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열혈사제〉로 코미디를 증명하고, 〈소년시대〉로 페이소스를 보여주고, 〈어느 날〉로 장르 연출의 힘을 입증한”(박경수 작가) 이명우 감독. 법정극과 코미디, 누아르와 청춘극을 넘나들며 30여 년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그가 연출 철학과 방법을 처음으로 한 권에 담은 신간 『이명우의 연출론』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정답으로서의 연출론이 아니다. 내가 현장에서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의 모음이다. 대본을 어떻게 읽고, 배우를 어떻게 만나고, 장면의 리듬을 어떻게 만들고, 수많은 스태프와 함께 하나의 세계를 어떻게 세워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도 무엇이 정답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나는 여전히 ‘좋은 연출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다만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해 현장에서 버텨낸 시간이 남겨준 몇 가지 대답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11쪽)
이명우 감독에게 연출은 멋진 화면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배우와 스태프의 역량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며, 예측할 수 없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일이다. 실제 작품과 촬영 현장에서 건져 올린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한 줄의 대본이 어떻게 살아 있는 장면이 되고, 수많은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지를 들려준다. 각 장 끝에는 ‘Director’s Reference’, ‘Director’s Note’, ‘Director’s Toolkit’, ‘Director’s Sketch’, ‘Director’s Cut’ 등 기획 노트와 사전 준비 체크리스트, 장면 연출 노트처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코너를 더해 연출의 사고와 실무를 한층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 “연출을 꿈꾸는 사람은 물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배우 이제훈)
장르의 문법을 뛰어넘어 그 이야기만의 결을 살리는
‘천의 얼굴’ 이명우 감독의 다이내믹한 현장
“연출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지만, 좋은 연출자에게는 분명 자신의 판단을 지탱하는 기준이 있다.”(이응복 감독) 〈펀치〉를 만든 뒤에는 ‘묵직한 연출자’, 〈귓속말〉 이후에는 ‘사법 드라마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명우 감독은 한 가지 장르나 스타일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다. 〈열혈사제〉에서는 그동안 눌러두었던 유쾌하고 발랄한 감각을 꺼내놓았고, 이후 로맨틱 코미디 〈편의점 샛별이〉, 밀도 높은 범죄 드라마 〈어느 날〉, 충청도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액션 청춘극 〈소년시대〉까지 작품마다 새로운 톤과 리듬을 찾아왔다. 그 과정에서 〈펀치〉와 〈열혈사제〉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두 차례 수상하고, 〈어느 날〉로 아시안 텔레비전 어워즈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과 연출력을 꾸준히 인정받았다. 그에게 장르는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정해놓는 출발점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내기 위해 찾아가는 하나의 그릇이다. 이야기의 씨앗을 발견하기도 전에 장르의 문법부터 좇는다면 결국 익숙한 형식을 되풀이하는 데 그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장르보다 먼저 찾아야 하는 또 하나는 작품의 ‘온도’다. 같은 부패와 권력의 문제를 다루더라도 〈펀치〉가 차갑고 묵직하다면 〈열혈사제〉는 뜨겁고 유쾌하다. 같은 코미디라도 〈열혈사제〉에서는 진지한 인물과 상황을 중심에 세운 뒤 그 위에 코미디를 얹었고, 〈소년시대〉에서는 웃음과 아련함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조율했다. 배우가 대사를 치는 속도, 카메라가 인물을 바라보는 거리, 편집에서 컷을 끊는 순간까지 수많은 선택이 모여 작품의 온도를 만든다. 장르의 문법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이야기마다 어떤 감정을 남길 것인지 묻고 그에 맞는 표현 방식을 새롭게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이명우 감독의 작품이 저마다 다른 얼굴을 갖는 이유다.
오래 남는 장면은 무엇이 다를까?
