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문학을 잇고 문학을 조명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이제 나란히 걸을 수 없지만
사랑한 시간과 마음이 남은 곳
시집 『조각 공원』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쉰아홉 번째 시집 전욱진의 『조각 공원』을 출간한다. 2014년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사랑과 상실, 그 이후의 흔적을 더듬는 시간들을 정제된 서정의 언어로 보여준 전욱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더없이 뜨거웠던 약속과 맹세가 남긴 것, 끝에 다다른 마음의 풍경들을 섬세하게 그려낸 전욱진의 시집 『조각 공원』에는 신작 시 39편과 에세이 「인간 탑 쌓기」, 평론가 조성아의 해설이 함께 수록됐다.
"영원할 것처럼 보이던 칠월의 밤이 갔다"
사랑이 무성했던 시절을 지나 여름의 끝에 다다른 우리
『조각 공원』 속 화자들은 끊임없이 과거의 한때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서 있다. “지지난 여름” 함께 “수박을 잘라 먹”던 “그 사람”(「딱 한 번 일어나는 일」), “공원”이 된 장소를 같이 거닐던 “당신”(「조각 공원」), 내가 “죽은 줄 알”고 “몸을 흔들”어보던 “그이”(「죄와 벌」)…….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기에, 나란히 걷고, 곁에 누워 숨결을 느끼던 ‘우리’는 어느 틈에 ‘너와 나’로 분리되어 더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 이런 관계의 변화와 사랑의 상실 앞에서 화자는 하릴없이 사랑했던 시간의 언저리를 서성인다. “우리가 지나친 그 순간이/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포도와 나」) 떠올리고, “작은 돌이라도 믿어야 사는 그런 나날”을 견디며 “재회”(「잉카로즈」)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슬픔과 절망에 잠식된 채 자신을 낭비하지는 않는다. “이 어둠의 깊이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정전」) 부단히 노력하며, 그다음의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회복의 의지를 다진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 끝났어도 마음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고통에 물크러지기보다 단단해지려는 자신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잃은 것, 지금 없는 것을 마냥 안타까워하기보다 그로 인해 배운 것, 찾아온 것을 지나치지 않는다. 가령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몇 가지 작은 예언」) 같은 것들을.
시집 『조각 공원』은 “우리의 시간이 다시금 맞붙지 못하더라도, 나의 시간 속 당신을 부정하지 않겠다는 다짐”(조성아)이자 이제는 영영 어긋나버렸지만 함께했던 시간의 기적, 그 아름다움에 대해 써내려간 시집이다.
추천사
기적은, 물론 슬픔이나 절망보다 기쁨이나 희망 같은 말과 어울리긴 하지만, 그저 확률의 언어이기도 하다.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실현된 가능성이 기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이의 사랑이 상실 이후에도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그것 역시 기적이라고 불러볼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의 눈빛, 체온, 목소리가 더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마모되지 않는 마음. 그 마음 역시 지속 불가능성을 뚫고 실현된 가능성일 테니 말이다. (……) 다시 보고, 되돌아오고, 되새기며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조각 공원』 속 시적 주체들은 미련하지만 단단하고 또 다정하다. 시간의 어긋남을 슬퍼하기보다 고스란히 끌어안고 더듬으며 찾아낸 시간의 아름다움이 이 시집에 있다.
- 조성아 (평론가, 「작품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