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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새 차원의 시차
비기너/ 파랑계/ 광 선로/ 아키비스트/ 내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너는 기억하겠지/ 르상티망 키즈/ 금속 레코더/ 빛들과 완전/ 오래된 섬광/ 종로/ 유리 리코더―다른 방향에서 볼 때 더 빛나는/ 오래된 섬광

2부 아름다운 희망 곁에서 깨진 유릿조각을
유리 껍질/ 자연사 풍경/ 만타(萬朶)/ 크리스털글라스/ 크툴루 키즈/ 환멸과 혼상(魂箱)―희에게/ 스너프 박스/ 숲 빛 촉/ 오래된 섬광/ 동티―북향, 비판텐과 자상/ 서로 닮은 천사의 얼굴/ 백색 잉크는 늘 막힌다/ 연결 녹지/ 살림과 실체

3부 나와 가장 다른 나의 미래
인지 세계/ 여름과 공멸/ 동티―패, 호스트는 없음/ 기제/ 여름 유령 상처 장미/ 회전하는 의/ 파라텍스트/ 성전/ 초목과 양떼들―정인에게/ 우중 궤적/ 선택과 집중/ 순례자의 요일/ 광선과 율동

4부 동시대의 기쁨
회심/ 겁/ 전환과 의례/ 키치/ 알코브―희에게/ 천사와 유령의 토르소 토르소/ 모더니티/ 동티―불신자의 나라, 판정단 부재/ 모스와 바벨론/ 도형, 유령의 역사/ 나의 유령 어금니 모양/ 포인터/ 성, 모노레일과 케이블카/ 거주 공간/ 선정릉/ 음영

해설 | 루프물의 리얼리티 혹은 유령의 유물론 | 김미정(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저자 : 권누리
201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한여름 손잡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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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어느 날 깊이 잠든 너의 곁에서 눈을 감으면 마음이 쉽게 축났다

손을 겹쳐 잡아야 이루어지는 소망 같은 게 있어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곳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지옥보다 천국을 더욱 먼저 발견할 것이다
오래된 집 앞 산책로 가로등 개수보다도 먼저
_「내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너는 기억하겠지」에서

권누리의 시에서 아이들은 유령처럼 흐릿한 존재감을 지닌 채 거리를 거닌다. “종말 이후의 세계”(해설에서)를 살아가는 이들은 스스로를 “어린 불행에 대한 예감으로 감지”(「파랑계」)한다. 그 예감의 기원을 “내 자리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한 나를 손에 쥐고 주머니 깊숙이 쑤셔넣었지만 그때그때/ 필요한 나를 찾아내는 일에 실패하곤 했다”(「연결 녹지」)는 실감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어린 유령의 미래”는 “고작 인간이 되는 거라”(「여름 유령 상처 장미」)서, 이들은 “슬픔의 손톱을 먹어 겨우 사람이”(「광선과 율동」) 될 예정이다.

권누리 시 속의 아이들, 신, 유령은 모두 조금씩 중첩되고 어딘지 닮아 있다.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 그리고 종말이 곧 완결이라는 목적론적 세계의 규칙은, 이들의 세계에서 반박되고 있거나 혹은 지워져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이전 세계의 유산들은 지금 또다른 세계(놀이)의 규칙이나 동력으로 재가동되고 있다. 절대적 토대가 붕괴된 세계의 이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은 이 세계의 전제다.
_김미정 해설 「루프물의 리얼리티 혹은 유령의 유물론」에서

“작고 동그란 슬픔을 탁탁 터뜨리며” 노는 아이들은 “안녕, 이제 가/ 보낼 마음도 없이/ 인사를 하면 조금 수척해진 얼굴로 다시 초인종을 누”(「아키비스트」)르는 놀이를 반복한다. 예정된 이별을 무르고픈 마음이 ‘루프물’을 고안해낸 듯하다. 하지만 삶을 소박하게 반복하는 루프가 그들이 진정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닐 터이다. “멀리 가/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도록”(「스너프 박스」) 당부하듯 이들은 반복되는 꿈의 세계 가운데 균열을 내고 그 너머로 나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나는 너의 장래를 떠올리는 사람으로 살아간다”(「광 선로」)라고 말하며 다가올 미래를 꿋꿋이 믿는 그들의 태도가 권누리에게 있어 곧 사랑의 자세임은 자명하다.

