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장애의 의미와 장애인의 경험 모두
불과 몇십 년 만에 극적으로 변화했다.”
2등 시민, 무능하고 위험한 노동자, 가족의 돌봄 부담…
효율성의 논리가 나누고 몰아내고 낙인찍은 몸들의 역사
책의 전반부(1~3장)는 발달장애인 수용소의 역사를 다룬다. 1851년 설립된 뉴욕주립백치수용소는 교육과 재활을 통해 발달장애인을 “덜 부담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가정에 돌려보내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경제의 중심이 소규모 공동체의 농업에서 도시의 임금노동으로 전환되면서 점차 돌아갈 가정이 없는 발달장애인의 수가 늘어났다. 이들이 1878년 설립된 뉴어크주립보호수용소를 비롯한 대규모 보호수용시설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은 점점 더 흔한 일이 되어갔다. 1894년 설립된 롬주립보호수용소에서 찰스 번스틴이 도입한 콜로니 시스템과 조건부 퇴소 프로그램은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가사노동과 농장 노동을 통해 일부 수용자를 임금노동시장에 진출시킴으로써 수용소 운영 예산 절감과 장애인의 사회 복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 것이다.
책의 후반부(4~7장)는 전쟁과 산업재해로 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과정을 다룬다. 작업장이 기계화되고 효율성의 논리가 확산하면서 고용주들은 점차 “온전하고 완전히 기능하는 신체”를 가진 노동자만을 원하게 되었다. 장애인에게 “자선이 아니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보호작업장인 굿윌인더스트리마저 효율성의 논리에 갇혀 안정적인 일자리를 비장애인 노동자에게 할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노동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던 산재보상법은 오히려 고용주들이 신체검사를 통해 장애 노동자 고용을 사전에 차단하게 만드는 경제적 유인책으로 전락했다. 포드자동차는 유일하게 이러한 흐름에 맞선 곳이었다. 포드자동차는 공장의 모든 공정을 조사해 어떤 업무가 장애인에게 적합한지 파악했고, 대규모로 장애 노동자를 채용했다.
『장애의 발명』은 장애인의 노동을 노동사의 전면에 내세우며 “왜 특정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노동에 비생산적이고 보상받을 가치가 없으며 진정한 노동이 아니라는 낙인이 찍혔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24쪽)을 던진다. 장애를 비생산성과 동의어로 여기고, 장애인을 공적 지원에 의존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통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또 2025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한국의 15세 이상 등록 장애인 고용률(34퍼센트)은 전체 인구 고용률(64퍼센트)의 절반 남짓이다. 신체검사를 온전한 신체를 선별하는 “여과기”가 아니라 다양한 몸을 알맞은 업무에 배치하는 “분류기”로 활용했던 포드자동차의 성공도, 획일적인 보상기준을 내세워 오히려 낙인을 강화했던 산재보상법의 실패도 그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낙인의 고리를 끊고, 다른 미래를 발명”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되는 이유다.
“앞선 시대의 시행착오에서 배우지 않은 채
손쉬운 해결책을 찾을 때,
장애는 낙인으로 다시 한번 발명될 것이다.”
『장애의 역사』에 이은 김승섭 교수의 번역서
낙인의 고리를 끊고, 다른 미래를 발명하려면
『장애의 발명』은 『장애의 역사』(킴 닐슨 지음, 동아시아, 2020)에 이은 김승섭 교수의 두 번째 번역서다. 해제에서 그는 『장애의 역사』를 번역한 경험이 장애라는 개념이 지닌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장애 연구를 계속할수록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장애인이라는 범주가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와 경험을 거쳐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질문이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장애의 발명』은 “바로 그 빈 공간을 채우는 책이다”(390쪽). 그는 백치, 저능아, 산업사고 등 당대에 사용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사장된 용어를 번역하며 고민을 거듭했고, 심지어 주석을 번역하면서도 뜻밖의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출간된 책은 국내 독자에게 낯선 용어를 해설하는 각주부터 책의 내용을 “베어베터” 등 국내 사례와 연결한 해제까지 옮긴이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해제에서 김승섭 교수는 사회학자 브루스 링크와 조 페일런이 2001년에 출판한 논문 「낙인을 개념화하기」를 소개하며 식별, 고정관념, 분리, 사회적 지위 상실 및 차별 등 네 가지 요소로 낙인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장애의 발명』 속 역사를 다양한 몸을 장애라는 범주로 식별하고, 장애인에게 “비생산적인 시민”이라는 고정관념을 씌우고, “우리”와 다른 “그들”을 분리하고, 경제적 시민권을 박탈한 낙인찍기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낙인찍기는 “유전적 의존성”, “과학적 자선” 등 과학과 합리성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김승섭 교수는 배제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손쉬운 해결책을 찾는다면,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기술이 약속하는 “장애가 없는 미래”만을 좇는다면, “낙인은 합리성의 이름으로 반복”될(398쪽) 것이라고 경고한다.
