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위험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위험의 가능성과 파괴력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했다.
2005년 8월 리먼브라더스의 분석가들은 주택가격의 향방에 따라 자신들이 보유한 모기지 자산에서 얼마나 손실이 발생할지를 계산했다.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본 ‘기준’ 시나리오에서는 주택가격 상승률이 둔화될 뿐 가격은 계속 올랐다. 이 시나리오에 부여한 확률은 50%였다. 반면 앞으로 3년 동안 주택가격이 매년 5%씩 떨어지는 경우는 ‘붕괴’ 시나리오로 분류하고 단 5%의 확률을 부여했다. 나머지 네 시나리오, 즉 전체 확률의 95%에서는 주택가격 하락을 아예 상정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리먼의 금융 전문가들이 집값 하락이라는 가능성 자체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모기지에서 어느 정도 손실이 발생할지도 계산하고 있었다. 그들이 틀린 것은 가능성의 존재가 아니라 그 가능성에 부여한 확률이었다. 위험은 보였지만 그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과 파괴력을 지나치게 낮게 평가했다.
일반인들의 기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3~2007년 실시된 조사에서 주택 구매자들은 앞으로 10년간 자신의 주택가격이 매년 앨라메다카운티 11.6%, 오렌지카운티 13.2%, 밀워키 9.5%, 미들섹스 8.1%씩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 자신들이 목격한 집값 상승을 먼 미래까지 연장한 것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외삽적 기대’의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2006년 약 2%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간 디폴트율은 2007년 약 4%, 2008~2009년에는 16%까지 치솟았다. 특히 2006~2007년에 발행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가운데 거의 3분의 1이 5년 이내에 부도가 났다.
위기는 왜 1년이나 늦게 찾아왔을까?
좋은 시기에는 위험을 지우고, 나쁜 시기에는 파국을 확대하는 진단적 기대
《믿음의 위기》가 던지는 흥미로운 질문은 또 하나 있다. 미국 주택가격은 이미 2006년 중반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디폴트가 증가했고, 그해 중반부터 후순위 MBS 가격이 빠르게 무너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AAA 등급의 선순위 증권 가격마저 하락했다. 그런데 세계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킨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2008년 9월 15일이었다.
위험이 이미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왜 전면적인 위기까지 1년 이상이 걸렸을까?
저자들의 설명은 단순하다.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낙관은 점차 사라졌지만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은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증권화와 리스크 풀링이 위험을 분산시킬 것이라는 믿음, 정교한 금융공학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연방준비제도가 개입해 시스템을 안정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었다. 저자들이 말하는 일종의 ‘다각화의 신화’였다.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가?
현대 거시경제학의 핵심 가정에 ‘기대 데이터’로 도전하다
《믿음의 위기》는 2008년 금융위기를 넘어 훨씬 더 큰 경제학적 질문으로 나아간다.
현대 경제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합리적 기대 가설은 경제주체들이 이용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해 체계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기대를 형성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언제나 정확하게 미래를 맞힌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틀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오류가 특정 방향으로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여서는 안 된다.
제나이올리와 슐라이퍼가 주목한 것은 그래서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예상했는가’였다. 투자자, 가계, 기업 경영자, 전문 예측가들을 대상으로 한 기대 설문을 모아 사람들이 당시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직접 들여다본다. 전통적인 행동금융학이 자산가격이나 수익률을 통해 투자자의 비합리성을 간접적으로 추론했다면,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주체들의 머릿속에 있었던 기대 자체를 데이터로 분석한다.
대표성 휴리스틱에서 출발한 새로운 기대 이론
그 대안이 이 책의 핵심 개념인 ‘진단적 기대diagnostic expectations’다. 저자들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연구한 ‘대표성 휴리스틱’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모든 가능성에 적절한 확률을 다시 계산하는 완벽한 통계학자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대신 이전 상황과 비교해 지금의 상황을 가장 두드러지게 특징짓는 결과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인간을 아무 정보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 비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유용한 정보, 객관적으로 옳은 정보”에 반응한다. 다만 “왜곡된 방식으로” 반응한다.
좋은 경제 뉴스가 계속되면 낙관적인 미래가 점점 더 ‘대표적인’ 미래로 보인다. 최근의 상승을 미래로 외삽하고, 반대편에 있는 극단적인 하방 위험은 점점 덜 그럴듯하게 느낀다. 평균적인 미래는 실제보다 좋아 보이고, 위험의 분포는 실제보다 안전해 보인다. 이것이 버블이 커지는 동안 투자자들이 낙관적인 동시에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같은 심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쁜 소식이 충분히 쌓이면 이번에는 왼쪽 꼬리, 즉 극단적인 하방 시나리오가 대표성을 갖는다. 사람들은 미래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한다. 낙관을 만들어냈던 바로 그 심리적 메커니즘이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금융위기는 믿음의 위기다!
신용 팽창에서 버블, 붕괴, 패닉까지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금융위기의 모습도 달라진다.
호황기에는 좋은 소식이 미래에 대한 낙관을 키운다. 낙관은 자산가격을 높이고 위험에 대한 인식을 낮춘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부채가 더 많이 발행되고 신용이 팽창한다. 신용의 팽창은 다시 경제의 호황을 강화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시스템 내부에는 사람들이 제대로 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위험이 계속 쌓인다.
그러다 상황이 바뀐다. 처음에는 기대가 조금씩 하향 조정된다. 하지만 이전에 간과했던 위험이 현실로 드러나는 순간, 믿음은 급격하게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자산은 위험자산이 되고, 투자자는 자산을 팔고, 신용은 얼어붙는다. 자산가격 하락과 금융기관의 손실이 서로를 증폭시키면서 금융시스템 전체가 흔들린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리먼의 붕괴는 단지 하나의 투자은행이 실패했다는 소식이 아니었다. 금융시스템이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며, 그동안 안전하다고 믿었던 시스템에 거대한 꼬리위험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한꺼번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낙관의 근거였던 믿음이 무너졌고, 시장은 반대편의 극단적인 비관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