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두 사람의 두 기억과 두 목소리,
그 대담하고도 서늘한 변주곡
여덟 살 소녀 트와일라와 로버타는 보호시설 세인트보니에서 처음 만나 같은 방을 쓴다. 대부분이 고아인 그곳에서, 트와일라는 엄마가 “밤새 춤을 추”어서, 로버타는 엄마가 아파서 이곳에 맡겨졌다. 두 아이 중 한 명은 흑인이고 한 명은 백인이다. 처음에 “완전히 다른 인종”과 방을 쓰게 된 걸 못마땅해하던 둘은 시설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고학년 아이들에게 괴롭힘당하면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한편 세인트보니의 주방에는 말을 하지 못하는 나이든 여성 매기가 있다. “피부가 연갈색”이고 “다리가 괄호 모양으로 휜” 매기 역시 고학년 아이들의 놀림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과수원에서 매기가 어떤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고, 두 소녀는 각자 그날의 기억을 품은 채 헤어진다.
시간이 흘러 고속도로변 식당의 웨이트리스가 된 트와일라는 그곳에서 우연히 로버타를 다시 만난다. 짙은 화장을 하고 두 남자와 함께 지미 헨드릭스를 만나러 간다는 로버타는 트와일라를 냉랭하게만 대한다. 다시 십이 년이 흐른 뒤 둘은 소도시 뉴버그의 고급 식료품점에서 또 마주친다. 평범하게 사는 트와일라와 달리 로버타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해 부를 누리고 있다. 그러던 그해 가을, 인종 통합을 위한 아이들의 버스 통학제를 둘러싸고 도시가 둘로 갈라진다. 두 사람은 시위 현장에서 서로 반대편 팻말을 든 채 다시 한번 마주선다.
우리를 구분짓고 또 결속하는 것들에 대한
첨예하고도 아름다운 탐구
토니 모리슨은 이 작품을 “인종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서로 다른 인종의 두 인물을 그린 서사에서 모든 인종적 암호를 제거하는 실험”이라 설명한 바 있다. 소설 속에서 트와일라와 로버타의 인종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대신 원한다면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은 곳곳에 있다. “팝콘과 초콜릿 음료”를 저녁식사로 주는 엄마는 흑인일까, 백인일까? “그들에겐 모든 게 너무 쉽”다며 투덜대는 사람은? 그러나 이러한 문답을 이어가며 느껴지는 불편함과 괴리감은 모리슨이 설계한 실험의 함정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두 인물을 재단하는 방식의 안일함을, 그럼에도 그들을 분류하고자 하는 내적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깨닫게 된다.
제이디 스미스는 소설이 한걸음 더 나아가 인종 문제의 윤리적 복합성까지 포용하고 있음을 짚어낸다. 인종이라는 범위의 ‘인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인종을 구분하는 구조 안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것들을 모조리 부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토니 모리슨의 소설에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문화는 언제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였으며, 역사 속에서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뿐만 아니라 그 반응으로서 형성된 모든 요소까지 잘 벼려낸 언어를 통해 빠짐없이 그려내는 일은 그의 과업이었다. 그리하여 「레시타티프」는 그릇된 편견을 일깨우는 단순한 사고실험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정확히 재검토하고 고통받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특정한 역사 안에서” 생겨난 “경험의 풍요로움”을 분명히 구분할 어떤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여전히 유효한 하나의 질문
그날 매기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의 진정한 미스터리는 바로 ‘매기에게 일어난 일’이다. 트와일라는 보호시설에서 가장 약한 존재로 취급되었던 매기의 인종을, 그리고 그날 과수원에서 본인이 매기를 괴롭히는 일에 어디까지 가담했는지를 끝내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어긋난 트와일라와 로버타의 기억은 결국 갈등의 불씨로 작용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들이 직접 매기를 해치지는 않았을지언정 그녀를 돕지도 않았다는 것. 그리고 차라리 그녀를 발로 차고 싶었던 마음만은 분명히 있었다는 것. 그 죄책감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매기의 인종과 그 일의 진실은 두 사람이 어느 편에 서 있는지에 따라, 그리고 두 인물이 각자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따라 매 순간 다시 쓰인다. 여기서 ‘기억’은 현재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고쳐 쓰는 ‘이야기’가 된다. 소설은 비단 개인의 기억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역사 역시 그렇다는 점을 더불어 역설한다. 인종을 구분하는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순간 독자는 트와일라와 로버타처럼 매기를 시야 밖으로 밀어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과수원 이야기의 방관자이자 공모자가 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짧은 분량 안에 계급과 인종, 기억과 우정, 약한 존재에 가해지는 침묵의 폭력까지 담아낸 「레시타티프」는 출간한 지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매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답은 이 책을 덮는 당신 안에 존재하고 있다.
추천사
모리슨은 수백 년간 흑인에게 적용된 범주에 반대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중요한 사람’이라는 범주를 강화했다. (……) 해방은 해방이다. 모든 이들 속에 있는 중요한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다.
- 제이디 스미스 (소설가)
야심차고 날카롭고 놀라울 만큼 유희적으로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 모리슨의 기민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텔링으로 한 편의 완벽하게 통제된 문학적 실험이 탄생했다.
-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레시타티프」로 돌아올 때면 새삼 깨닫는다. 모리슨은 소수의 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과 함께 ‘흑인 문화’를 그려내는 동시에 정치를, 미국의 역사를, 백인 우월주의를, 계급을, 젠더를, 세대를 잇는 트라우마에 대해 고찰한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분량은 짧지만 다른 열한 편의 장편만큼이나 강렬하고 대담하게 미국의 인종적 편견을 탐구하는 소설. 이 이야기가 쓰인 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은 누가 백인이고 누가 흑인인지를 둘러싼 난제에 어쩔 수 없이 빠져든다. 구성과 사회 비평에서 빠짐없이 영리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시의적절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아무리 추천해도 지나치지 않는 작품.
-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토니 모리슨은 작품을 통해 인종이라는 개념의 비일관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인종이 얼마나 인위적인 개념인지를 고발하는 동시에, 이 부자연스러운 범주를 중심으로 짜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이 인물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폭넓게 탐구했다. 「레시타티프」의 중심에도 역시 그러한 생각이 놓여 있다. 모리슨은 사람을 깔끔하게 분류하려는 독자의 충동에 도전하며, 장애, 젠더, 계층 같은 다른 표지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수십 년 전에 쓰였지만,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와 던지는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 C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