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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난 너의 무덤이 될 거야, 넌 나의 묘비명이 될 거야
공동체
밤의 경주
슈퍼 블러드문
블랙 샌드 비치
한밤중에 눈이 내리네 소리도 없이
한 그루 라락일이
연인
평온
연화 교차로
죽은 나무
붉은 석양의 언덕
우리는 멀어지고 멀어지며 사랑한다
산책
흰 복도에 앉아

2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슬픔의 일을 했다
건널목 옆 정류소
희망
우기
제주 버스
제주도 푸른 밤
진눈깨비
신도시
반구대 암각화
손톱달
우연히 본 새에 관하여
너무 많은 저녁
조용한 배웅
일기 예보
블랙 펭귄

3부 내 집엔 사랑이 넘치죠 깊고 검고 무서운
인형의 집
관찰의 기술
앨리스의 세계
습기의 내력
아무도 모르는 사람
메아리의 형태
만남의 광장
검은 강이 흐르는 동네
소설
찰흙 놀이
경주
시부야의 저녁
quill
슈퍼 블루문

4부 우리 없는 자리마다 흔들리는 풀들
귀울림
실감
자유
타워에서
골동품
그림자의 형태
저녁의 홀리 모터스
새출발
카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Dies Sextus
목성
폭설 주의보
보스턴 고사리
두 사람
미래의 형식
나는, 나를, 아무

해설
되돌아오는 이름의 시간
―최진석(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저자 : 김지숙
2022년 《시와 사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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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의 시는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어떤 존재에 대해 끝없이 말한다. 그/녀는 옆얼굴로만 존재한다. 그/녀의 앞에서 내가 걷거나 내가 그/녀의 뒤를 따라 걷는다. 앞선 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뒤에 남은 이는 나를 붙들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네가 사라질까 봐 나는 앞만 보고 걸어”(「우리는 멀어지고 멀어지며 사랑한다」). 그/녀는 나의 전부였고 나의 모든 결여를 채워 준 존재이다. 그/녀는 나의 불안한 영혼을 이해해 주고 껴안아 주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자연물은 그/녀의 부재를 확인하게 해 주는 증표에 지나지 않는다. ‘너’는 죽음의 넝쿨 속에서 계속 가시에 찔리고 있고 ‘나’는 기억의 넝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은 것은 겹쳐진 발자국과 포개진 그림자뿐. 어쩌면 사랑은 멀어짐과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멀어짐이 사랑을 증폭하고, 그럼으로써 멀어짐은 진정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이 된다. 말해지는 만큼 말해지지 않는 부피가 더 커지고 말해지지 않는 만큼 말해지는 영역이 더 넓어지는 관계망 속에서, 흔들리는 풀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부름이 남아 있다. “난 너의 무덤이 될 거야/넌 나의 묘비명이 될 거야”(「연인」). 너는 나의 죽음을 대신 미리 겪으면서 품어 주고 그 때문에 나는 너의 죽음의 증거가 되고 그 의미를 끝까지 되새기는 일. 너와 나의 주고받음과 엇갈림,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이별과 끝없는 사랑. 김지숙은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아 소유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오래 기다리고,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다. 그것은 물속에 가라앉은 자신의 영혼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앨리스 연작에는 시인의 개인적 서사가 압축적인 환상으로 일그러져 있다. 기울어진 골목과 문밖의 절벽이라는 공간적 배경만으로도 부산의 해안가 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그곳은 오지 않는 구원과 눈앞에 닥친 불행으로 가득하다. 그 속에서 불안한 영혼은 떨고 있다. 이 비정한 영혼의 떨림이 전하는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이하고 또 아름답다.
신철규 시인

시인의 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해야 할 너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는 일

그것뿐이다

2026년 가을
김지숙

책 속에서

민수가 건너편에서 부른다
몇 걸음이라도 더디 걸으면 공터의 어둠 속으로 스미듯 민수는 사라지기도 한다

민수가 무어라 중얼거리자 자모 몇 개가 큰 나무로 날아가 앉는다 날개 부딪는 소리도 없이 나무들 잠시 가지를 휜다

창문도 벽도 지붕도 없는 너의 집은 참 쓸쓸하구나
그래도 민수가 있어서 아늑하다 민수의 손은 부드럽다

민수는 민수가 아닌 나를 민수라 부르고
민수도 민수가 아니어도 민수가 되고

(중략)

난 너의 무덤이 될 거야
넌 나의 묘비명이 될 거야

민수와 민수의 민수인 나는 서로를 마주 본다

보호자이거나 증인처럼 구름은 입안 가득 침묵을 머금고 그늘처럼 번져 간다
―「연인」 부분

우리는 그 모두에게 잊혀도 좋지, 우리는 기꺼이 아무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그 모두에게 어긋나서 너와 나는 입을 맞추고 그 모두에게 다정할 수 있던, 나의 사진엔 풍경뿐이고 너의 사진엔 우리가 없지, 세례처럼 구름 쏟아진다, 죽은 내가 나를 업고 간다, 언젠가 그리 길지 않은 이야기가 될, 마치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처럼, 한 번의, 이미 충분한, 거짓말, 나는 나의, 너는 너의,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할, 흘러가는, 말라 버린 오렌지색 백합들이 강물 위로 떠내려간다,
―「슈퍼 블루문」 부분

공원의 아이가 나뭇가지로
죽은 나방 날개를 콕콕 찍어 보더니
일그러진 몸뚱이만 남은 나방을 두고
무심히 가 버린다

나는 늦여름 텅 빈 공원 너머를 본다

아름다운 것들이 먼 곳에만 있던 나날들
많은 것이 말없이 지나간 뒤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도 거의 없다

(중략)

멀리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많은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느 것 하나쯤은
말할 수 없이 이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공원의 가장자리 그늘에서 초록 고사리들이 자라고 있다
성실하게 포자를 만들며
초록 고사리들은 겨울이 다 되도록 자랄 것이다
―「보스턴 고사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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