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저자의 말
신학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발사에게 편지를 쓰는 루터의 모습, 그것이 이 책의 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리의 정밀한 논증보다 삶의 자리에서 기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기도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기도의 경험으로 독자를 안내하는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었다. 루터가 페터에게 그랬듯이, 이 책도 기도가 어렵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기를 바란다.
책 속에서
루터에게 기도의 주춧돌은 언제나 말씀이었고, 십계명과 사도신조와 주기도와 시편이 곧 기도의 발판이었다. 기도가 말씀과 만날 때 비로소 기도가 된다는 이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통찰이 루터 묵상법의 전부다. 44쪽 중에서
종교개혁이 되찾아 준 기도는 잘 다듬은 문장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며 건네는 서툰 말이었다. 기도의 자리에 앉을 자격은 기도자의 능수능란함이 아니다. 오직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그분의 약속에 있다. -64쪽 중에서
눈을 열어 달라던 다윗의 빈손과 목마른 자를 향한 예수의 부르심이 만나는 그 한 점은 자기 무능을 인정하며 손을 펴는 곳이고, 빈손으로 말씀 앞에 서는 곳이며, 목마름을 자기 자격으로 들고 나아가는 사람의 자리다. 77쪽 중에서
독일어 전집 서문에서 루터는 ‘신학자를 만드는 것은 책을 읽거나 머리로 사변하는 일이 아니라 시련을 통과하며 말씀을 붙드는 과정’이라고 못 박는다. 101쪽에서
십자가 신학이란 하나님이 보이는 것의 반대편에서 자기를 드러내신다는 통찰이다. 하나님의 강함은 약함 가운데 숨어 있고, 그분의 영광은 비천함 가운데 감추어져 있다. 111쪽에서
종교개혁의 격랑을 모두 통과한 노년의 루터조차 기도 앞에서는 자신을 늘 처음 배우는 사람으로 여겼다. 129쪽 중에서
루터가 관상기도와 결별한 것은 누구 말대로 르네상스 철학의 영향 때문도 아니고, 기도의 신비적 차원 자체를 부정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 통찰인 칭의론적 사고가 기도의 영역에까지 관통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40쪽 중에서
비우지 않고 채워지는 것, 올라가지 않고 내려오시는 분을 맞이하는 것. 이 차이는 미묘해 보여도 기도의 실천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을 만들어 낸다. 144쪽 중에서
칼 홀이 루터 신학의 교리적 핵심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라는 명제로 집약해 냈다면, 니콜은 그 명제가 삶 안에서 실현되는 방식이 바로 이 반복적 묵상 실천이었음을 보여주었다. 203쪽 중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썼다. 기도의 언어로 옮기면, 보는 것이 곧 기도라는 말이다. 크라나흐는 이 한 구절을 평생에 걸쳐 그린 화가였다. 245쪽 중에서
수도원의 담장 안에서만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발소에서도, 거실에서도, 출퇴근 지하철 안에서도 열린 길이다. 500년 전 비텐베르크의 이발사가 그 길의 입구에 섰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같은 입구 앞에 서 있다. 페터의 질문이 우리의 질문이다. 274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