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부르지 못한 이름, 여성노동(자)를 호명한다
정당한 항의에도 ‘빨갱이’ 소리 듣던 시절. 노동자 안순애는 1972년~1978년에 펼쳐진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 인천여성노동자회와 음성군여성농민회 활동, 농협에 여성 대의원을 도입하는 싸움을 거쳐 최초의 여성 이장으로 연임하며 여성 농민의 권익 증진에 앞장섰다. 급진적으로 느리게 살고 싶은 ‘빨간거북’, 한 여성노동자 후배가 선배 노동자 안순애를 만나 일제하, 해방 후, 산업화·민주화·정보화 과정에서 여성의 위치 및 역할을 재조명한다. 나아가 여성노동의 착취, 억압, 소외의 역사와 대물림 그리고 여성투쟁의 의미를 차근히 되짚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이 땅의 모든 여성노동자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과거와 현재 여성노동자의 만남을 통해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존재로서 여성노동자들의 빛나는 발자취를 돌아본다. 나아가 여성노동에 대한 보편성 찾기, 투명 노동자의 보이지 않는 노동, 부르지 못한 이름, 여성노동(자)를 호명하며 우리 사회 여성의 위치를 노동의 관점에서 재정립하고 여성노동(자)의 가치를 제고한다.
동일방직 안순애와 수많은 나
동일방직 민주노조 투쟁의 주역 안순애. 평양 출신 부모님이 6·25 이후 인천 만석동에 자리 잡으며 정착했다. 1남 5녀 중 셋째인 안순애는 6학년 육성회비와 졸업앨범비를 못 내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학교에서 밀려난 13살 안순애는 그 여름 바닷가에서 뜯은 파래를 우물물에 씻어 시장에 나가 팔았다. 어린 안순애는 공장노동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남동생 학비를 벌고, 어머니를 돕고, 가족이 굶지 않도록. 숟가락, 목재, 건빵, 봉제 공장 등에서 일했고, 1971년 동네 언니의 신분증을 빌려 동일방직에 입사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상징과도 같던 동일방직 노동조합. 최초의 여성 집행부 탄생은 정권과 사측을 긴장시켰다. 급기야 1978년 대의원 선거 투표에 참여하려던 여성노동자들에게 구사대가 똥물을 퍼부었다. 이른바 ‘똥물 사건’이다. 안순애는 노동조합의 대의원, 교육선전부장 활동을 하다 해고됐다. 그 당시 해고된 124명의 동일방직 노동자들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 부활절 예배 등 사람이 모이는 곳 어디든 몰려가 부당해고와 인권탄압에 끊임없이 항의했다. 숱한 구타와 연행, 구속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후 안순애는 인천여성노동자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복직투쟁을 이어갔다. 충북 음성으로 이주한 뒤에는 불량 하우스 파이프를 판 농협·군과 싸워 이기고, 시골마을 이장이 되어 버스 운행 횟수를 늘렸다. 여성농민회 활동과 더불어 여성조합원 가입을 제한했던 농협과의 싸움을 이어가면서 여성 농민들을 생산과 경제의 주체로 이끌어내는 데 앞장섰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살아낸 자의 목소리로
_‘먼저 열어본 펼침막’ 중에서(4~17쪽)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고자 애쓰는 모든 여성노동자들의 기록”
_레나(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
·“시골이라는 공간, 여성이라는 젠더, 노동자라는 계급에 관한 이야기”
_정고은(노동문학 연구자)
·“침묵 속에 갇혀 있던 목소리들, 그 빼앗긴 시간들을 위한 진혼곡”
_정숙정(대학 강사)
·“불평등에 순응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연대가 내 마음을 달군다”
_지네(고귀한 가치를 향한 연대자)
·“그들의 트라우마가 내 핏속에 우렁우렁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_호미(전국귀농운동본부 여성정책위원회 위원장)
·“거대한 담론보다 결국 삶을 바꾸는 것은 일상을 살아내는 방식”
_홍열매(우주, 여성활동가)
·“공짜나 저렴함으로 취급당한 여성 노동에 대한 증언”
_희윤(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