 투사한 자신의 운명과 예술가의 사명 또한 알 수 있다. 이어 등장하는 만년에 그린 《검은 그림》들은 그의 내면세계를 온전히 드러낸 작품들로 삶과 욕망, 권력에 대한 비관, 환멸, 숙명, 회한에 대한 고발들이다. 이어 고야가 사후에 재평가되기까지의 이야기들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제5장에서 고야 사후의 스페인 정치 및 문화, 교육, 사회적 상황에 대하여 검토하며 스페인에서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리즈 소개 _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 시즌2>
어떤 인물을 ‘속속들이 안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한 인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시대는 물론 삶과 행적, 사상까지 꿰뚫어보아야 하고, 균형 잡힌 시각과 비판의식 또한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기의 인물을 대할 때든, 새로운 사상을 접할 때든 남의 시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극단적인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정보를 선택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일상에 녹이는 것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박홍규의 호모 크리티쿠스>는 그럴듯한 정보와 일방적인 주장 속에서 방황하는 독자들에게 정신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역사의 그물이라는 큰 틀 안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그 올바른 길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시리즈는 진보적 법학자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르네상스맨 박홍규 교수의 총서로서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위대한 사상가, 작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