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신경외과 의사가환자의 기억과 사랑,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일을 지키는 이야기
수술대 위의 남자가 색소폰을 연주한다. 의사는 그의 열린 뇌에서 종양을 제거한다. 음정이 흔들리면 손을 멈추고, 연주가 다시 정확해지면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이 수술에서 음악은 의사가 어디까지 접근해도 되는지 알려주는 신호이자, 환자가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당신이라는 세계가 끝나지 않도록』은 신경외과 의사 크리스티안 브로냐와 작가 클라우디아 차넬라가 함께 쓴 의학 에세이다. 서른다섯 살 음악가 조르조의 뇌종양 수술을 중심으로, 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 세계를 누빈 의사의 수련 과정과 그 자신이 생사의 경계에 섰던 시간이 교차한다. 정밀한 뇌과학과 긴박한 수술 현장, 환자가 된 의사의 고백이 어우러져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여섯 명의 의사를 거쳐 찾아온 환자,그가 되찾고 싶은 것은 아이들과 음악이 있는 내일이었다
조르조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연인 안젤라를 사랑하는 남자이자 훌륭한 음악가이기도 하다. 앞서 만난 의사들은 수술이 너무 위험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했고, 마지막 의사는 석 달의 시한부를 선고했다. 그가 브로냐에게 바라는 것은 앞으로도 음악을 연주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다. 브로냐는 종양의 위치와 크기를 살피는 만큼 그가 살아온 시간과 이루고 싶은 꿈에 귀를 기울인다. 환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수술 중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각성 수술’은 이 약속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환자는 말하고, 계산하고, 기억을 떠올리고, 악기를 연주한다. 의사는 그 반응을 살피며 뇌의 기능을 확인하고 종양에 접근한다. 조르조의 손가락이 색소폰 위를 움직이는 동안 의료진은 그의 언어 능력과 운동 능력, 음악적 감각을 지키기 위해 집중한다. 독자는 그 곁에서 작은 뇌 조직을 보존하는 일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인지 실감하게 된다.
환자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믿었던 의사,마흔두 번째 생일에 자신이 환자가 되었다
조르조의 수술을 몇 달 앞둔 마흔두 번째 생일, 브로냐 자신이 세균성 뇌막염으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가족과 동료들의 목소리를 듣고도 대답할 수 없고, 자신의 예후를 논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살아 있다고 알릴 수 없다. 의사로서 익숙했던 병실은 이제 두려움으로 가득한 공간이 된다. 깨어난 뒤에도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다시 걸을 수 있을지, 메스를 쥘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환자들에게 받아온 질문이 고스란히 자신의 질문이 된다.
그를 붙드는 것은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손을 잡고 말을 걸어주는 친구, 첫걸음을 뗄 때까지 기다려주는 동료, 침대 곁에 머무는 딸. 타인의 돌봄에 온전히 자신을 맡겨본 뒤, 그는 환자의 침묵과 불안 앞에 이전과 다른 마음으로 선다. 그렇게 회복하자마자 그가 만나고 싶다고 말한 환자가 바로 조르조다. 살고 싶었던 의사와 살고 싶은 환자의 이야기가 하나의 수술실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내가 지키려는 것은당신이 살아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
책은 한 외과의의 손끝에 쌓인 시간도 보여준다. 프랑스와 브라질, 이스탄불과 빈에서 스승들을 찾아 배우고 수련한 나날들이다. 스승에게 받은 신뢰는 후배에게 건네는 기회로 이어지고, 환자를 지키려는 책임감은 수술실 밖의 삶을 살피는 태도로 확장된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환자가 일상을 되찾았는지, 좋아하던 일을 여전히 할 수 있는지 살피는 것까지가 그의 일이다.
뇌 안에는 누군가의 첫사랑과 아이의 이름, 오래 익힌 선율과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당신이라는 세계가 끝나지 않도록』은 그 세계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질병으로 일상이 흔들린 이들과 그 곁을 지키는 이들에게, 돌봄의 의미를 묻는 모든 독자에게 한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려는 마음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