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비판지정학의 관점에서 살펴본 국경 문제와 그 본질!
오랫동안 이어온 통념과 달리 국경은 영토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다. 국경은 영토라는 개념과 그것을 지탱하는 이념적 기반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순히 구획하고 사유화한 영역인 영토를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새롭게 짜 맞춘 지리적 문법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해독하는 열쇠를 우리에게 건넨다. 정치적·경제적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려고 만들어낸 고정된 경계라는 서사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국경을 전혀 다르게 정의하게 된다.
국경의 지정학을 이해한다는 말은 타자를 불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는 작업이다. 나아가 타자와 우리 사이에 경계선을 긋지 않고, 타자를 ‘포함해’ 우리를 사유하는 태도다. 국제 경계선으로 획정된 선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지라도, 우리는 모두 국경에 발을 디디고 선 주체다. 이 경계선은 존재 자체로 우리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언제든 넘어설 가능성을 열어주므로, 우리의 심리적 균형을 이루는 본질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 본문 중에서
국경은 평화를 위한 방벽인가, 차별과 배제를 위한 도구인가?
오늘날 세계는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경을 강화하고, 안보와 경제 논리를 내세워 배타적인 장벽을 높여가는 추세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경이 탄생하고 변화해 온 자취를 추적하며, 국가 간의 경계가 단순한 영토의 구분을 넘어 인간의 이동, 권력의 구조, 인류의 생존 방식을 어떻게 규정해왔는지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전통적으로 국경은 ‘국가 간의 물리적 경계나 주권의 한계선’으로 여겨졌으나, 이를 유동적이고 사회적으로 재구성되는 문화·정치적 공간으로 재정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저자 아밀라 샤리는 단순히 지리학 이론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 철학, 정치학을 엮어 ‘경계’라는 인류 보편의 화두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한 선구적인 지리학자로 국제 학계에서 널리 존경받는 인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국경은 세계를 일정한 틀로 범주화하고 안팎을 이분화하면서 성장한 서구 합리주의 사상의 토대 위에서 나타났다.” 국경은 분리와 연결, 개방과 폐쇄가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이며, 이는 개인이나 국가 모두에 해당한다. “이처럼 국경의 기능은 본래 모순적이다.”
그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선형線型 국경 개념을 최초로 공식화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부터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 봉쇄와 공항 송환대기구역에 이르기까지, 국경이 단순한 영토적 방벽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 배타적 통제가 교차하는 복잡한 시공간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국경을 닫힌 영토의 껍데기가 아닌, 전 지구적 규모로 공간을 착취하고 차등적 포함을 양산하는 ‘초영토적’ 공간으로 재정의한다.
다시 말해 저자는 국경이 국가의 주권을 담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세금 징수와 소비시장 통합, 자원 독점을 관철하기 위해 고안된 강력한 경제적 기획이었음을 예리하게 추적한다. 나아가 유럽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식민주의와 비서구적 조건이 상호작용한 역사적 궤적을 살피며, 국경에 내재된 다층적 시공간의 두께를 복원해낸다.
저자는 우리의 안일한 태도를 이렇게 비판한다. “왜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국경에 관한 이분법적인 상상 속에서 허우적대는가?”
지정학적 대전환의 시대, 국경의 본질을 다시 성찰하다
2000년대 중후반 10위권 밖에 있던 한국의 ‘여권 파워’는 2010년대에 점차 뛰어올라 2018년 이후 세계 2~3위를 자랑한다. 최근에는 전 세계 188개국을 사전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비자 국가의 GDP 합산 기준 헨리 여권 파워 지수로는 세계 1위다. 이는 수십 년 전 최상위권을 누린 미국 여권이 180개국 기준 공동 10위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한국 여권의 외교적 위상과 신뢰도가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는지 알려주는 생생한 증거다.