우리 오래 살자
우리 오래 살자,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부서진 빛의 조각을 원피스 자락에 주워 담아
어디로든 갖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한여름이 정수리에 쏟아진다

투명하게 빛나는 손바닥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을 축하받고 싶다
가끔은 이 긴 꿈에서 깨어나 산 사람들에게 걱정 말라고
우리는 여전히 너희를 사랑한다고 위로 건네고
_「오래된 섬광」에서

“꿈 밖에서는 눈부신 환대를 경험한 지 너무 오래되었”(「오래된 섬광」)기에 꿈 안에 오래 잠들기로 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꿈으로 떠나와서도 여전히 미련이 남는 것들이 있다. 꿈에서 깨어나 처음 입을 떼는 것처럼 뜨문뜨문, 하지만 분명하게 “너 내가 사랑했어?” “너 나도 사랑했어?”라고 묻는 이들. “축하받으려고 너를 사랑했어”라는 말은 ‘너를 사랑하려고 태어났어’로 치환 가능하리라. 그러므로 이들이 준비하는 “태어났던 사람을 위한 케이크”(「유리 껍질」)는 우리 모두의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들이 자꾸만 “세상이 끝나는 날/ 나와 함께 있지 않을/ 사람을 골라/ 사랑하는 일”(「자연사 풍경」)은 서글프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천사에게 그들은 “여태 너를 사랑하는 일은 나의 뜻인 것만 같아”라며 “다정한 저주”(「서로 닮은 천사의 얼굴」)에 걸렸음을 고백하지만, 그럼에도 무한한 의지로 이 “골탕 먹이는 사랑을”(「광선과 율동」)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면 사랑은 “같이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것으로, “동시대의 기쁨”(「음영」)을 일깨우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햇볕 쩡쩡한 날이면 인간도 은박지 위에서 슬픔 같은 것을 모조리 말려버릴 수 있다. 냉이 꽃줄기 잎줄기 아래로 끊어지지 않도록 당겨 두 손바닥 사이 줄기 끝을 끼우고 비비면
파드득
파드득 냉이가 짤랑대고

앵두,
달려온다.

앞산 뒷산 옆산 다시 반복되는 것이 이 또랑은 고디 잡기도 좋게 얕네, 맞제.
얌전히 앉아 젖은 발을 말릴 만한 가장 너른 바위를 찾아 물가를 떠도는 게 여름방학의 우선 과제였을지 몰랐는데
_「만타(萬朶)」에서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의 사랑은 정감과 활기 가득한 언어들로부터 몸을 얻는다. 권누리의 언어는 시공간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그 안에 사람이 살 수도 있게 하는 시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튀며 나르며 공중으로 탕탕 흩어진다구!” 외칠 때 비어져나오는 이 지극히 싱그러운 명랑함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사랑하게 되”(「빛들과 완전」)었다고 고백하고 마는 사람, 즉 사랑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가진 명랑한 리듬일 것이다.
“말에 힘이 있다고” 믿는 이들은 “혼자 있지 마, 언제나 같이 있자”(「알코브」)고 말을 건넨다. 그렇게 “마른 몸을 벗어두고 소나기를 맞으러 나가기로 마음먹는” 이들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이 세계에 반복되는 종말 대신 새로운 시작, “새 여름”(「나의 유령 어금니 모양」)이 도래할 것을 함께 믿을 수 있게 된다. ‘동시대의 사랑’에 새로 이름을 붙이는 권누리의 사람들과 함께 “새 차원의 시차를 목격하는 오늘의 오후”(「내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너는 기억하겠지」)가 차츰 펼쳐지는 순간이다.

왜 따뜻함보다 차가움이 더 오래갈까
커피 담긴 잔을 만지며 생각하면

멀리 있는 사람을 오래 사랑하는 일도 이해됐다

(…)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을 더 잘 기억하고 싶어

기쁨이 있던 계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의심이 없어
무더운 여름이 오래도록 이어졌던 날

밤이면 낮에 마신 커피 때문에 잠들지 못했지만,
_「음영」에서

저자의 말

이 산책의 끝은 모조리 계획되어 있다

가벼운 어둠에도 땅을 더듬으며 간다
나란히

유원지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지
시작으로 되돌아오면 그때는 잊을 시간

헤어지기 위해서 하는 인사는 이제 관두고 싶다

나의 유일한 비밀은 비밀 없음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2025년 8월
권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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