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에픽테토스의 교실은
로마판 ‘인생 상담소’에 가까웠다
고대 철학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근엄한 철학자가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고, 제자들은 조용히 받아 적는 장면이다. 에픽테토스의 교실은 꽤 다르다. 여기에는 황제의 눈치를 보는 관리가 들어오고, 법정에 갈 일이 걱정되는 사람이 찾아오고, 공연을 앞두고 벌벌 떠는 음악가가 앉아 있다. 사랑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던진 군인도 등장한다. 그가 다루는 것은 ‘존재란 무엇인가’보다 “나는 왜 저 사람의 말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흔들리는가”에 훨씬 가깝다. 실제 목차만 펼쳐봐도 불안, 질병, 고독, 우정, 권력, 명예, 가난, 분노가 줄줄이 나온다.
그중 압권은 원로원에서 자기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스토아 철학자 아그리피누스의 일화다. 판결이 어떻게 날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는 예정된 시간에 운동을 하러 간다. 운동을 마친 뒤 추방형이 선고됐다는 말을 듣고서 그가 뱉은 말은 대략 이렇다. “그렇다면 식사 장소만 바꾸면 되겠군.” 철학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큰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오늘 해야 할 일까지 모두 무너뜨리지 않는 태도라는 것을 이보다 더 유쾌하게 보여주기도 어렵다.
에픽테토스는 독자에게 늘 이런 식으로 허를 찌른다. 감옥에 갇힐 수는 있다. 다리는 묶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속에서까지 감옥 생활을 미리 시작해야 하겠는가? 그는 자신의 선택의지는 제우스조차 꺾을 수 없다고 밀어붙인다. 읽다 보면 이 사람이 왜 황제와 정치가와 군인들에게까지 오래 읽혔는지 조금씩 이해된다. 위로를 잘해서가 아니다. 핑계를 아주 잘 끊어내기 때문이다.
황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박수갈채였다
― 불안은 ‘잘하고 싶다’에서보다 ‘좋게 보이고 싶다’에서 커진다
에픽테토스에게는 놀랄 만큼 현대적인 장면이 있다. 한 키타라 연주자는 혼자 있을 때는 전혀 떨지 않는다. 연주 실력도 충분하다. 그런데 극장 무대에만 올라가면 불안해진다. 에픽테토스는 이유를 정확히 집어낸다. 그는 연주를 잘하고 싶은 데서 멈추지 않고 청중에게 좋은 평가까지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연주는 자기 몫이지만 박수는 남의 몫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움켜쥐려는 순간 불안이 시작된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2천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해진다. 우리는 발표를 잘하고 싶은 것과 “다들 나를 유능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자주 한 덩어리로 만든다. 일을 잘하는 것과 상사의 인정, 글을 잘 쓰는 것과 독자의 반응, 사랑하는 것과 상대가 반드시 나를 사랑해주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다 남의 평가가 기대와 어긋나는 순간, 자신이 통째로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담화록』 제4권의 한 장면은 이 문제를 한층 더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수많은 전쟁을 겪은 군인 트라소니데스는 “전쟁터에서는 어느 적도 나를 노예로 만들지 못했건만” 사랑하는 한 여자 때문에 완전히 노예가 되었다고 탄식한다. 전쟁에서는 살아남았는데 상대의 작은 마음 하나에는 속수무책이다. 에픽테토스는 여기서 꽤 짓궂게 묻는다. 욕망과 두려움에 끌려다니면서 어떻게 자신을 자유인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이런 부분이 계속 등장해서다. 자유를 말하면서도 추상적인 자유‘론’으로 달아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박수에 목을 매고 있는가?”, “무엇을 얻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된다고 믿고 있는가?” 하고 아주 구체적으로 들이닥친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고대 로마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우스운 집착을 구경하고 있는 독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스토아 철학 전체를 완벽히 소화한 저자의 인생을
한 조각씩 내 삶에 녹여내는 일
에픽테토스를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좋은’ 문장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람을 동요시키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관한 판단이다.” “네게 주어진 배역을 훌륭히 연기하는 것은 네 몫이다.” “자유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다.” 한두 문장만 떼어놓아도 가히 기막힌 명언 카드가 된다. 실제로 이 책에는 그대로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계속 나온다.
그런데 정작 에픽테토스 자신은 그런 독서를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철학 이론을 늘어놓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했다. 아주 재미있는 비유도 남겼다. 양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풀을 먹었는지 풀을 토해내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을 소화해 양털과 젖으로 내놓는다. 철학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스토아 철학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 행동에서 무엇으로 바뀌었는지를 보라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두려움 없는 삶에 대하여』는 흔한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책’과 갈라진다. 에픽테토스는 좋은 기분을 선물하기보다 반응하는 습관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화를 한 번 더 내면 화내는 습관에 땔감을 더한 것이고, 원칙을 한 번 지켜내면 다음번에도 지킬 힘을 조금 더 키운 것이다. 그러니 철학 공부의 단위는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가 아니라 ‘이번 한 번을 어떻게 행동했는가’가 된다.
이런 이유로 이 624쪽짜리 책을 꼭 처음부터 끝까지 정복해야 할 거대한 산처럼 볼 필요는 없다. 어떤 날에는 불안에 관한 장을, 어떤 날에는 우정이나 질병에 관한 장을, 또 어떤 날에는 『편람』의 짧은 한 장을 펼쳐도 된다. 중요한 것은 읽은 문장을 멋있게 기억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문장이 필요한 순간에, 어제와 조금 다르게 반응하는 것.
철학은 그때부터 시작된다고 아마 에픽테토스는 방그레 웃을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평생 통찰이 모두 담긴
단 한 권의 책
에픽테토스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대개 짧고 강렬한 문장에 끌린다. “사람을 동요시키는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에 관한 판단이다.” 이런 문장은 한 줄만으로도 오래 남는다. 문제는 너무 잘 남는다는 데 있다. 몇 문장만 기억하고 나면 에픽테토스를 다 읽은 듯한 착각도 생긴다.
그러나 『편람』은 말 그대로 손 가까이에 두고 꺼내 보기 위한 압축본이다. 그 문장이 어떤 질문에서 나왔고, 어떤 반론과 씨름했고, 어떤 인간을 앞에 두고 던져졌는지를 보려면 『담화록』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에는 불안해하는 음악가가 있고, 황제 앞에서 작아지는 관리가 있고, 사랑 때문에 자유를 잃은 군인이 있고, 병들고 늙고 실패하고 화내는 평범한 인간들이 있다.
이 책은 『담화록』 제1~4권부터 『편람』, 흩어져 전해진 『단편』까지 오늘날 만날 수 있는 에픽테토스의 목소리를 한 권에 모았다. 그래서 좋은 문장만 골라 건네는 책이라기보다, 그 문장을 낳은 생각의 전체를 건네는 책에 가깝다.
그렇다고 624쪽짜리 고전을 독자 혼자 헤쳐 나가게 두지도 않았다. 낯선 인물과 역사, 신화와 개념 앞에서는 439개의 각주가 길을 열고, 약 50쪽의 특별 해설은 ‘인상’과 ‘선택의지’처럼 에픽테토스를 제대로 읽기 위해 꼭 필요한 열쇠를 다시 손에 쥐여준다. 전체를 12개의 주제부로 나눈 것도 같은 이유다. 처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그다음부터는 삶의 형편에 따라 필요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지금도 읽히고, 힘든 날에도 생각나고, 10년 뒤 그 사람의 삶이 달라졌을 때도 여전히 펼칠 이유가 있는 책. 누군가에게 오래 남을 책을 선물하고 싶을 때 바라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건네고 싶은 한 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