대다수 한국인은 학교에서 국가를 규정하는 세 요소는 ‘국경, 영토, 주권’이며, 이는 언제나 하나로 일치한다고 배웠다. 여전히 분단국가라는 숙명을 짊어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국경은 ‘3·8선’일 수밖에 없었다. 일상으로 자리 잡은 ‘세계화’된 현실에서 가장 자유롭게 지구촌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게 된 한국인에게 국경 분쟁은 그저 먼 나라들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지정학적 대변혁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여전히 우리가 그 감각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맞나 싶은 문제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지도 위에 그어진 하나의 선이 국경이며, 그 선을 영원불변한 사실이라고 받아들인 채 살아왔다. 그러나 국경의 계보학을 살펴보면, 자연환경에 따른 각국 영토의 끝이 국경이 아니라 서구식 권력이 직접 작성하고 강요한 정치적 축조물이자 경제적 이유로 창안된 ‘권력과 자본이 교차하는 시공간’이라는 진실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국경의 진짜 본질과 역할, 그 뒤에 감춰진 거대한 역설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대면해야 한다.
영토를 넘어 공간으로: 타자를 ‘포함하는’ 연결 중심의 세계관
여문책 지정학 총서 ‘판’ 시리즈의 첫 책 『세계 열정의 삼각관계』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된 『국경, 무엇이 문제인가』는 르네상스 이후 근대 국가가 다져온 선형 국경의 신화를 해체하고, 오늘날 전 지구적 불평등과 자본의 이동 속에서 국경이 지닌 실체를 입체적으로 파헤친 비판지정학계의 역작이다. 이 책을 번역한 주명철 교수에 따르면, 비판지정학이란 1980년대 후반 몇몇 학자의 주도로 형성된 현대 정치지리학의 핵심 패러다임으로, 영토와 국경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고정된 실체로 보던 전통 지정학적 관점을 비판하고, 공간과 지리적 경계가 지배 권력의 전략이나 담론에 따라 어떻게 구성되고 변형되는지를 해체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을 뜻한다. 그 관점에서 오늘날의 국경 문제를 바라보는 저자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공간을 착취하고 사람들을 등급별로 갈라치는 거대한 메커니즘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제 국경이란 국가가 설정한 영토적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 작동하는 정치적 실체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영토와 영토성이라는 개념을 정면으로 수용하면서, 국경을 단순히 영토에 갇힌 틀이 아닌 영토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는 ‘초영토적’ 공간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국경이란 단지 영토를 감싸는 껍데기가 아니라 전 지구적 규모로 공간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기계의 부품처럼 작동할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오늘날 정치 체제가 내세운 온갖 명분들을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검토해야 한다.” (132쪽)
나아가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안일하게만 여겨온 국경의 실체를 폭로하고 그 이면에 작동하는 권력의 작동 기제를 밝힘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할 것을 역설한다.
“국제 경계선은 정치적 프로젝트인 동시에 엄연한 경제적 기획이며, 이 때문에 국경은 ‘발명’된 초기부터 영토 주권의 경계를 넘어 중요한 과정의 중심으로 작동했다. 따라서 국경은 절대 국민국가의 주권을 담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며, 오히려 자원을 차지하려는 가변적 장치의 핵심 요소에 가깝다. 나는 이러한 이중성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결코 본래의 뜻을 왜곡해서 만들어낸 최근의 변화가 아님을 분명히 규명하고자 한다.” (194~195쪽)
“국가 중심적 분석이 은폐해온 국경은 그동안 정치적 사유를 가두는 무대 벽과 다름없었다. [중략] 이제 우리는 이 장벽을 과감히 뜯어내고 국경을 ‘개방된 권력 네트워크’의 내부로 새롭게 재배치해야 한다.” (189쪽)
‘장벽 정치학’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관계의 지리학’으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 귀화자 규모는 2025년 기준으로 순수 귀화 허가를 받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만 총 1만 1,344명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2023년(약 1만 346명)과 2024년(약 1만 1,008명)에 이어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과거 한국 국적이었다가 상실한 후 다시 국적을 회복한 사람(4,037명)까지 포함하면 2025년 한 해 동안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1만 5,381명이며, 지금까지는 중국과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서구권 인구의 유입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거주 외국인과 귀화자, 이민자 2세를 모두 포함한 전체 ‘이주 배경 인구’는 최근 271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5퍼센트를 웃돈다고 한다.
이 같은 통계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듯 이제 한국은 다양한 출신지의 세계 시민들이 복작거리며 살아가는 다원주의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3·8선’이나 단일한 국적이라는 낡은 틀로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데 더 큰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