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이 책이 지친 마음에 건네는
작은 초록색 처방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번아웃으로 무너진 간호사가
북촌을 걸으며 발견한 작은 정원들
저자는 대학병원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아픈 사람들의 곁을 지키던 어느 날, 가슴이 답답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한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무엇이 환자들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켜 줄 수 있을까 고민했던 그는, 자신의 삶이 균형을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답을 찾아 나서게 된다.
답은 뜻밖에도 병원이 아닌 자연에 있었다. 마흔 중반, 간호사에서 산림치유지도사이자 숲해설가로 삶의 방향을 바꾸고 깊은 숲속이 아닌,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자연이 사람을 회복시키는 순간들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보는 자리도 ‘정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원’이라고 하면 잘 가꾸어진 나무와 꽃, 담장 안의 아름다운 풍경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북촌의 작은 정원들』이 찾아가는 정원은 조금 다르다. 안국역 주차장 틈에서 자라는 오동나무, 원서동 건물 사이에 뿌리내린 쉬나무, 삼청공원의 조팝나무, 북촌로 담벼락 아래의 냉이까지. 저자는 북촌의 궁궐과 공원은 물론 골목의 담벼락, 건물 틈과 보도블록 사이에 살아가는 식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우리 선조들은 정원을 만들 때 먼 산의 능선과 주변의 경치를 창과 기둥 사이로 ‘빌려 와’ 감상했다. 이른바 ‘차경(借景)’이다. 저자는 이 오래된 정원의 지혜를 오늘의 도시로 가져온다. 골목 어귀의 풀꽃 한 포기와 출근길의 나무 한 그루를 잠시 ‘빌려’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를 위한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걷는 이가 나무 한 그루 앞에 멈춰 서는 순간, 그곳에 비로소 자신만의 ‘마음 정원’이 생겨난다.
이 책은 북촌을 걸으며 만나는 식물들을 통해 비움과 인내, 다정함과 회복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촌을 걷는 일은 식물의 시간과 600년 도시의 시간을 함께 걷는 일이자, 빠르게만 흘러가는 자신의 시간을 잠시 늦추어 보는 일이다.
식물의 생존법에서 배우는 다시 살아가는 법
가을이 깊어지면 중국단풍은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잎으로 보내던 물과 영양분을 스스로 차단하고, 봄부터 애써 키운 잎을 떨어뜨린다. 우리가 보기에는 소멸처럼 보이는 낙엽이 나무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인 셈이다. 저자는 그 생존법에서 우리에게도 필요한 ‘비움’을 이야기한다.
창경궁 명정문 아래에서 만난 작은 꽃다지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보여 준다. 다른 식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꽃다지는 가을부터 잎을 땅바닥에 납작하게 펼치는 로제트 형태로 겨울을 난다.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힘은 누구보다 빨리 달렸기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계절 동안 낮은 자리에서 오래 견뎠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 책 『북촌의 작은 정원들』에서 저자는 수억 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식물이 터득한 생존 방식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언어’를 길어 올린다.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친 마음은 회복될 수 있을까?
이 책이 식물에서 위안을 얻는 감성적인 자연 에세이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 있다. 사람의 몸을 과학적으로 살펴야 했던 임상 간호사의 시선과 자연을 통해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산림치유지도사의 시선이 한 권의 책 안에서 만난다.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진된 주의력이 회복될 수 있다고 설명하는 레이철 카플란과 스티븐 카플란의 ‘주의 회복 이론’, 스트레스를 받은 신체가 자연 앞에서 안정을 되찾는 과정을 설명하는 로저 울리히의 ‘스트레스 회복 이론’, 인간에게 생명과 자연을 향한 본능적인 애착이 있다는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 가설’까지 자연과 인간의 회복에 관한 연구를 책 곳곳에 녹였다.
거창한 치유법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 앞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는 것, 작은 풀꽃을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것, 계절이 바뀌는 냄새와 빛을 알아차리는 것. 이 책은 도시인의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통해 자연이 지닌 회복의 힘을 전한다.
우리 곁에는 이미 수많은 작은 정원이 있다
책을 따라 골목을 걷다 보면 평소에는 이름조차 궁금해하지 않았던 가로수와 담벼락의 풀꽃, 보도블록 사이의 작은 생명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배경처럼 지나쳤던 식물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순간, 우리가 사는 도시에도 수없이 많은 작은 정원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너무 빠른 일상의 속도에 지쳐 마음이 퍽퍽해지는 날, 골목 어귀의 나무 한 그루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북촌의 작은 정원들』은 무너진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식물 앞에 멈춰 섰던 한 사람이, 같은 도시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건네는 ‘작은 초록색 처방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