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건 동화가 아닙니다, 탐정님. 이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끝난 이야기겠죠.”
되울리는 숲, 사랑의 끝 너머로
사라진 여자를 찾아 나서는 탐정 역시 여자인데, 손을 놓은 지 오래다. 온갖 희한하고 잡다한 사건들을 맡았고, 끝내 풀지 못한 채 해안 마을의 낡은 집에서 타자기로 범죄소설을 쓰며 지내는 중이라, 일을 맡아달라는 남자 앞에서도 이렇게 되묻고 싶어 한다. ‘아니, 제 숱한 실패들은 모르십니까?’ 그런 탐정의 눈길을 붙드는 것이 서류 더미 맨 위에 놓인 전보 한 장이다. 젊은 남자와 함께 달아난 여자는 떠나온 곳마다 우체국과 전신국에 들러 남편에게 전보와 편지를 부쳤는데, 멀리 사라져 가면서도 기어이 발견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거기 적힌 문장들도 아리송하다. “우리가 작별을 고하는 순간, 실은 무엇을 맞이하는가?” “먼 것이 이토록 가까웠던 적은.” 이건 무슨 뜻일까? 탐정은 그들을 쫓아 통역사와 함께 길을 나서고, 마침내 숲 어귀의 마을에서 두 사람이 머물던 오두막에 가닿는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 집과 거기 살던 타이가의 한 쌍에 대해서 말하기를 극도로 꺼린다. 가까스로 입을 연 이들이 들려주는 말은 들을수록 기이하다. 문간을 지키던 늑대, 숲속의 파란 수영장, 숲 언저리를 맴도는 야생 소년, 타액인지 태반인지 모를 물질에서 나온 작은 생명체…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걸까? 소설은 거기서 더 멀리 나간다. “때로 행성의 끝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가 실은 하나의 행성 위에 살고 있음을 떠올려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탐정과 통역사가 숲 안쪽으로 더 들어갈수록 나무들은 빽빽해지고 이제는 모든 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탐정이 읽은 그 여자의 일기는 숲과 구름과 새에 관한 낱말과 물음으로 가득한데, 떠올릴수록 암호에 가깝다. “구름은 어느 순간에 수많은 안개 방울로 변하는 걸까?” “그런데 새들은 어떻게 볼까?” “그 두 눈 속의 빛은 어떠한가. 속도는 어떤 형태를 띠는가.” 그러는 사이 탐정이 의뢰인에게 보내려고 적어가던 보고서도 어느새 사적인 일기를 닮아간다. 여자의 일기와 탐정의 보고서가 그렇게 엇갈리고 겹치는 동안 사건은 갈수록 안갯속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물음 하나가 거듭 되울린다. “그런데 실상 사랑의 끝 너머란 무엇인가?” 소설이 끝까지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아내를 찾아달라는 의뢰 하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렇게 사람은 왜 떠나는지, 사랑이 끝난 뒤에는 무엇이 오는지, 우리가 어떤 행성 위에 살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본다. 스물세 개의 짧은 장을 몰입해 읽고 책을 덮으면, 내용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그 분위기의 강렬함만큼은 선명할 것이다. 혹자가 리베라 가르사를 “분위기의 대가”라 부르며 이 소설을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하고 볼라뇨가 내레이션을 맡은 탐정소설”이라고 말한 까닭이다. “작고, 짧고, 잿빛에 싸여 있는데, 페이지 위는 반짝이고 머릿속은 눈이 부시다.”(소설가 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