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중국 고전문학이 가장 찬란하게 꽃피운 현장
역사 고도 서안부터 두보와 소동파의 문학이 숨쉬는 성도까지
〈EBS 세계테마기행〉 김성곤 교수와 떠나는 특별한 중국 여행!
노래하듯 시를 읊는 한시 전문가 김성곤 교수와 함께 떠나는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한시 기행, 그 세 번째 이야기! 이번 책에서 함께 찾아갈 곳은 중국 문학사의 큰 축을 이루고 있는 섬서성과 사천성이다. 섬서성(산시성)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품은 땅으로 이백·두보·왕유·백거이의 시가 꽃피운 무대고, 사천성(쓰촨성)은 촉한의 역사가 담긴 지역이면서 두보와 소동파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고장이다. 두 지역을 함께 걸으며 중국 고전문학이 찬란하게 꽃피운 현장을 만나보자.
백거이 〈장한가〉, 두보 〈춘야희우〉 〈곡강이수〉, 이백 〈촉도난〉 …
당나라 한시의 절정과 송나라 문학의 깊이를 찾아 떠나는 여정
· 1부 섬서성
1부에서는 천년 제국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는 유서 깊은 유적지들이 소개된다. 섬서성 함양(셴양)의 ‘소릉’과 ‘건릉’은 산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능으로 조성한 대규모 능역이다. 소릉에는 당 태종이, 건릉에는 당 고종과 측천무후가 묻혀 있다. 특히 측천무후는 중국 유일의 여황제로, ‘용의 눈과 봉황의 목을 가져 천하의 주인이 될 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그녀는 태종의 후궁이었다가 비구니 생활을 거쳐 고종의 황후가 되었고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민생 안정과 생산을 중시하고, 출신보다 능력을 중시하며 성장을 이끌었지만 유교 사관이 국가 이념이었던 시대에 가족 윤리와 여성 군주 이슈로 정통성을 부정당하고 악역의 전형으로까지 묘사되었다. 책에서는 역사 연구가 진행되며 측천무후에 대한 후대의 달라진 평가를 더해 그녀의 파란만장한 생애 전체를 볼 수 있다.
태종, 측천무후, 현종 등은 문학과 음악 등에서도 기량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제들의 작품으로는 〈여의랑〉 〈수세〉 〈단오〉 등을 다룬다.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측천무후가 남긴 시 〈여의랑〉, 태종이 남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수세〉, 30년간 태평성세를 누렸던 현종이 남긴 〈단오〉 등은 권력과 예술이 교차하던 시대적 풍경을 가늠하게 해주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담은 〈장한가〉
그 안에 숨겨진 백거이의 첫사랑 이야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 했었네.”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쓴 대서사시 〈장한가〉의 한 대목이다. 이 시의 주인공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은 제국을 흔들 만큼 강력했다. 함양에 이웃한 도시이자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익숙한 서안(시안)의 ‘흥경궁’, ‘화청지’에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한 영원한 한, 장한長恨’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백거이 자신이었다. 〈장한가〉가 그토록 유명해진 배경에는 백거이와 상령의 첫사랑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설명은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백거이 평생에 걸친 통한의 첫사랑 이야기를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당나라 황금기를 재현한 ‘대당불야성’, 서안을 대표하는 ‘대안탑’, 황실 유원지였던 ‘곡강지’ 등이 인근에 밀집해 있어 서안에서는 당대 화려한 문화와 역사를 한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 책은 장소 곳곳에 얽힌 작품과 역사를 입체적으로 들려주고 다양한 사진도 수록하여 마치 장안 거리를 거니는 듯한 생생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평가받는 진시황의 ‘병마용’, 단일 묘실을 덮는 봉토로서는 고대 능묘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인 ‘진시황릉’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은 진시황을 통일 제국의 황제로 만들어준 이사의 명문장 〈간축객서〉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의미까지도 깊이 있게 조명한다.
· 2부 사천성 Ⅰ
2부에서는 삼국지 영웅들의 파란 많은 삶이 깃든 사천성 북부 일대를 찾아간다. 이 일대는 유비가 세운 촉한의 역사를 품은 곳으로서, 제갈량이 정비한 잔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명월협, 천하의 웅관이라 불리는 검문관, 장비가 나무를 심어 울창해진 취운랑, 장비의 도시 낭중 등을 차례로 방문한다. 험준한 산길마다 1,800년 전 촉한의 역사가 대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아아, 높고도 위태로워라 촉으로 드는 길은 하늘을 오름보다 더 어렵도다.” 이 지역을 방문할 때 가장 먼저 이백의 〈촉도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촉도난〉이라는 시 한 편에 지형 묘사뿐 아니라 권력자들을 향한 시인의 평가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가 노래하듯, 이곳 지형은 복잡하고 험난하여 이 지역을 지켜내는 것이 곧 나라의 안위와 직결되었다. 이 때문에 역사의 풍파를 지나는 동안 권력자들은 검문관을 차지해 천하를 제패하려 했고, 그때마다 백성들의 피땀이 동원되었다. “그러나 지키는 자가 믿을 만한 이가 아니면 순식간에 이리와 승냥이로 변하고 아침엔 범을 피해 숨고 저녁엔 뱀을 피해 헤맨다네.” 이백의 시에서 권력자들이 초래한 백성들의 탄식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저자는 이백과 동시대 시인이었던 두보의 〈검문〉을 함께 살핀다. ‘안사의 난’을 피해 떠돌던 두보가 검문관을 지나며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어떻게 토로하고 있는지 살피는 것도 흥미롭다. 또한 저자 김성곤 교수가 검문관 관루와 측백나무 무성한 취운랑에서 직접 지어 읊은 시, 〈검문관〉 〈취운랑〉은 여행의 감흥을 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친 장군에서 친근한 목민관으로
낭중에서 다시 만나는 장비
한편, 낭중에서는 거칠고 험상궂은 장군으로 알려져 있는 장비의 뜻밖의 면모도 발견할 수 있다. 장비는 ‘만 명을 대적할 만한 장수’로 기개가 높았다. 하지만 부하들에조차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던 탓에 결국 두 명의 부하 장수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장비이지만 낭중에서 그는 정겹고 따뜻한 ‘장삼야’로 새롭게 태어난다.
