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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얀 마텔 Yann Martel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다양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27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소설집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로 데뷔했고, 이후 장편소설 『셀프』 『파이 이야기』 『20세기의 셔츠』 『포르투갈의 높은 산』, 에세이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를 썼다. 2002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파이 이야기』는 전 세계 41개국에서 출간되며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얀 마텔은 이 작품으로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기독교·이슬람교·힌두교를 동시에 믿는 인도 소년 파이의 사유와 모험을 통해 ‘삶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파이 이야기』는 2013년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개봉되어 수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파이 이야기』 이후 15년 만에 완성한 또 하나의 경이로운 여정인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세 남자가 상실 이후의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신과 믿음,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 진실과 허구 등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주제를 마술적 리얼리즘을 통해 ‘마법과도 같은 서사’로 엮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소설의 운명은 반은 작가의 몫이고 반은 독자의 몫이다. 독자가 소설을 읽음으로써 작품은 하나의 인격체로 완성된다”고 말하는 마텔은 캐나다 새스커툰에서 아내 앨리스 카이퍼즈와 네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역자 : 공경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번역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서울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이 이야기』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 『비밀의 화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우리는 사랑일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스틸 미』 『프레디 머큐리』 『길가메시 서사시』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지은 책으로 북에세이 『아직도 거기, 머물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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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사랑을 잃은 우리는 무엇인가?”
존재의 버팀목을 잃어버린 극한의 상실 속에서도
끝내 삶으로 향하는 자들의 내적 투쟁의 서사


사랑이자 안식이자 생의 이유였던 ‘집’을 잃다

그가 뒤로 걷는 것이, 세상을 등지고, 신을 등지고 뒤로 걷는 것이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반발하면서 걷는다. 인생에서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긴 마당에, 반발 말고 달리 뭘 할 수 있겠는가?_22쪽


1904년 포르투갈 리스본. 일주일 만에 사랑하는 연인과 아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겪은 토마스는 가혹한 운명을 내린 신에게 ‘반발’하기 위해 1년째 뒤로 걷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미술 박물관 학예사인 그는 고문서에서 기독교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기이한 십자고상에 대한 기록을 발견한다.
십자고상을 만든 인물은 17세기 중반을 살았던 율리시스 신부로 아프리카 노예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 상투메 섬에 부임한 사제다. “하늘에 위계가 있듯 지상에도 위계가 있다”고 믿는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받던 그는 노예들의 비참과 인간의 잔학함에 치를 떨다 십자고상을 조각하기에 이르렀다. 지독히도 외롭고 고독한 와중에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집념을 불태운 율리시스 신부. 토마스는 “이곳이 집이다”라는 구절이 빼곡히 적힌 그의 일기를 읽고 ‘집’을 향한 광적인 강박에 사로잡힌 신부의 고통에 찬 열정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바로 신이 자신에게 한 짓의 대가를 치를 복수가 되리라 확신하면서.
율리시스 신부는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온갖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집’으로 귀환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토마스 역시 마차와 수레가 주를 이루던 당시에 “배기량 3,054cc의 직렬형 4기통 엔진”을 갖춘 프랑스 르노 자동차를 몰고 새로운 안식처로의 귀환을 위한 여정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희극과 비극을 가파르게 오가는 삶이라는 난장의 한복판이 생생한 감각으로 펼쳐진다.


시작과 끝,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집으로’ 향하다

모든 죽음은 살해로, 사랑하는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죠.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의 살해를 맞닥뜨리죠.
바로 자신의 죽음 말이에요. 우리 모두는 자신이 피해자인 살해 미스터리에서 살아요._198쪽

1938년 포르투갈. 새해로 넘어가는 시각, 부검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는 병원에서 두 여인의 방문을 맞이한다. 첫 번째 여인은 마리아, 바로 그의 사랑하는 아내다. 열렬한 신앙과 빛나는 지성을 가진 그녀는 복음서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미스터리 소설 간의 유사성을 비교한다. “이성은 현실적이고, 보상이 빠르고 그 작용은 명확해요. 하지만 슬프게도 이성은 맹목적이지요. 이성은 그 자체로는 우리를 어디로도 이끌지 못해요, 역경을 앞두고는 특히 그렇죠.”(200쪽) 그리고 마리아는 이성과 신앙의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문제, 즉 인간의 연약함을 구원해주기 위한 해결책이 바로 ‘이야기’임을 피력한 뒤 사라진다. 뒤이어 찾아온 또 한 명의 마리아. 아내와 같은 이름을 가진 노부인은 남편의 가방 안에 시신을 넣고 먼 길을 달려와 부검을 의뢰한다. 특이한 점은 부검을 통해 남편이 왜 죽었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려달라는 것. 에우제비우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부인의 지시대로 부검을 진행한다.
한 해의 마지막이자 새해의 첫날,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인과관계는 어느 한순간 그러한 개념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부수며 현실 너머의 환상적인 공간으로 인도한다. 또한 2부에서는 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또 다른 마리아인 노부인의 솔리로퀴(soliloque), 즉 독백에 가까운 연극적 효과를 통해 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성서, 철학, 문학을 폭넓게 넘나드는 얀 마텔 특유의 박식함과 사유는 물론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메시지가 유려하게 펼쳐지며, 1부와 3부를 교묘히 연결하는 소설적 장치로서 작용한다.