대본을 고르는 순간부터 배우와 카메라의 거리,
리듬과 타이밍이 만드는 결정적 차이
이명우 감독의 연출 노트
· 재미있는 이야기에도 내가 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연출자는 대본을 읽는 순간부터 이 이야기가 왜 자신에게 왔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이명우 감독은 〈열혈사제〉를 기획하며 왜 세상은 기득권 세력의 특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물었고, 〈닥터 섬보이〉에서는 많은 사람 속에서도 자신의 두려움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 공보의의 고립감을 오래 붙들었다. 이야기를 끌고 갈 중심은 무엇인지, 왜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주인공은 왜 이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나간다. 자신을 붙드는 질문을 발견하고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갈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작품을 선택한다.
· 좋은 캐스팅은 ‘왜 이 배우인가’에 답하는 일이다
배우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인물과 배우 사이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어느 날〉에서는 차승원의 익숙한 이미지를 과감히 지워 밑바닥 삼류 변호사 신중한의 낯선 얼굴을 끌어냈고, 〈소년시대〉에서는 반듯하고 절제된 이미지의 임시완을 충청도라는 낯선 세계에 놓아, 찌질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병태만의 온도를 만들었다. 좋은 캐스팅은 이미 완성된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이 배우여야만 가능한 인물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 장면의 리듬은 카메라와 배우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대본도 카메라를 어디에 두는지, 인물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지, 배우의 감정에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된다. 〈열혈사제〉에서 이명우 감독은 김남길의 뛰어난 발차기와 액션을 살리기 위해 대역과 잦은 컷 분할에 기대기보다 배우의 움직임이 끊기지 않도록 원 신 원 컷 방식의 롱테이크로 담았다. 화려한 카메라 트릭보다 배우의 몸이 만들어내는 리듬을 믿은 것이다. 연출은 카메라가 앞서 나가는 일이 아니라, 배우가 가장 살아나는 거리와 호흡을 찾아내는 일이다.
· 현장의 변수 속에서 최선의 장면을 만들어야 한다
촬영 현장에는 날씨와 장소, 배우의 컨디션, 장비와 시간처럼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 변수가 끊임없이 생긴다. 〈소년시대〉 촬영 중 거센 비로 예정된 장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이명우 감독은 급히 터널로 장소를 옮겨 청룡 가면을 쓴 병태의 등장 장면을 오히려 더 신비롭게 완성했다. 또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울루와투 사원 촬영 중 원숭이가 갑자기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오자 촬영을 중단하는 대신 조인성의 실제 놀란 반응을 살려 즉흥연기로 이어갔다. 중요한 것은 처음 세운 계획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장면으로 살려내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과 선택을 어떻게 하나의 결과로 모을까?
창작자와 기획자, 조직을 이끄는 사람에게
건네는 판단의 감각과 협업의 철학
이 책은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전 과정을 따라가며 “배우와 어떻게 소통할지, 예산과 일정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좋은 그림을 지켜낼지, 편집실에서의 선택은 왜 중요한지 등 연출자들이 실제로 마주하는 질문을 현장의 언어로 솔직하게 풀어낸다.”(장태유 감독)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드는 일은 정해진 답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서로 다른 생각과 역량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아가는 과정이다. 좋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그것이 끝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세우는 일, 자신의 생각을 배우와 스태프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일,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은 연출 현장을 넘어 기획과 창작의 모든 과정에 맞닿아 있다.
특히 수많은 전문가와 함께 일하는 감독의 자리는 오늘날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현실과도 닮아 있다. 감독은 각자의 전문성을 이해하고 그것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변수가 생길 때마다 빠르게 판단하되 작품이 향해야 할 중심은 놓치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신념대로 밀어붙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더 나은 아이디어에는 기꺼이 열려 있어야 한다. 『이명우의 연출론』은 결국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사람들과 어떻게 그 선택을 현실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무언가를 연출하며 살아간다.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와 기획자는 물론, 여러 사람과 함께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리더에게도 유효한 질문과 통찰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