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지금의 세계에 잠재된 가능성을 알아차리는 감각
그리하여 현재를 낯설게 바라보는 SF 읽기의 세계
철학 연구자 김은주는 SF 장르의 오랜 팬이다. 그 때문인지 여러 지면과 매체를 통해 SF 비평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는 SF를 감각과 맞닿은 영역으로 이야기한다. 이때 감각은 단지 보고 듣고 느끼는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익숙하거나 낯설게 느끼는지의 문제다. 그리고 이는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과 관계된다. 따라서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이전에는 감지하지 못했던 존재와 관계가 드러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SF의 감각’을 말한다. SF 속 존재와 관계들이 감지시키는 낯선 감각들. SF에 등장하는 낯선 존재와 관계는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자연과 기술, 정상적인 신체와 그렇지 않은 신체를 나누어온 구분”(7쪽)을 흩뜨린다. ‘지금의 세계’에서 익숙하고 중요했던 것이 반대로 낯설어지고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세계와의 조우를 만들어내는 SF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지금 여기를 다시 낯설게 감지하게 한다. 저자는 바로 그 낯선 감지를 가능하게 하는 감각을 일깨우는 이야기로서 SF에 매혹된 듯 보인다. 그 감각으로 우리는 지금의 세계에 잠재된 가능성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변소설로서의 SF
열린 시간의 미로로 들어서기
이 책에서 SF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인 동시에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이다. 저자는 “사변은 막연한 추측이나 현실에서 벗어난 공상을 뜻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의 세계에서 출발해 이와 다른 세계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를 사유하며 질문하는 일로서의 이야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다룬다는 것은 단지 먼 미래나 어느 행성의 낯선 생명체, 신기술, 새로운 사회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사회의 조건과 관계를 다시 묻기 위해서다. ‘세계는 반드시 이러해야 할까?’ SF의 감각은 바로 그러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감각이기도 하다.
저자는 페미니즘 이론가이자 생물학자이며 그 자신처럼 SF 애호가인 도나 해러웨이의 말을 인용하며 그가 SF에 ‘지금까지(so far)’를 포함한 것을 주요하게 언급한다. “‘지금까지’라는 말에는 지금 존재하는 세계가 이미 만들어진 세계라는 사실과 함께 그것이 완료된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지금까지 이러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을까.”(11쪽) 이에 따라 저자는 여러 SF 텍스트 속에서 엿보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과 세계들을 길어올리며 열린 시간의 미로로 독자를 안내한다.
SF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만나는가
저자는 SF가 “불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것”(80쪽)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을 나란히 둔다. 페미니즘이 지금과 다른 세계를, 그러나 완전히 허황되지 않은 세계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일이라면 SF와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SF의 창시자 메리 셸리를 비롯해 국내 현대문학에서 여성 SF 작가들의 행보가 두드러지는 것도 그 이유는 아닐까.
“젠더와 신체, 종과 생명, 가족과 재생산을 둘러싼 전제를 사변의 대상으로 삼아”(12쪽)온 SF의 역사는 페미니즘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으며 때로 사고실험처럼 읽히기도 한다. 가령,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사회나, 혈연과 이성애중심 가족에서 벗어난 관계, 젠더에 고정되지 않은 신체, 다른 방식의 섹슈얼리티 등은 SF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들이다. SF와 페미니즘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무엇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삶으로 받아들여져왔는”(12쪽)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SF를 읽는 즐거움을 이러한 물음이 솟구치는 자리에서 찾지만, SF가 페미니즘 이론을 이야기로 옮겨놓는 도구는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히 짚는다. “SF는 페미니즘 사유를 펼칠 뿐 아니라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페미니즘 이론을 창출한다”(15쪽)고 말한다. 이론과 문학이 주고받는 이러한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책 속에서
SF 읽기가 깨워내는 감각
무엇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가는 신체를 둘러싼 기술과 매체의 변화에 따라 달라져왔다. 사진과 영화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움직임과 시간을 보이게 했듯이, 매체의 변화는 새로운 것을 감각하게 할 뿐 아니라 감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킨다. SF는 이러한 감각의 변화를 더욱 멀리 밀고 나간다. SF에서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은 그 세계를 이루는 존재와 관계만 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 세계를 감각하는 신체와 기술, 그리고 감각의 조건 역시 함께 달라진다. SF가 묻는 것은 다른 세계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만이 아니라 그 세계가 어떻게 감각될 수 있는가이기도 하다. (들어가며, 7쪽)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낯선 존재를 만나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무엇을 느끼고 욕망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모든 만남이 이해에 도달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신체와 욕망은 우리가 가진 언어와 개념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SF에 등장하는 낯선 신체는 이런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지 모르면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감각할 수 있다. 때로는 무엇을 이해했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무엇과 마주쳤기 때문에 이전과 다르게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한다. (1부 감각, 다르게 감지한다는 것, 20쪽)
SF와 여성의 글쓰기
여기서 여성의 글쓰기란 여성의 고유한 언어나 문체를 뜻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하나의 동일한 경험을 표현하는 글쓰기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가 말하고 쓸 수 있는지, 어떤 신체와 경험이 이야기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기존의 경계를 움직이는 글쓰기에 가깝다.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이야기들을 이어받는 일이기도 하다. (2부 SF, 여성의 글쓰기, 72~73쪽)
SF는 단지 미래에 관한 이야기일까?
미래가 현재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떨까. 아직 만나지 않은 존재와의 만남,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 서로 다른 시간과 삶의 얽힘으로 인해 현재의 방향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면 미래는 하나의 선을 따라 도착하는 시간만은 아닐 수도 있다.
선형적 시간성에서 벗어난 SF에 등장하는 미래는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답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존재와 시간이 만나 현재의 방향을 바꾼다면 어떤 세계가 생겨날까, 지어질까. 그리고 미래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미래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3부 세계와 미래, 122~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