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책 속에서
소중함을 알고 그 소중함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23쪽
부르겐란트에는 새침데기 같은 케이크보다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호밀 빵이나 숭덩숭덩 썰어낸 바게트 따위가 잘 어울린다. 27쪽
세월이 흐르며 사람에게 주름이 생기듯 찻잔에도 빙열이 생긴다는 점. 41쪽
최근에 내가 그리도 찾아 헤매던 뻔하고 평범한 모습의 스테인리스 미니 찻주전자를 구했다. 힘을 빼고 시간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느새 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46쪽
기본적으로 그릇은 깔끔하고 차분한 것이 좋다. 무엇을 담아도 어울리고 담긴 것을 더 돋보이게 한다. 49쪽
‘우리 집 주방에도 강렬한 색감의 무언가가 생겼군’ 싶어 금세 간질간질한 기분이 되었다. 51쪽
어떤 계절은 그릇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듯싶다. 59쪽
그 와중에 여전히 레이디 칼라일은 예쁘고 또 예쁘다. 이날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로 아주아주 진하게 밀크티를 끓였다. 많은 상념은 피어오르는 밀크티의 향기와 함께 사라져간다. 71쪽
그날그날의 메뉴와 기분에 맞춰 다른 식기를 사용하는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이내 마음을 돌린다. 73쪽
예쁜 그릇에 예쁘게 담아 대접받는 느낌을 누리고 싶다는 높은 차원의 바람은 아니다. 도리어 그보다는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야지’ 하는 마지노선의 느낌이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접시를 고른다. 골라봐야 그게 그거지만. 75쪽
귀여운 섬세함이 자글자글 바글바글해 지루할 틈이 없다. 79쪽
푸르스름하면서도 은근하게 회색빛이 도는 바탕에 여리여리하게 표현된 하얀 꽃무늬, 그리고 실버 림이 둘러진 이 접시는 요즘 접시들이 추구하는 차분함과는 다소 다른 느낌의 차분함을 자아낸다. 86쪽
“당신의 그릇장을 보여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89쪽
검색창에 '레녹스 빈티지'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애들은 대개 호들갑을 떨 만큼 예쁘다. 91쪽
절박한 심정으로, 한 번 먹으면 사라져 버릴 원두보다는 분명하게 오래도록 내 손에 쥘 수 있는 잔을 더 필요로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 잔을 보면 포르투갈이 생각나고 더불어 그 시절도 생각나곤 한다. 99쪽
누군가의 생활을 묵묵히 함께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107쪽
그중 내가 유독 귀여워하는 애는 넓적한 카푸치노 잔 한 가운데에 고양이가 들어앉아 있는 애다. 116쪽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좋아하는 물건들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다. 125쪽
부드러운 스펀지에 주방 세제를 묻혀 묵은 먼지를 닦아냈다. 새것처럼 깨끗하다.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깔끔하게 닦아두고 빨간 딸기를 잔뜩 올린 타르트를 만들었다. 137쪽
송편이 아코팔 아네모네에 담겨 나오는 순간은 마냥 좋았다. 141쪽
삶이란 그저 그렇게 끝없이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일이니까. 나 역시도 제디트를 손에 쥐며 잠시나마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끝없이 그릇을 모으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149쪽
하지만 혼자만 몰래 쓰는 컵의 가치란 무엇인가. 159쪽
이날은 이것에 기대어 살고, 다른 날은 저것을 덕질하며 버틸 수 있게 되면서 내 하루하루가 그럭저럭 괜찮아진다. 175쪽
남몰래 보물 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으로 고요한 새벽에 우리 집 그릇장 문을 살며시 열고 차곡차곡 정리해 둔 그릇들을 들여다보는 일도 큰 기쁨이다. 1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