책 속에서
“장애”를 비생산성, 시민으로서의 자격 미달, 공적 지원 또는 자선 지원에 대한 의존과 동의어로 여기는 20세기의 통념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조건들이 만들어 낸, 그야말로 하나의 발명이었다. _29쪽
가족들이 부분적으로만 생산적인 아이들조차 기꺼이 받아들이고 노동력으로 활용했다는 점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오늘날 우리가 “장애”라고 부르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 중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가 과거 주류 노동시장과 가정경제 양쪽 모두에 오랫동안 통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_73쪽
수용자들, 특히 여성 수용자들은 막대한 양의 돌봄노동을 수행했으나, 그 노동은 더 이상 퇴소나 가족 및 주류 사회에 합류하는 발판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고된 노동은 주 정부가 자신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상쇄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로웰과 수용소장들은 그들을 시설 밖에서 사회에 짐이 되는 비생산적인 존재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수용소 관리 측면에서 그들은 퇴소시키기에는 너무나 생산적인 존재였다. _123쪽
예산이 늘 부족했음에도 더 많은 수용자를 받아들이라는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번스틴은 강제 불임수술을 비롯한 우생학적 “해결책”에 맞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 그는 고질적으로 노동력이 부족했던 경제 부문인 가사노동과 농장 노동을 겨냥해 수백 명의 수용자를 주류 사회에 통합시켰으며, 그중 상당수는 영구적인 통합으로 이어졌다. _180쪽
다른 회사들이 의료부서와 신체검사를 지원자뿐 아니라 기존 직원 중에서도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노동자를 걸러 내는 “여과기”로 사용했던 반면, 포드자동차는 이를 장애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분류기”로 활용했다. _211쪽
장애라는 렌즈를 통해 산재보상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공공정책이 초래한 예상치 못한, 그리고 종종 역설적인 결과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책입안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산재보상법은 장애를 빈곤이나 의존과 동의어로 고착시키고, 해결해야 할 새로운 정책 문제로 만드는 데 놀라울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_227~228쪽
장애인·노인 노동자들은 굿윌인더스트리의 홍보 캠페인에 중요하게 등장했지만, 모건메모리얼 굿윌인더스트리를 포함한 보호작업장들도 효율성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제한된 인원의 장애 노동자들만을 고용할 수 있었고, 그중 소수만이 자립적인 노동자로서 주류 노동시장에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_314쪽
지역 및 국가 차원의 직업재활 담당관들과 퇴역군인들은 장애를 의학과 경제 중 어떤 관점에서 정의할지를 놓고 충돌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라는 실존적 경험을 평가하는 방법과 무엇이 장애를 구성하는지 결정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서도 대립했다. 퇴역군인들이 안고 돌아온 부상의 복잡한 성격을 고려할 때, 이는 무척 까다로운 문제였다. _357쪽
요컨대 번스틴과 포드는 다양한 수준의 능력을 가진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이 고용주에게 반드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는 오히려 이점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장애인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춘 이들의 방식은 훗날 1990년 제정되는 미국장애인법이 취할 접근법의 토대를 마련한 셈이었다. _377쪽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기록에는 지난 200년 동안 쌓인 배제의 역사가 그대로 들어 있다. 그렇게 학습한 인공지능이 누가 위험한 노동자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비용인지를 가려낼 때, 낙인은 합리성의 이름으로 반복된다. _3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