낭중 고성에서는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장비 순시’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얼굴을 검게 칠하고 붉은 두건과 철갑을 둘러 장비로 분장한 배우들이 거리를 활보하며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짜 난동꾼에게 호통을 친다. 사람들은 친근한 장비에게 앞다투어 다가가 함께 사진을 찍는다. 이처럼 장비가 무장인 동시에 훌륭한 목민관으로 기억되는 것은 명·청 시대를 지나며 형성된 대중의 시선과 관련이 있다.
위나라가 촉한을 위협하던 때에 장비는 7년간 낭중을 다스렸다. 후대 사람들은 그가 낭중을 안정적으로 다스렸다는 기억을 바탕으로 장비의 모습을 선한 목민관의 이미지를 확장했다. 이는 단순한 미화가 아닌 명·청 시대의 정치문화가 요구한 관료상의 반영이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낭중 고성의 구불구불한 돌길 사이에서 백성이 바랐던 모습으로 걸어다니는 장비를 만나는 즐거움 뒤에는 시대를 따라 영웅이 만들어지고 기억되는 과정이 숨어 있다.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은 유적지들의 특성이 담긴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책에서는 검문관과 낭중을 대표하는 음식을 함께 소개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검문관에 와서 두부를 먹지 않으면 헛걸음’이라 할 정도로 검문관 두부요리는 유명하다. 낭중에서는 부드러운 식감에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일품인 장비우육도 꼭 맛보아야 할 음식으로 소개된다.
· 3부 사천성 Ⅱ
마지막 3부에서는 오랜 역사를 품은 도시 성도(청두)와 낙산(러산), 미산(메이산)을 찾는다. 사천성 중남부에 위치한 이 지역들 중에서도 특히 성도는 고대 촉국의 왕도로 자리 잡은 이래 수많은 왕조의 변천을 지나 중화민국 탄생의 도화선 역할을 한 현대까지 그 중심에 있었고 지금도 사천성을 대표하는 도시다.
단순한 군신 관계를 넘어 촉한의 기틀을 함께 마련한 정치적 동반자 유비와 제갈량을 모신 사당 ‘무후사’, 당나라 최고의 시인 두보의 문학 성지 ‘두보초당’, 여성 시인 설도의 자취가 남겨진 ‘망강루공원’ 등은 모두 차로 30분 남짓한 거리에 인접해 있다. 성도를 여행하는 이들이라면 이 지역을 여유롭게 둘러보며 천년의 역사를 음미할 수 있다.
중국 문학사의 시성이라 불리는 두보의 두보초당,
소동파의 고향에서 만나는 삼부자의 위업
이 책에서 특히 공들여 다룬 부분은 두보와 소동파 가문 이야기다. 중국 문학사에서 시의 성인, 곧 시성詩聖이라 불리며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두보, 그리고 당송팔대가에 이름을 올린 소순, 소식(소동파), 소철 삼부자의 궤적을 따라가며 당나라 시의 절정과 송나라 문학의 깊이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먼저 두보가 안사의 난을 겪은 후 성도에 마련한 거처인 두보초당을 찾아간다. “좋은 비 시절을 아나니 봄이 되어 만물이 싹이 틀 때라 바람 타고 몰래 밤에 들어와 만물을 적시되 가늘어 소리조차 없구나” 그의 유명한 〈춘야희우〉를 그가 살았던 초가집 모옥고거에서 읽으며 봄비의 덕성을 예찬해본다. 이어 여름날의 제비와 갈매기, 가을의 거센 바람, 겨울 완화계의 차가운 안개까지 두보의 시낭詩囊 안에 담긴 사계절이 차례로 펼쳐진다.
소순, 소식, 소철 삼부자의 저택이자 사당인 미산 삼소사에서는 삼부자의 학문과 인생 여정을 톺아본다. 삼소사 곳곳에는 뛰어난 문장을 낳은 넓은 마음, 곧 세상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호연한 기상이 배어 있다. 대숲과 고목 사이를 거닐며 사색하기에도 맞춤하다. 특히, 세 번의 유배 속에서도 아름다운 시와 문장을 남긴 소식을 조명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송나라 문학을 대표하면서도 중국 문학에서 가장 자유로운 정신을 보여주는 인물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아미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마애석불 ‘낙산대불’의 위용을 거쳐 삼소사에 이르기까지, 사천성의 유구한 역사와 장엄한 자연 경관에 취해 거닐다 보면 어느새 여정은 마무리에 접어든다.
유장한 중국 문학사를 여행하는
벅찬 감격과 짙은 환희!
한시는 삶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도구였고 시대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문학 형식이었다. 그렇기에 70여 편의 시와 사서, 일기, 편지, 전기 등 40여 작품을 바탕으로 하는 이 책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중국 고전문학의 유장한 역사와 대표 인물들, 나아가 그들이 온몸으로 통과해낸 삶의 흔적과 시대의 숨결을 두루 살필 수 있다. 또한 저자의 세심한 지리 묘사와 120여 장의 풍부한 도판과 사진 자료가 더해져 장면장면을 보다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이제 이 책과 함께 천년의 역사를 뛰어넘어 중국 문학사를 여행하는 여정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