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 서시
*닫히지 않는 문
문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수없이 닫히던 밤들이
경첩마다 마른 소리로 남아 있었다
바람은 제 길을 가며
문틈에 계절 하나를 끼워 두고 갔다
문지방에는
수없이 드나든 발끝이
낮아진 나뭇결로 남아 있었다
방 안과
방 밖 사이
문은
평생
벽이 되지 않았다
-조동선 작가
저자의 말
살면서 어느 순간 사람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실망. 혹은 이루어 낼 수 없는 절망감. 열망해 봐야 소용없다는 좌절감. 뭐 이런 이유들로 살아가는 것에 회의를 느꼈던 그런 때였습니다.
나는 신앙인이었고 신앙에서 긍정적인 삶을 격려받고 있었으므로 신에게 나의 삶의 의미를 두며 한동안 삶을 잘 살아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늘 이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말하고 있는지,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소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십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나이가 주는 통찰력이 뒷받침이 되어주었습니다. 소설을 배우며 사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내 마음에 피어났고 사회의 예각 속에서 힘겹게 삶을 살아내는 인물들이 보였습니다.
주인공의 여정에는 내가 가본 길도 있고 가보지 못한 길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길 모두를 생각하고 조사하고 배우고 공감함으로써 인물들을 형상화했습니다. 우리가 함께라는 울타리에 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을, 이해받아야만 하는 긴박한 인물들을 내세웠습니다. 그런 소설 속 인물들이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작은 불편이 우리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를 기대합니다. 이제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글을 세상에 내보냅니다. 하여, 하늘의 많은 별처럼 수많은 글이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기를 원합니다.
항상 나의 옆에서 격려해주는 나의 신랑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나의 딸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사랑을 보냅니다. 책을 출간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청어출판사 이영철 대표님, 함께 공부한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저의 첫 스승이 되어주신 조동선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인 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2026년 가을
논현동에서 김애숙
책 속에서
*당신의 등
눈 뜨면
등으로 출근하는 사람
시든 상추 시금치 푸르게 살리고
묵은 쌀 뽀얗게 빛내어
매끼의 삶을 지어내는
퍼덕이던 바다가
도마 위에서 잔잔해지고
냄비마다 한소끔 파도가 넘쳐도
당신의 등은 소리 없이 바다를 재운다
며칠, 내가 그 자리에 섰다
설거지통은 좀처럼 끝을 내주지 않았고
냄비 구석에 눌러붙은 탄 자국 지우려다
팔목보다 먼저 마음이 저려 왔다
그제야 알았다
주방은 저절로 꽃피는 곳이 아니라
평생 당신이 등을 구부려
한 집의 숨결을 지켜내고 있었다
*손 안의 겨울
숲은
잎 하나 버리지 않았다
저마다 때가 오면
가만히 손을 놓았을 뿐
나무도
붙잡지 않았고
바람도
등을 떠밀지 않았다
떠나는 일은
밖에서 오는 힘이 아니라
안에서 오래 익어 온
한 계절의 일이었다
나는
놓지 못한 것 하나
가슴에 매단 채
겨울보다 먼저 메말라 갔다
낙엽은
떨어진 자리에서
제 몸을 흙에게 풀어 주었다
나는 아직도
손 안에 쥔 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