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잘 알려졌다시피 『계몽의 변증법』은 프리드리히 폴록의 50번째 생일을 기념해 헌정된 책이며 등사본으로 헌정된 책의 제목은 『철학적 단편들』이었다. 1947년 암스테르담 소재의 출판사에서 공식적인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새로운 제목을 갖게 되었다.
폴록은 호르크하이머와 청소년기부터 우정을 나눈 친구로 호르크하이머가 쇼펜하우어와 맑스 사상을 접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는 그는 사회연구소의 설립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사회연구소 설립 후 재정과 행정을 전적으로 책임지기도 했다.
발간된 지 80년이 되어가는 『계몽의 변증법』의 현재성(Aktualitat)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계몽의 변증법』은 권위주의의 재등장과 민주주의의 위기 문제, 문화비판과 문화산업 비판, 환경 생태 위기 및 종차별주의 담론, 포퓰리즘-빅데이터 감시-가짜뉴스-알고리즘 지배 비판, 후기 자본주의 비판, 개인의 위기 담론, 인공지능 등에 의한 기술 지배 비판 등을 다루는 다양한 논의문맥에서 다시 호명되고 확장 및 변용되는 가장 현대적인 사회비판서이자 문명비판서이다.
책 속에서
인류 문명사에 개인의 자의식5)이 등장한 이래,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으로 꼽히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은 인간이 자신과 주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대응하는지 그 첫 구도를 현대인에게 알려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의 행적을 보면, 18세기 계몽주의 시기를 기점으로 인류 문명사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였다는 기존의 견해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명의 첫 단계부터 자아분열과 자기 극복의 험난함 그리고 분석 능력을 통한 자연지배 및 거듭되는 실패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전장에 나갔다가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그 ‘실패의 서사’를 펼쳐 보여주는 아도르노는 서구 문명의 역사란 인간을 개별 시민으로 주조해 내는 장치들을 발굴하고 고도화시켜 온 과정에 다름 아니라고 파악한다. 그 경과에 ‘진보’ 라는 개념을 적용하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기도 하였다. 그런데 ‘인간’을 ‘시민’으로 주조해 내는 과정에는 이중적인 힘들이 작용하고 있고, 10년 동안이
나 바닷길을 헤매는 오디세우스의 삶이야말로 그 이중성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경우에 해당한다.
신화적 반복과 그 반복 끝에 거머쥔 ‘지나왔다는 의식’. 온갖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오디세우스의 존재 이유는 이타카의 왕 그리고 페넬로페의 남편이라 는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요정들의 유혹을 받아들여 신화 상태에 동화되기도 하지만 이는 중간 거점에 불과할 뿐이다. 곧 빠져나와 다시 자기 갈 길을 간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자기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제시한 ‘계몽의 변증법’ 테제는 이른바 진보라고 일컬어지는 ‘앞으로 나아감’이 인간에게서 가장 소중할지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대가로 지불하였을 때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시민적 계몽의 공허함을 계몽하면서 그 공허함 때문에 계몽을 실행한 시민이 빠져드는 반(反)계몽의 회로를 추적하는 것이다.
--- 「『계몽의 변증법』의 현재성」 중에서
아도르노와 카시러는 동시대인으로서 다른 철학적 전통 위에서 자신들의 철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두 철학자는 나치 시대를 경험하면서 철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유대인으로 사는 삶을 강요받게 된다. 아도르노의 삶의 여정은 그스스로 유대인이라는 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잔인한 유대인의 역사적 경험을 상흔으로 간직하고 사유하는 과정이었다. 아도르노의 『미니마 모랄라아』의 부제인 상처받은 삶으로부터의 성찰은 조국인 독일에서의 국외자적 삶과 독일계 미국 망명 지식인이라는 이중적 국외자로서 삶에 붙여진 표제어이다. 유대인으로서의 강요된 삶에 대한 아도르노의 자의식은 나치의 반유대주의 근원적 설명 방식으로 심리주의와 부수적 관계를 갖는 역사철학적 설명 방식을 지향한다. 두비엘이 옳게 지적하듯이 아도르노를 포함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1930-1945년 사이의 철학을 자신들이 경험한 정치-역사적인 경험에 대한 이론적 반성1)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주장은 카시러의 삶과 철학에도 적용될 수 있다.
독일계 유대인 철학자로서 아도르노와 같이 강요된 국외자의 삶을 살아간 카시러에게서도 나치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볼 수 있다.2) 카시러는 인식론 연구자로 출발해 문화철학자, 사회철학자로의 변화 속에서 유대인 학자로서의 삶의 굴곡을 경험했다. 그는 철학자로서 명성을 얻기 이전에 이미 유대인으로서 혈통적 정체성을 강요받았다. 그는 스승이자 유대인이었던 코헨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마르부르크라는 작은 대학도시에 잠복된 반유대주의 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베를린에 머물면서 교수자격 논문을 작성했다.3) 이
러한 그의 경험은 철학자로서 인정을 받으면서부터 더 이상 경험하지 않아도 될 사건처럼 보였다.
1929년 카시러는 독일 대학 역사 이래 유대인 최초로 함부르크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의 평안한 지적 여정과 개인적 삶의 행복은 1933년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는 같은 해 4월에 나치 체제하에서 학문 활동만이 아니라 총장 직책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독일을 떠난다. 카시러는 영국을 거쳐 스웨덴, 말년에는 미국에서 망명 지식인으로서 삶을 살아간다. 본 논문이 다루게 될 그의 유작 『국가의 신화』에서 카시러는 아도르노와 비견될 만한 나치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카시러의 이 유작은 그의 삶을 둘러쌓던 나치의 사상사적 기원을 해명하고자 하는 시대 증인의 철학적 작업이라 할 수 있다.
--- 「나치즘·반유대주의 분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