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모든 이야기가 극복으로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장애를 다룬 이야기 앞에서 흔히 '극복'과 '기적'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를 정중히 내려놓게 한다. 윤이는 끝내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고, 자폐는 치료되지 않는다. 대신 이 가족은 자폐를 '고치는' 대신 함께 '살아내는' 법을 배운다.
저자의 문장은 꾸밈이 없지만 깊다. 아이를 잃어버릴까 대형 마트를 헤매던 날들, 성대를 다듬지 못한 아들의 삼십 분짜리 절규를 견디던 밤들, 한계에 다다랐던 아찔한 순간들이 과장 없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었다. 새벽마다 손주를 위해 기도한 할아버지, 대가 없이 아이를 가르친 선생님들, 뉴저지의 청년 예배팀 'His Friends', 각기 다른 날에 그린 도로와 사람들을 이어 붙여 한 편의 도시로 완성해 준 쉼표 교수님, 7년을 길동무가 되어 준 활동보조 선생님까지. '온 마을이 필요해'라는 5부 제목처럼, 이 책은 한 아이가 세상에서 제 자리를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선한 손길이 필요한지를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반전의 서사를 품고 있다. 27년 내내 아이를 걱정해 온 엄마가, 말 없는 아들이 실은 늘 자신을 살피고 있었음을 깨닫는 대목에 눈길이 머문다. "엄마 아빠가 행복한 모습을 보니 기쁘고 좋은 거예요"라는 한마디로 뒤집히는 이 관계는, 돌봄이 결코 일방향이 아님을 보여 준다. "엄마, 괜찮아요?"라는 아들의 안부는 곧 저자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걱정과 불안의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던 엄마가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보기로 마음먹는 결말은, 돌봄에 지친 이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발달장애 가족은 물론,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모든 부모와 돌봄의 자리에 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자폐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국내외 지원 기관 정보를 담은 부록은 실질적인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2026년 6월 인사동 아트페어에서 화가로 정식 데뷔하는 윤이의 그림처럼, 이 이야기는 자세히 볼수록 환하게 웃고 있다. '자폐여도 괜찮아'라는 위로에서 시작해 '엄마, 괜찮아요?'라는 물음에 도달하기까지, 이 책은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안부를 조용히 들려준다.
책 속에서
윤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동사무소에서 공문 한 장이 날아왔다. “자폐인의 동거인.” 자폐 진단 후, 17년 만에 ‘자폐아의 엄마’ 대신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날 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동거인. 이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 한 달이 걸렸다. 그 단어 안에 내가 오래 놓치고 있던 것이 숨어 있었다. 윤이는 내가 고쳐야 할 아이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
- 프롤로그
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신문 교육면에서 찾은 윤이 증상의 명칭은 “반응성 애착장애”였다. 아이를 할머니 댁에 보내서일까.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주지 않아서일까. 수많은 생각이 소용돌이처럼 밀려왔다. 변명과 자책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었다. 결국 하던 일을 접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윤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 이후 모든 것이 윤이 중심으로 돌아갔다.
- 아버님의 전화 한 통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물었다. 왜 이러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제발 대답해 주기를 바랐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이유를 찾지 마세요.” 이보다 더 좌절감을 주는 말이 또 있을까. 원인을 찾으면 길이 보일 것 같았다. 그런데 이유를 찾지 말라니. 자폐증은 질병이 아니라 장애라고 했다.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 이유를 찾지 마세요
달나라 같았던 미국에서 돌아온 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찾고 있던 토끼는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윤이 그 자체가 이미 완전한 존재였다는 것을.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3년여 간의 달나라 여행은 윤이를 바꾸려는 여행이었지만, 결국 나를 바꾼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 돌아오는 길, 쓰러진 아이
학원일을 열심히 하느라 윤이가 집에 있는 시간에 나는 집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학원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윤이가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마치 탯줄로 연결된 것처럼 이 아이는 내 눈치를 보고 내 감정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말은 못하지만 나를 제일 걱정해 주었다. 나는 그날에야 깨달았다. 내가 윤이를 걱정하는 만큼 윤이가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 엄마,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