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국제사회는 ‘일국양제’라는 약속을 믿었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가 되지만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와 독립적인 사법제도, 언론과 집회의 자유는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불과 20여 년 뒤, 수백만 명의 홍콩 시민은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했고, 무엇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상과 안전을 걸었을까.
『홍콩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는 그 질문에 2019년 시위 현장의 목소리로 답한다. 저자 필립 우는 시위대를 멀리서 관찰한 연구자가 아니다. 그는 고령과 질병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함께 수십 차례의 행진과 집회에 참가했다. 거대한 군중 속을 걸었고, 최루탄과 경찰 진압을 목격했으며, 교회와 시민단체가 시위대를 돕는 현장에 함께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힘은 바로 그 체험의 구체성과 절박함에 있다.
책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이 어떻게 홍콩 시민들의 불안을 촉발했는지부터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송환법 철회를 요구하던 운동이 경찰의 강경 진압과 정부의 대응을 거치면서 ‘다섯 가지 요구’로 확대되고, 다시 홍콩의 민주주의와 법치, 자치권을 지키려는 광범위한 시민운동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변화의 근본 원인으로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확대와 일국양제의 붕괴를 지목한다.
거리의 투쟁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도 이 책의 특징이다. 포스트잇 한 장으로 자신의 뜻을 밝힌 레논 벽, 스마트폰 불빛으로 도시를 연결한 인간사슬, 파업과 수업 거부에 참여한 노동자와 학생, 해외 신문 광고를 위해 모금한 시민들, 구의회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유권자들의 모습이 함께 펼쳐진다. 이를 통해 독자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이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동과 연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홍콩 교회에 관한 기록은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은 정치적 논란을 우려해 침묵했지만, 다른 이들은 시위 현장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부상자를 돌보며 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저자는 교회를 단순한 종교기관이 아니라 불의한 권력 앞에서 진실과 정의를 증언해야 하는 공동체로 바라본다. 시위대 앞에서 울려 퍼진 「싱 할렐루야 투 더 로드」는 홍콩 시민들에게 평화와 비폭력, 연대의 상징이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사건 해석과 수치, 경찰과 정부를 향한 주장은 저자의 경험과 정치적 관점에 기반한다. 따라서 『홍콩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는 객관성을 표방하는 정치학 개론서라기보다, 운동의 한복판에 있던 참가자가 남긴 증언과 고발의 문서로 읽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당사자성 때문에 당시 시민들이 무엇을 믿고 두려워했으며, 왜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가 생생하게 전달된다.
책에는 시위와 충돌, 체포와 부상뿐 아니라 노래와 기도, 예술과 선거, 국제적 연대도 기록되어 있다. 수많은 현장 사진은 본문에서 설명하는 사건을 시각적으로 증언하며, 2019년 홍콩의 거리와 지하철역, 대학 캠퍼스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기록을 후대에 남겨야 할 집단적 기억이자,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한 장으로 제시한다.
홍콩의 이야기는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와 법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언어와 공권력이 조금씩 변질되는 과정에서 무너진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을 지키려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언론과 종교 공동체가 필요하다.
『홍콩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는 자유를 잃어가는 도시가 세계에 보내는 경고이자, 폭정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민들의 기록이다. 홍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은 독자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 시민 불복종, 교회와 정치의 관계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책 속에서
1. 거리로 나선 저자의 목소리
나는 이 운동에 참여한 은발의 노인 중 한 명입니다. 젊은이들의 투쟁과 그들의 불굴의 정신은 우리에게 더 큰 희망을 줍니다.
― 「프롤로그」, 6쪽
2. 홍콩 시민들이 지키려 했던 것
홍콩을 가치 있고 독특하게 만드는 요소는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입니다.
― 「소개」, 34쪽
3. 지도자 없이 움직인 저항
과거 OCLP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시위대는 어떠한 공식적인 지도자도 두지 않았습니다. 각 시위는 특정 장소를 오랫동안 점거하지 않으며 하루 안에 끝내고 자정 전에 해산하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시민들에게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경찰, 폭력 진압대, 삼합회 조직원들이 습격해오더라도 즉시 해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전체주의 정권에 맞선 모두의 운동」, 60쪽
4. 거리의 피난처가 된 교회
교회들은 시위대를 위한 휴식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홍콩 전역의 교회들이 행진하는 시위대를 위해 기도하고, 물과 음식, 화장실을 제공하며 쉼터가 되었습니다. 또한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하고 체포하려 할 때 교회들은 ‘도피성’ 역할을 했습니다.
― 「찬송가」, 78쪽
5. 무너뜨려도 다시 세우는 사람들
우리가 작업한 칭이 청홍 단지(Cheung Hong Estate) 맞은편의 레넌 벽도 완성한 지 2시간 만에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인근 거주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벽을 재건했습니다.
― 「레넌 벽(Lennon Walls)」, 85쪽
6. 아무도 남겨두고 떠날 수 없었다
건물에서 나와 인원을 점검하던 중, 네 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입법회에 남아 마지막까지 싸울 결심을 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뜻대로 두어야 했지만 그들의 희생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체포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떠날 거라면 함께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입법회로 돌아가 그들을 데리고 나오기로 했습니다.
― 「입법회 습격」, 98쪽
7. 마스크를 벗고 서로를 껴안을 날
마지막으로, 이 시민 불복종 운동이 끝난 후, 마스크를 벗고 서로를 껴안으며 승리를 축하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시민 불복종」, 220쪽
8. 고향을 떠난 뒤에도 남은 신념
하지만 마음이 죽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싸울 수 있습니다.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지금 어디에 있든, 어느 나라에 있든,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우리의 신념을 지켜야 합니다. 이 시대를 뒤흔든 혁명을 잊지 마십시오.
― 「부록」, 3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