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광주를 떠나니 광주가 보였다
해마다 5월이면 학교 교실에서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를 노래하는 게 일상인 곳. 광주에서 태어나고 초·중·고까지 다녔다면 골수 광주 사람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들어가니 광주 출신이라고 ‘대접’을 해 주어 으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최전방에서 낮에는 군의관으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의사로서 병원에서 일하며 겪은 더 넓은 세상은 광주에서 보고 들은 것과 영판 달랐다.
진실 하나에 눈뜨고 나니 더 많은 진실들이 잇따라 보였다. 직접 겪고 공부해 보니 대한민국 80년은 성공한 기적의 역사였고, 보수 우파야말로 인간을 위한 이념이고, 자유 민주 대한민국의 본산은 호남이었다. 호남은 속았다. 이용만 당했다. 이 개안(開眼)의 축복 또는 충격을 고향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호남대안포럼’을 만들어 활동하고, 온·오프라인에 글을 쓰고, 2024년 총선에서는 보수 정당 국민의힘의 직책을 맡고 고향 광주 지역구에 출마해 낙선했다. 낙선 이후에도 호남의 정치적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놓지 않았다.
개정판에서 정면으로 묻다- 계엄·탄핵·정권 교체, 보수의 실패
개정판에서 저자는 2024년 총선 이후의 정국을 다시 짚는다. 민주당의 검사 탄핵 추진과 특수활동비 삭감 등을 입법 독주의 사례로 비판하는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의대 증원 강행과 내부 갈등 속에서 지지 기반을 좁혔다고 평가한다. 특히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를 ‘절대 해서는 안 될 오판’으로 규정한다.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청년 지지층의 신뢰를 잃고 정권을 내준 책임을 보수 진영 스스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은 당내 계파 정치로도 이어진다. 저자는 정권 교체 후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놓고 혁신 작업에 참여했으나, 한동훈 전 대표의 광주 방문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특정 계파로 분류돼 해촉 통보를 받았다고 밝힌다. 인물의 능력이나 지역 활동보다 계파 소속을 먼저 따지는 정치가 보수의 쇄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호남의 미래를 둘러싼 또 다른 논쟁
저자의 비판은 보수 진영 내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를 향해서도 날을 세우며, 특히 호남의 미래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법제도 개편과 역사적 사건의 정치적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서 저자는 민주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명분과 그 이면의 이해관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호남의 경제 발전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이어진다. 삼성·SK의 반도체 투자 유치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 지역 발전이라는 명분이 아무리 그럴듯하더라도 기업의 자율성과 시장경제의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 보상이나 일시적인 특혜가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투자할 만한 경쟁력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호남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개정판의 핵심 제안: 호남 보수 복원을 위한 여섯 가지 전략
저자는 개정판에서 호남의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고 보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여섯 가지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단순히 호남의 지지를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수 정당 스스로 변화하고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한 실천적 방안들이다.
우선 첫째로 호남을 향한 보수 정치의 접근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5·18 민주묘지 참배와 상징적 행보에서 벗어나 기아자동차,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 광양제철소 등 지역의 산업현장을 직접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와 산업 경쟁력, 지역경제의 현안을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호남 민심을 얻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호남 출마를 전제로 비례대표 3명을 배정하고, 중량감 있는 정치인들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최소 2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둘째 전략이다.
셋째, 분열된 보수 진영의 통합도 중요한 과제로 꼽는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한동훈을 중심으로 한 세력 등이 계파와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호남에서 선거비 보전 기준인 15% 이상의 득표율을 확보하고 지역 조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보수 진영의 연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진단이다.
넷째, 호남이 본래 대한민국 건국과 보수 정치의 중요한 뿌리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살리는 일도 강조한다.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서재필, 김점곤 장군 등 호남 출신 인물들의 역사적 역할을 재조명하고, 이들을 보수 정치의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호남과 보수가 본래부터 대립하는 관계였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호남의 역사적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외연 확장이 보수의 정체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고 선을 긋는다. 다섯째, 광주 복합쇼핑몰, 대북정책, 노란봉투법 등 주요 현안에서 민주당의 입장을 답습하거나 표를 얻기 위해 정책적 소신을 타협할 것이 아니라, 자유시장경제를 비롯한 보수 우파의 가치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5·18 북한군 침투설과 비상계엄 옹호 등 호남인들의 반감과 불신을 키우는 주장에도 단호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거 없는 음모론과 극단적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호남 시민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안하는 호남 보수 복원의 핵심은 호남에 일방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 정치 스스로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데 있다. 지역의 민생을 살피고, 오랜 시간 신뢰를 쌓으며, 보수의 가치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 그것이 호남의 정치적 선택지를 넓히고 대한민국 정치의 균형을 되찾는 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재명 정부와 호남 - 반도체 투자, 여순, 5·18
비판은 여당에도 향한다. 저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광주 투자 계획을 두고 “제 고향 광주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이 지어지는 것은 당연히 찬성합니다”라면서도 “이 정책에 성적을 매긴다면 F학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쓴다. 지역마다 기업이 좋아할 조건을 내놓는 ‘공정한 경쟁’ 없이 행정 지도로 공장을 내려보내면, 훗날 기업 경쟁력이 흔들릴 때 비난을 호남이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판단해 부지를 정하고 국가가 이를 보조하는 것이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방식이라고 그는 말한다.
저자는 여순사건을 ‘반란’이 아닌 ‘항쟁’으로 부르는 흐름과 5·18의 정치적 독점도 비판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광주가 외부, 특히 젊은 세대의 눈에 더 이상 사회적 약자로 비치지 않으며, 호남 대비호남의 대립 구도가 “보이지 않는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설득의 언어를 다시 꺼내다
초판에서 저자가 내세운 방법은 대립의 언어가 아닌 ‘팩트와 논리와 존중’이었다. 광주·호남이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취를 자기 역사로 받아들이고, 보수 정당 역시 지역을 일회성 선거 전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공동체로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이번 개정판은 2024년 이후의 정치적 격변을 통과한 저자가 그 원칙을 다시 시험하는 기록이다. ‘호남이 바뀌어야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질문을 이제 ‘보수 스스로 무엇을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과 나란히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