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빳빳하게 풀 먹인 소창을 부드럽게 풀어주듯
쉼 없이 반복하며 글쓰기에 익숙해지도록
아동문학가였던 할아버지 서재를 제 방처럼 드나들던 유년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며 미술에 눈 뜨게 된 청소년기를 거쳐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한국에서 불문학과에 진학하기까지, 그의 생애에는 글과 그림이라는 창작의 산물이 바짝 붙어 있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이른 나이에 진행된 결혼, 출산, 육아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앗아갔다.
산후우울증을 겪던 시기에는 풀 먹인 누런 소창을 부드럽고 새하얗게 정련한 뒤, 재봉틀로 기저귀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자 우울의 돌파구였다. 그는 글을 쓰겠노라 결심하기 전까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라고 털어놓는다. 역할도, 핑계도,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진 나이에 자기 꿈을 고집해도 될지 고뇌하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왕복 네 시간을 무릅쓰고 비장하게 찾아간 글쓰기 강좌에서 낭패감을 맛보기도 하고, 둘째가 조금 더 크고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꿈을 유보해달라는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꿈에 대한 자세가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 황선미 작가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고 나서다. 저자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라는 조언에 따라 소소하지만 드라마 같은 일상을 소재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는 마흔에 교정을 하러 간 치과에서 나이가 들수록 잘 미혹되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길고양이를 보며 동료애를 느끼기도 한다. 주의 깊게 일상을 들여다보고 살뜰히 글에 담아내는 재능과 타고난 유머 감각이 어우러진 간결한 문장은 무엇보다 ‘글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탁월하다.
지금까지 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 잠자는 것까지 잊고 끼적이던 글들도, 친한 친구에게 언젠가 꼭 글을 쓰고 싶다고 전한 진심도 주정으로 덮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병 같은 것이었나 보다. 늦은 나이에도 결국 문학의 길을 밟은 할아버지처럼, 대를 이어 도망가기도 끊기도 어려운. _「신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에서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선명하고 간절해진 작가로의 길을 향해
대학 졸업 후 명품 브랜드 유통회사에 다니던 저자는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직장을 자주 옮겨 다닌다. 도망치듯 사촌이 거주하던 미국으로 갔다가 만난 ‘교회 오빠’와 결혼한 후, 네 살 터울의 자매를 차례차례 낳는다. 한 손으로는 큰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아차를 미느라 글을 쓸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어느 날 딸이 물었다. “엄마는 다 컸는데 왜 아직도 꿈이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뻔한 이유를 덧붙였지만, 그는 “어떤 꿈은 나이가 들면 더 선명해지기도 하고 더 간절해지기도” 한다는 말로 아이를 이해시켰다.
로또 1등 당첨과 신춘문예 당선을 선택하라면 두말할 것 없이 신춘문예 당선을 고르겠다고 단언하는 작가 유성은. 그의 첫 책 『나를 찾아가는 직업』에는 돌봄노동의 주체로서 여성이 겪는 고충과 애환을 비롯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작가 지망생의 고뇌와 좌절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신춘문예 당선작 「인테그랄」의 숨겨진 이야기와 당선 이후의 삶, 책 출간에 이르기까지 초보 작가의 다양한 일화를 엿볼 수 있다.
내가 한 작업은 창작이라기보다 일상 속에 숨겨진 ‘단서’를 내 언어로 옮겨 적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영화처럼 매혹적인 히로인이 나오거나 소설처럼 극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 삶을 기탄없이 쓴 글들이 누군가의 시선을 잡고 공감을 얻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믿는다. _「프롤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