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문제는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만 있지 않다
이 책이 바라보는 AI 시대의 풍경은 생각보다 넓다. 문해력의 저하가 있고, 생성형 AI에 판단과 사고를 조금씩 넘기는 ‘지적 외주화’가 있다. 내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을지 결정하는 알고리즘의 힘도 더 커졌다.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지, 디지털 공간에서 기억과 역사는 어떻게 바뀌거나 왜곡될 수 있는지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AI 문제는 새로운 기계를 잘 다루는 법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는 방식 전체와 맞닿아 있다.
기술이 똑똑해질수록 오히려 값이 오르는 능력들
기계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능력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조금 다르게 본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채는 힘, 질문을 만드는 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는 힘, 쉽게 결론 내리지 않고 판단하는 힘이 오히려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설명하고, 다른 사람과 부딪치며 고쳐 가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은 거창한 천재성보다 이런 오래된 인간의 능력들인지도 모른다.
『프랑켄슈타인』과 『멋진 신세계』를 다시 읽는 이유
AI 시대를 다루는 책인데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등장한다. 얼핏 멀어 보이지만 낯설지는 않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만든 기술을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과학과 권력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편리함을 얻는 대신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를 물어 왔다. 기술은 달라졌다. 질문은 의외로 오래되었다. 이 책이 고전을 끌어오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독일 교육을 그대로 따라 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책에는 독일의 사례가 여러 차례 나온다. 이원화 직업교육, 민주시민교육, 하르낙 원칙, 기억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고 독일을 이상적인 교육 모델로 내세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회의 제도를 들여다보면서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인 것들을 다시 보자는 쪽에 가깝다. 어떤 제도든 그것이 만들어진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떼어 놓고 가져오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비교는 답을 베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조금 낯설게 보기 위해 필요하다.
교육은 정답을 받아 적는 훈련이어야 하는가
저자가 오래 교육 현장에서 관심을 가져 온 것도 이 대목이다. 학생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읽고, 문제를 만들고, 글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설명하고 토론하는 과정. 답을 먼저 알려 주는 대신 생각이 만들어지는 시간을 교육 안에 남겨 두는 방식이다. AI가 정답을 곧바로 제시해 주는 시대라면 이런 과정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비효율 속에서 자신의 논리가 만들어진다. 질문이 생기고, 틀린 생각을 고치고, 남의 반론을 견디는 법도 배운다.
진단만 하고 끝내지 않는다
책은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서술형·논술형 평가와 발표·토론 교육, 직업교육의 구조 변화, 알고리즘 투명성과 시민 참여형 기술 거버넌스, 지역과 돌봄의 문제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만 저자는 이런 제안들을 정답이라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하나의 사회 문제에 단 하나의 처방만 존재할 리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의 제안들은 완성된 해법이라기보다 토론을 이어 가기 위한 초안에 가깝다. 동의할 수도 있고, 반박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다.
십수 년 전의 글이 아직도 낯설지 않은 이유
이 책의 상당수 글은 지난 10여 년 동안 신문과 방송, 학술지 등에 발표했던 칼럼을 다시 다듬은 것이다. 오래된 글도 있다. 수치와 통계는 현재에 맞게 손봤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크게 바꾸지 않았다. 이유는 역설적이다. 그때 지적했던 교육의 문제가 지금도 완전히 지나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해력, 교육 격차, 직업교육, 시민교육,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질문은 형태를 바꾸면서 계속 돌아온다. 몇 년 전 문장이 지금도 현재형으로 읽힌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현실일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AI시대, 인문학에 미래교육을 묻다』는 AI 기술을 설명하는 책도, 미래교육의 정답을 한 장짜리 처방전처럼 제시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답이 너무 빨리 나오는 시대에 질문을 오래 붙잡아 보자고 말한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무엇을 의심할 것인지, 무엇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어떤 능력을 남겨 줄 것인지.
기술이 인간을 닮아 가는 속도는 빠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조금 달라져야 한다. AI가 인간처럼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데서 그치지 않고, ‘AI가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도 인간이 끝내 스스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묻는 것.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미래교육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 속에서
인간과 AI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하는 ‘공진화’ 모델은 이러한 공존의 훌륭한 나침반이 된다. 그러나 기술과 인간이 진정한 파트너십을 맺고 ‘따뜻한 AI’로서 상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수용이나 기술 맹신은 금물이다. AI는 주어진 데이터 속에서 효율성을 최적화할 뿐,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 결정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묻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과 기술이 건강하게 공존하려면 왜곡된 알고리즘의 편향을 간파하는 ‘비판적 사고’와 기술 이면의 윤리적 문제를 짚어내는 ‘도덕적 판단력’이라는 든든한 지적 안전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61쪽)
그렇다면 오늘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답은 명료하다. 과거를 접할 때 두 가지 질문을 주체적으로 던지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첫째, “이것은 검증된 사실인가?” 둘째, “누가, 언제, 어떤 의도로 이것을 기억의 상징으로 호출했는가?” 지역의 작은 기념비나 국가 기념일을 조명하며 건립 주체와 배경을 추적하는 활동은 훌륭한 시작점이 된다. 나아가 중등교육과 대학 등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사료와 증언, 기념물, 그리고 후대의 해석을 엄격히 구분하여 인용하고 논증하는 ‘논리적 글쓰기와 발표·토론’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 구분을 스스럼없이 혼동하는 글은 아무리 수사가 화려해도 논증이 아니며, 근거와 해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발언은 아무리 유창해도 성찰적 토론이 될 수 없다. (125~126쪽)
평화가 곧 통일의 과정이라는 현 정부의 인식 전환은 매우 타당하며, 이를 교육 현장의 핵심 가치로 뿌리내리게 한 결정에 적극 동의한다. 통일을 미래에 올 단발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남북 간 상호 교류와 협력, 안정적인 평화 정착의 과정을 곧 통일의 상태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북한의 적대적 태도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고히 하고 주변국과의 신뢰를 회복하여 평화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다. 학생들에게 적대감을 심어 주기 보다 자유와 인권, 민주적 절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도 매력적인 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진정한 통일 준비다. 통일은 결코 우연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시민 교육, 그리고 평화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시민적 신념이 쌓여 만들어지는 인내의 대가다. (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