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말하지 못한 마음이 풍경이 되어
사람과 시간을 다시 부른다
이광순의 수필은 여행을 관광 체험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음악을 단순한 해설로 끝내지 않는다. 낯선 길은 자신과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성찰의 자리가 되고, 음악은 내면 깊이 숨은 감정을 불러내어 위무하고 정화하는 삶의 동반자가 된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가족의 기억, 죽음과 이별, 일상의 관계 또한 부드럽고 묵묵한 문장 속에서 되살아난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비우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돌아볼 때, 그 빈자리는 오히려 더 깊은 의미로 채워진다. 『말 없던 말』은 연꽃이 진흙을 품어 꽃을 피우듯, 상처와 침묵을 삶의 성숙으로 바꾸어 가는 한 사람의 여정을 보여준다.
-박덕규(문학평론가)
이광순의 글은 오래된 노래 한 곡, 은단 한 알의 맛, 낯선 길에 남은 발자국에서 시작된다.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과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먼저 떠난 친구와 젊은 날의 자신이 걸어 나온다. “유년의 기억이 머무는 곳이 고향이다. 힘든 기억마저도 다정해지는.”이라는 문장처럼, 작가는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게 꾸미기보다 지금의 눈으로 다시 만져 본다.
여행지에서 만난 섬과 오름, 공연장에서 들은 음악, 마당의 꽃과 오래된 턴테이블은 모두 삶의 한때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 그리고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은 몽골 초원에서 마주한 말의 깊은 눈망울처럼 오래 가슴에 남는다. 『말 없던 말』은 그렇게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사람과 시간을 하나씩 불러내어, “과거의 떨림을 소중한 울림으로 치환해 내는” 수필집이다.
-청어 편집부
책 속에서
내 차는 수동식이다. 수동식 차는 클러치 감각이 중요하다. 이번 여행 중에 신호대기를 하다가 출발할 때 클러치를 서서히 놓아야 하는데 급하게 놓은 탓에 세 번쯤 시동을 꺼뜨렸다. 뒤차에 미안하다는 깜빡이 신호를 보내고 다시 출발하면서 아마 사는 동안에도 시간의 클러치를 잘 조절하지 못해 덜컥거렸던, 혹은 절망으로 시동을 꺼뜨리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실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그랬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말들이 버겁게 느껴지던 순간 가슴속에서 급하게 놓아버린 클러치가 덜컥 심한 진동을 일으켰다.
돌아오는 길은 국도로 쉬엄쉬엄 왔다. 삽교천 해안 공원 카페에서 이틀 동안 보았던 바다와는 또 다른 갯벌 바닷가를 바라보며 커피도 마셨다. 산사에서, 성지에서 걷다가 만났던 여여(如如)한 사물과 바닷가에서 일몰을 기다리던 시간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늘 달려갈 ‘그곳’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과 클러치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왼발의 감각도 돌아온 것 같다.
- 「시간의 클러치를 조절하며」 중에서
에른스트 블로흐는 ‘음악을 들을 때 우리 자신을 듣는다’라고 했다. 즉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뜻일 것이다. 같은 곡이라도 계절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은 그의 말처럼 연주되는 선율 위로 내 생각이 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도 공연장에서 관현악을 들을 때면 유독 마음을 잡아끄는 한 악기의 소리를 쫓게 된다. 그렇게 음악을 빌려 때로는 관악기에, 때로는 현악기에 나의 사유를 싣는다.
음악에 심취하고 그 안에서 위로받으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그날 팀파니가 전해준 ‘쿵’ 하는 놀람이 내 생의 박동으로 들어와 준 덕분이다.
- 「그날, 음악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중에서
몽골에서 말과 헤어지던 날. 잘 지내라는 내 말을 알아듣는 듯 머리를 들고 멀리 울음을 울었다. 그 말은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네 굽으로 땅을 두드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가끔 그 둔탁한 타격음이 내 심장 소리와 섞여 들고, 먼 기억 속 목마가 다시 삐걱거리며 되살아난다. 그럴 때면 이 말의 등에 앉아 어딘가로 부단히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말이 없던 말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아무 말 없이 내 넋두리를 들으며 눈만 끔벅여 주던 말이, 아니면 그런 사람이.
- 「말 없던 말[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