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GDP 숫자의 기원과 함정: 성장하지 않으면 가난해질까?
성장이 멈추면 정말 삶도 무너지는가? GDP가 증가한다는 것과 우리가 더 잘 산다는 것은 정말 같은 말인가? 더 많은 생산은 기후위기와 빈곤,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GDP가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을 놓치는지에서 출발한다. 돌봄과 여가, 공동체, 건강한 환경, 삶의 만족처럼 인간의 삶을 지탱하지만 시장가격으로 쉽게 환산되지 않는 가치는 GDP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반면 환경을 훼손하거나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경제활동이라도 돈이 오가면 GDP를 증가시킬 수 있다. 결국 경제의 크기를 재기 위해 만든 불완전한 지표 하나가 어느 순간 사회 전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되었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기술이 해결해줄 것이다”라는 낙관주의를 검증하다
이 책의 힘은 성장주의를 윤리적으로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파리크는 경제성장과 자원 사용, 기술혁신, 생산성, 녹색성장, 탈동조화(decoupling) 등 성장경제를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를 경제학의 언어로 하나씩 검토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효율성이 높아지면 경제는 계속 성장하면서 환경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녹색성장의 약속은 현실에서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 기술혁신의 속도는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빠른가? 자원의 투입과 탄소배출을 충분한 속도로 줄이면서 GDP를 끝없이 키우는 것이 가능한가?
파리크는 이러한 질문을 수많은 연구와 사례를 통해 검토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생산하는 경제’만으로 생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책이 성장과 자원 사용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탈성장과 경기침체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다양한 논거로 설명한다고 평가하며, 이를 “현 체제에 던지는 긴급하고도 우아한 도전”이라고 평했다.
탈성장은 ‘경제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파리크가 말하는 탈성장은 단순히 GDP를 떨어뜨리는 것도, 모두가 가난해지는 것도 아니다. 경기침체와도 다르다.
그가 제시하는 탈성장은 생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생산과 소비를 계획적으로 줄이되, 그 과정에서 삶의 질과 사회적 평등을 지키기 위해 경제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무엇을 더 생산하고 무엇을 덜 생산할지, 노동시간과 부를 어떻게 나눌지, 어떤 활동을 시장의 논리로부터 보호할지를 집단적이고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전환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끝없이 성장해야만 유지되는 경제에서 벗어나 성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번영할 수 있는 포스트 성장 경제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책에서 ‘탈성장’은 목적지가 아니라 전환의 과정에 가깝다. 목표는 계속해서 경제를 축소하는 사회가 아니라, 더 이상 GDP의 증가가 삶과 사회의 안정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지 않는 사회다.
다른 탈성장 책과 다른 점: 경제학 이론과 정책 레시피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탈성장을 하나의 정치적, 생태운동적 구호가 아니라 경제학적 논증의 대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저자는 2019년 완성한 경제학 박사논문 “탈성장의 정치경제학(The Political Economy of Degrowth)”의 연구를 독자들을 위해 풀어내고자 했으며, 이 책은 그 박사논문 전반부를 대중서로 발전시킨 것이다.
책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치밀하게 이어진다. GDP는 왜 번영의 척도가 되었는가 → 경제는 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가 → 녹색성장은 가능한가 → 기술혁신이 성장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가 → 탈성장은 경기침체와 어떻게 다른가 → 그렇다면 성장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래서 이 책은 “덜 소비하자”는 생활방식 제안이나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환경서와 결이 다르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성장이 곧 번영’이라는 등식을 경제학 내부에서부터 다시 검토하고, 그 자리에 어떤 경제를 세울 것인지 묻는다.
〈파이낸셜 타임스〉 역시 탈성장에 대한 논쟁적 성격을 짚으면서도 이 책에 대해 “명료하고 흡인력 있다(clear and engaging)”고 평가했다.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서의 엄밀함을 유지하면서 책의 전반부에서는 성장 신화를 해체하고 후반부에서는 대안으로서의 탈성장을 다룬다. 또한 실제 정책 논의의 장에서도 활발히 발언해온 학자답게 이론에 머물지 않고 정책적 내용을 소개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공을 보인다.
성장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경제가 존재하는가’를 묻는 책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붕괴, 심화하는 불평등 앞에서도 경제정책의 가장 중요한 성공 기준은 여전히 GDP 성장률이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하면서도 급진적이다.
“경제가 삶을 위해 존재한다면, 왜 삶의 가치보다 경제의 크기를 먼저 키워야 하는가?”
성장이 멈추면 삶도 무너진다는 오래된 믿음을 깨고, 더 많은 생산이 기후위기와 빈곤, 불평등의 해법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성장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사회와 생태계를 한계로 몰아가고 있는 지금, 이 책은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GDP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사회적·생태적 번영을 경제의 목표로 되돌리는 탈성장의 비전을 제시한다. 따라서 이 책이 궁극적으로 묻는 것은 우리는 ‘무엇을 성장시키고 싶은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경제가 존재해야 하는가’이다.
탈성장에 대한 12가지 오해와 반박
탈성장론에 대해 “현실로 옮겨놓은 헝거게임”, “붕괴에 집착하는 사람들”, “등잔불 옹호자”, “사회적 혼란”, ‘치명적 대안’과 같은 오래된 질책과 비난이 난무한다. 이 책이 다루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내용은 탈성장 논의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러한 오해나 비판을 12가지로 정리해서 조목조목 반박하며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탈성장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다’거나 ‘혁신을 반대한다’, ‘반기업적이다’, ‘전체주의적이다’와 같은 것들이다.
이와 더불어 ‘탈성장의 교황’이라 불리는 선구적 학자인 세르주 라투슈에 대한 비판 글 “탈성장 박사와 미스터 탈성장의 기묘한 사건”을 부록으로 실은 점도 눈에 띈다. 이 글은 라투슈가 티모테 파리크를 포함하여 신진 탈성장 연구자들을 도에 넘치게 비난한 것(2세대 개량주의자, 명성을 쫓는 자들)에 대한 파리크의 반비판이다. 프랑스어판을 비롯한 해외 출간서에는 들어 있지 않은 한국어판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