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러시아 민족의 이론적, 정치적 곡예의 역사
러시아 민족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러시아 역사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쟁점이었다. 다른 제국 국가들처럼 러시아에서도 제국이 먼저고 민족이 그다음이었기에 정치적 국면과 제국의 이해관계가 재편될 때마다 민족을 정의하는 논리 또한 새롭게 설정되었다. 저자는 15세기 후반 이반 3세의 모스크바 공국이 몽골 칸으로부터 독립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약 600년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등 동유럽 이웃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키이우 루시의 영토적·상징적 통합을 회복하고자 모색했던 이론적, 정치적 곡예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 책은 특히 러시아 민족과 제국의 형성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던 우크라이나에 집중한다. 러시아 민족 정체성은 우크라이나와 키이우 루시라는 신화를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영토로의 확장과 우크라이나 지식인들과의 사상적 교류에 따라 재구성되어왔다. 17세기 키이우 수도사들이 집필한 러시아 최초의 역사 교과서 『개요서』는 키이우 루시 영토에 살았던 사람들을 포괄하는 ‘슬라브-로시아’ 민족 개념을 제시했고, 이 책은 러시아에서 150년 이상 기본 교재로 자리매김하며 이후 민족 개념 논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모스크바 제국이 러시아 제국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도 키이우 지식인들이 서양에서 모스크바로 들여온 근대 민족 개념이 전통적 왕조와 종교 개념과 결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 국가 구축에 기여했다. 19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서부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영토를 두고 폴란드 반군과 다툴 때도 키이우는 교육 기관, 고고학 연구 등 새로운 제국 정체성을 건설하는 현장이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슬라브인의 민족주의가 부상하며 러시아 민족 정체성 모델과의 긴장이 고조된다. 러시아 제국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러시아인(러시아인), 소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백러시아인(벨라루스인)으로 삼분된 러시아 민족 개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세 민족을 문화적 외투 아래 통합하려는 목표로 제시된 언어적 개념일 뿐, 각 민족에 자치권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거치며 이 제국적 민족 모델은 붕괴되고,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은 각자의 영토를 주장하는 별개의 민족으로 자리잡는다.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볼셰비키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수립하면서 세 민족은 각각 공식적으로 독립된 공화국을 갖추게 된다. 소련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배척하고 민족 간의 평등한 공존을 표방했지만,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토착화 정책을 펼치다가 이를 번복하고 억압하는 등 일관되지 않은 민족 정책을 펼쳤다. 결국 소련 정권은 러시아 민족을 동등한 여러 민족 중 으뜸이 되는 부류로 규정하고, 모스크바에 권력을 집중시켰으며 러시아어를 소련 전역에서 사용하게 하는 등 러시아 문화에 동화시켜 제국주의가 발전할 토대를 마련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는 제국의 유산을 되살려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구축하려 했고, 결국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러시아 제국이 지배하던 역사적 문화적 공간의 해체를 앞당겼다. 2005년에서 2015년 사이, 두 민족이 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러시아 국민의 비율은 81퍼센트에서 52퍼센트로 줄어들었으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 또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러시아인이 주민 다수를 이루던 크림반도와 돈바스 일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점령은 전선 양쪽에서 인종적 민족성을 강화했다.
이 모든 논쟁의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범러시아 민족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안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제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의되어야 했던 불안정한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범러시아 민족을 지탱하기 위해 러시아의 사상가와 지도자들이 감행한 이론적·정치적 곡예는 민족과 제국의 관계를 푸는 데 끝내 실패했다. 그 허망함을 저자는 절제되고 균형 잡힌 논조로 생생하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