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뉴질랜드 테 아라로아 3,000km를 걸으며 써 내려간 생생한 자기 발견의 기록
“테 아라로아는 나를 바꾸어놓았다. 어떻게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계에는 한 번쯤 꼭 걸어보고 싶은 길들이 있다. 수많은 여행자와 순례자가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찾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로 잘 알려진 미국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의 무대가 된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해마다 수많은 사람을 길 위로 불러낸다.
뉴질랜드에도 그런 길이 있다. 북섬과 남섬을 잇는 약 3,000킬로미터의 장거리 도보길 테 아라로아(Te Araroa)다. 마오리어로 ‘길게 이어지는 길’이라는 뜻을 가진 이 길은 눈 덮인 산맥과 원시림, 광활한 초원과 해변, 거센 강과 외딴 산장을 지나며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온몸으로 통과한다.
이 책에서 테 아라로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날씨와 거친 지형으로 나오미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때로는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걸음을 멈추게 하며,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과 감정을 끌어올리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나오미가 길 위에서 변화해 가는 동안 테 아라로아 역시 계절과 지역에 따라 끊임없이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저널리스트 나오미 아널드는 이 길을 9개월 동안 홀로 걸었다. 그러나 『테 아라로아, 나에게로』는 장거리 트레일 완주 경험담에 머물지 않는다. 진흙과 비, 허기와 고독을 견디며 자신의 두려움과 상처를 마주하고 조금씩 달라져 가는 한 사람의 여정을 놀라울 만큼 정직하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 걸음씩, 나에게로
길 위에서는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다. 발이 아프고 몸이 지쳐도 다시 일어나 배낭을 메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나오미는 매일 반복되는 걷기 속에서 회복탄력성이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힘든 날에도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꿋꿋이 버티는 것뿐이었다.”
혼자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상에서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기억과 감정들도 하나둘 떠오른다. 그리고 긴 시간 다른 사람을 돌보며 살아온 자신이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길 위에서 비로소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묻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혼자였기에 더 소중해진 인연
이 책은 고독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이야기한다. 나오미는 혼자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일이 간절해졌다. 길 위에서 건네받은 따뜻한 음식 한 끼, 낯선 이의 작은 친절, 잠시 함께 걸었던 동행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마다 지친 나오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홀로 걷기 위해 떠난 길에서 오히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사람의 온기는 더욱 크게 다가왔고, 길 위에서 맺어진 짧은 인연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조금씩 새로운 나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
9개월의 여정을 마친 뒤 나오미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담담하게 돌아본다. 길은 그녀를 무너뜨렸다가 다시 일으켜 세웠다.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고,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보다 스스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완주했다는 성취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하기로 마음먹었던 일을 끝냈다는 데서 오는 조용한 만족감과 이전과는 조금 다른 자신이었다. 『테 아라로아, 나에게로』는 3,000킬로미터를 완주한 성공담이 아니다. 한 사람이 긴 고독과 자연, 뜻밖의 친절을 통과하며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조금씩 새로운 자신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오늘도 저마다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는가가 아니라, 그 길이 결국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바꾸었는가 하는 사실을.
20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한국으로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는 데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나오미 아널드는 20여 년 전 한국에서 3년간 영어를 가르치며 생활했다. 특히 원주에서 지내며 치악산을 비롯한 한국의 산과 자연을 가까이했던 시간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국어판을 위해 새롭게 쓴 서문에서 나오미는 당시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돌아보며 오래전 자신이 살았던 나라의 독자들에게 자신의 가장 긴 여정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게 된 기쁨을 전한다.
20여 년 전 한국의 산을 걷던 한 사람이 훗날 뉴질랜드를 끝에서 끝까지 걸었고, 그 이야기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테 아라로아, 나에게로』 한국어판이 조금 더 특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