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뇌출혈 뒤 붓을 든 어머니, 그 그림에 글을 쓴 아들]
시작은 어머니가 보낸 카톡 한 통이었다.
뇌출혈을 겪은 뒤 붓을 든 팔순의 어머니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냈다. 그림 곁에는 성경 말씀이나 짧은 당부가 따라왔다. 아령을 든 남자 그림에는 “운동하시오. 건강이 최고…”, 커피잔을 든 소녀 그림에는 “사랑하는 사람아, 이 그림 보시고 잠시 웃어봐요!”라는 말이 적혔다.
아들은 그 그림을 한 장씩 바라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매주 브런치에 올린 글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을 지나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어머니의 그림에는 꽃이 피고, 집이 있고, 자전거가 서 있다.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가 있고, 눈을 치우는 사람의 뒷모습도 있다. 아들은 꽃이 심긴 화분을 보며 “나는 누구인가”보다 “내가 심겨 있는 화분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어머니가 그린 고요한 집을 바라보며서는 평생 가족의 소란을 감싸 안아온 어머니의 삶을 생각한다.
그림이 말을 걸고, 아들이 글로 답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모자(母子)의 느린 대화가 이 책을 이룬다.
『어머니 그림』은 그림책도, 투병기도 아니다. 어머니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 어느 때, 아들이 비로소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가 아닌 한 사람의 삶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기록에 가깝다.
“그렇다. 어머니가 늙으셨다.”
책은 프롤로그의 이 한 문장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늙음을 슬픔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떨리는 손끝에서 태어난 그림에는 경제적인 고단함과 삶의 서글픔만큼이나 기쁨과 희망이 담겨 있다.
쇠약해진 몸에서도 꽃을 그리고, 집을 그리고, 웃는 사람을 그리는 어머니. 아들은 그 그림을 보며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시간을 조금씩 읽어간다.
[늙어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아들, 자라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빠]
이 책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한 지점은 저자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다. 저자는 누나 셋 아래 외아들로 자란 ‘귀남이’이면서, 늦은 나이에 결혼해 두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다. 한쪽에는 늙어가는 부모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늘 두 방향으로 향한다.
영어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는 6학년 큰아들과 실랑이를 벌인 뒤에는 자신의 삶이 아들에게 “가장 오래되고 형편없는 오답지일 수도 있다”고 돌아본다. 어머니께는 “이제는 어머니를 위해 사세요”라고 말해놓고, 돌아서는 순간 그 말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안다.
부모의 자식이자 자식의 부모가 된 중년의 자리. 『어머니 그림』의 힘은 바로 그곳에서 나온다.
그 마음이 가장 선명해지는 글은 4부 「편지」다. 세 번의 큰 수술 가운데 두 번째 수술을 마치고 맞은 생일, 어머니는 아들에게 손 편지를 보낸다. “잘난 아들.”로 시작한 편지는 “평생 불효했으니 앞으로는 기쁨과 꽃길만 걷길 바란다. 건강해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갚아라.”라는 당부를 지나 “이젠 글자도 꼴이 말이 아니네요.”로 끝난다.
아들은 편지를 읽으며 운다. 그리고 이제야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더 아프다는 말을 이해한다고 고백한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자신의 부모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시간. 많은 사람이 어느 순간 맞닥뜨리는 그 뒤늦은 깨달음이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옛 세대의 ‘아들 사랑’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누나들의 희생 위에서 귀한 아들 대접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늘날 자녀를 향한 지나친 교육열 역시 다른 얼굴을 한 맹목적인 사랑일 수 있다고 돌아본다.
사랑은 크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건네고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 질문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 있는 중년의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제목 없는 그림,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머니의 삶]
어머니의 그림에는 제목이 없다.
꽃을 그려도, 집을 그려도,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를 그려도 어머니는 그림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제목까지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아들은 스물세 편의 글을 쓰는 동안 그 ‘무제’ 앞에서 자꾸 멈춰 서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을 한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세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고, 가족의 옷을 손수 지어 입히고, 수십 년 동안 새벽마다 자식과 손주를 위해 기도해온 시간에 무슨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어머니가 그린 집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평생 가족의 웃음과 울음, 다툼과 화해를 품어온 집이다. 꽃 그림에는 해마다 마당을 꽃으로 채워온 어머니의 봄이 있고, 나란히 걷는 노부부의 그림에는 한평생 함께 늙어가는 부모의 시간이 겹쳐 있다. 그림 한 장 한 장이 어머니가 살아온 날들과 이어진다.
아들은 「무제」에서 어머니가 제목을 붙이지 않는 까닭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헤아린다. 그 ‘무제’는 “어떤 단어로도 규정할 수 없는 삶의 무게이자, 차마 다 기록할 수 없는 사랑의 깊이”라고.
『어머니 그림』은 그래서 그림을 감상하는 책이면서 한 사람의 생을 다시 읽는 책이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지나쳤던 어머니의 말과 습관, 손길과 뒷모습을 그림을 통해 하나씩 되짚는다. 자식에게는 평생 ‘어머니’였던 사람이 그보다 먼저 한 소녀였고, 한 여성이었으며,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살아낸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간다.
본문에는 어머니의 그림을 올컬러로 실었고, 부록에는 책에 미처 담지 못한 꽃 그림을 따로 모았다. 능숙하거나 세련된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떨리는 손으로도 계속 그리고 싶었던 마음, 자식에게 무언가를 건네고 싶었던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들은 말한다. “제목은 짓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가족도 어쩌면 그렇다. 사랑, 희생, 미안함 같은 몇 마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기쁜 날도 있고 서운한 날도 있지만, 그 모든 시간이 겹겹이 쌓여 한 가족만의 그림이 된다.
『어머니 그림』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자신의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직 제목을 붙이지 못한, 그러나 오래 마음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