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성실히 살아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면, 그것은 결코 당신의 의지 탓이 아니다. 임상심리사 김경민 작가와 아마존 수석 매니저 줄리아 류 작가는, 현대인이 무한 경쟁 속에서 실패 비용을 피하고자 스스로 행동 반경을 줄이는 현상을 ‘판다 신드롬(Panda Syndrome)’이라 명명한다. 두 저자는 이 ‘조용한 멈춤’이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과열된 시대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합리적인 ‘적응 기제’임을 냉철하게 해부한다. 이 책은 끝없는 성과 압박 속에서 안전한 회피를 택한 이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주체적으로 삶의 방향을 재설정할 단단한 용기를 건넨다. 시대의 중력에 짓눌려 숨 고르기가 필요한 모든 현대인에게, 이 날카롭고도 위로가 되는 통찰의 기록을 적극 추천한다.
책 속에서
완벽해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판다는 버텨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판다는 인간이 만든 보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먹이는 공급되고, 위험은 제거되어 있다. 그 환경은 판다를 보호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감각은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 위험이 줄어든 세계. 선택의 압박이 사라진 환경. 그 안에서 판다는 안전하게 살아간다.
--- p.15
비교가 환경이 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속도로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리스크를 관리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흐려지는 것은 ‘충분함’을 선언할 수 있는 기준이다. 어제 괜찮았던 성과는 오늘 평범해 보이고, 오늘의 평균은 내일의 최소 기준이 된다. 어디까지 가야 충분한가. 이 질문은 더 이상 욕망을 묻지 않는다. 멈출 수 있는 지점을 잃어버린 조건을 드러낸다. 기준이 사라질수록 확실한 영역 안에서 움직이고, 애매한 시도는 미루며, 확신이 충분하지 않으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 p.21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결과로 이어주던 연결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다. 같은 시간 동안 준비해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충분히 성실했음에도 기회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의해 사라진다. 기준은 빠르게 바뀌고, 산업은 재편되며, 어제의 유망함은 오늘의 평균이 된다.
--- p.27
판다 신드롬(Panda Syndrome)은 과열된 조건 속에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확장의 동력을 보존 방향으로 재배치하는 적응적 감속 상태(adaptive deceleration)다. 이 정의는 하나의 사실을 전제로 한다. 사람은 멈춘 것이 아니다. 에너지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확장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확장을 보류한 상태. 이 차이가 이 개념의 출발점이다.
--- p.47
타인의 SNS는 공연의 무대다. 조명이 켜지고, 의상을 갖춰 입은 순간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무대 뒤를 살고 있다. 준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는 그 모든 과정과 함께. 비교의 고통은 대부분 이 비대칭에서 온다.
--- p.70
판다 신드롬에서 가장 중요한 회복은 속도의 회복이 아니다. 주체성의 회복이다. 내가 지금 멈추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멈추기로 선택한 것인가. 이 두 상태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회복의 출발점이다.
--- p.127
한국에서 오랫동안 상담을 하면서 사회 전체의 흐름이나 유행, 주변 사람들의 기준이 개인의 선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까지 갔는가, 지금 무엇을 해야 뒤처지지 않는가 같은 질문이 어느 순간 자신의 기준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주변 사람이 실제로 줄 수 있는 것은 ‘실패해도 관계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감각’이에요. 구체적으로는 결과를 묻지 않는 것,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것을 꺼내도 이상하지 않은 자리를 하나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조건이 바뀌면 사람은 다시 움직이거든요. 한 사람의 존재가 그 조건이 되어줄 수 있고요.
--- 「작가 인터뷰」 중에서
두려움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잘되지 않아도 다시 해볼 수 있는 것 하나를 선택해 보세요. 움직여 본 뒤에도 지금의 자리가 나에게 맞는다면 머물러도 괜찮아요. 중요한 것은 머무느냐 떠나느냐가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두려움 때문인지 나의 선택인지를 아는 거예요.
--- 「작가 인터뷰」 중에서
추천사
이 책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거나 듣는 심각한 현상에 초점을 맞춰 그 원인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신선하면서도 시의적절한 저서이다. 두 저자는 비교의 무한화, 실패 비용의 상승, 관계의 불투명성, 성과 중심주의라는 친숙한 개념을 동원해 거의 모든 연령층에 만연한 이 현상을 매우 설득력 있게 분석한다.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결코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남의 일 같지 않은 광범위한 임상 사례들과 함께 독자를 실질적으로 돕고자 하는 두 저자의 자비롭고 따뜻한 시선이 책 곳곳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우리나라 각계각층의 이른바 의견 선도자들과 20~30대 젊은이들이 많이 읽었으면 한다. 자신이 보거나 스스로 겪고 있는 이 판다 신드롬이 실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명쾌한 원인 분석과 구체적인 해결책은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안도감과 따뜻한 격려까지 느끼게 해 줄 것이다.
- 유필화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