온전하고도 충만한 ‘집’을 찾아가다

오도는 그의 삶을 차지해버렸다.
피터는 침팬지의 기품에 감동받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이다._366쪽

1981년 캐나다. 상원의원 피터는 얼마 전 40년간 함께해온 아내와 사별했다. “한때는 그의 전부였던 것들. 아내, 아들, 손녀, 토론토에 사는 누이동생, 일가친척들, 친구들, 커리어―한마디로 그의 인생”(290쪽)이 사라진 자리엔 이제 아들을 제외하곤 “물질적인 유물”만이 남았다. 마침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그의 출생지이자 부모의 고향인 포르투갈 북동부의 투이젤루로 찾아간 그의 옆에는 이제 평범하지 않은 동반자인 침팬지가 함께한다. 오도는 오클라호마 출장 중에 우연히 방문한 유인원 연구소에서 만난 수컷 침팬지로, 클래라의 죽음 이후 그를 마치 “열린 문” 같은 눈으로 바라봐주었다.
피터는 오도와 지내면서 과거와 미래, 회한과 미련 속을 맴도는 인간 종인 자신과 달리, 오로지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하고, 감정의 찌꺼기 따윈 없으며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오도라는 존재에 매혹당한다. 숫자로 변환되는 시간 개념을 버리고 사분면마다 바뀌는 빛의 결에 의지하고, 침대에 눕고 의자에 앉는 대신 바닥에 주저앉아 생활하며, 수납과 정리도 침팬지 식의 독특한 정리법에 따른다. 게다가 피터는 소위 하등하다는 오도의 상태,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시간 자체를 음미하는 법, 잃어버린 행복을 갈망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오도는 그의 삶을 차지해버리고, 둘은 그 무엇도 방해하지 않는 평온 속에서 온전하고도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슬픔은 그를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이끌었다.”
사랑과 절망, 삶과 죽음, 이상과 갈망을 껴안고
나아가는 가장 인간적이고 품위 있는 여정

포르투갈의 높은 산, 즉 포르투갈 북동부 지역인 트라스 우스 몬트스엔 아이러니하게도 ‘높은 산’이 없다. 3부에서 피터가 침팬지 오도를 데리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았을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고산이 아니라 드문드문 바위가 놓인 사바나 지대다. 그렇다면 왜 ‘포르투갈의 높은 산’인 것일까? 그 아이러니한 명명법에는, 존재의 역설이, 실제적 장소라기보다는 신화적 장소, 즉 상상적 허구이고 판타지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맞닿아 있다는 놀라운 발견이 담겨 있다. 그 심원한 장소의 발견은 인류의 발전으로 인해 멸종했다고 알려진 이베리아 코뿔소의 ‘등장’과도 같이, 믿음에 대한 우리의 가치 판단 체계를 뒤흔들고 무너뜨린 뒤에야 드러나는 무엇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다름 아닌 인간의 의지라고 할 때, 인간이 한없이 연약해지는 순간은 바로 그 균형이 조화롭지 못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부서진 믿음의 실마리를, 믿음과 불신 사이의 깨어진 균형을, 나아가 존재의 구원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소설이 전하는 ‘이야기’ 안에서 우리 각자가 찾아야 할 몫일 것이다. 얀 마텔에 따르면 인간 존재의 정체성은 “이야기를 통해 나오고, 이야기를 통해 예증되며, 이야기를 통해 이해”되기 때문이다. 혼란한 상실의 세계 속, 존재의 미스터리에 담긴 놀라운 비밀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자리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한 찬사


언제나 ‘인간적인 것’과 ‘문학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의 교차점에 경이로운 상상력을 적중시키는 얀 마텔의 작업을 따라가는 일이 이제는 거의 의무처럼 느껴진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는 지혜로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파이 이야기』가 다 읽은 후에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라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읽는 중에 이미 다시 읽고 싶어지는 이야기다. _ 신형철 (문학평론가)

『파이 이야기』이후 최고작…… 단연코 얀 마텔의 소설 중 가장 매혹적인 작품이며,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기적’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_워싱턴 포스트

이 세상의 온갖 괴이하고 아름다운 일들로 가득 찬 작품…… 얀 마텔의 팬이라면 만족할 것이다. _타임스

『파이 이야기』에 뒤지지 않을 만큼 대담하고 영리하며 존재론적이고 영적인 이야기. _샌 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선하고 놀라우며 반짝이는 유머와 통찰의 순간들로 가득 찬 소설. _댈러스 모닝 뉴스

기발한 마술적 리얼리즘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그에 못지않은 슬픔의 감정이 소설 속 세 번의 여행 내내 절절하게 흐른다. 우리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_NPR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거리감이 있는 동시에 결코 끊을 수 없는 유대감 역시 존재한다는 역설을 숙고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 얀 마텔의 초현실적이며 부조리적인 글쓰기는 그런 역설을 탐사하기에 최적화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_어슐러 르 귄 (네뷸러상 수상 작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많은 지혜를 담고 있지만, 절대적 진실을 전달하려는 작품이 아니다. 진실보다는 작품 속의 미스터리,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세계의 미스터리에 대한 의식을 깨우는 데 주력하며 우리를 교묘히 비껴가는 작품이다.
_글로브 앤 메일

존재라는 미스터리를 더 없이 보잘것없게 만드는 우스꽝스러운 재앙들을 기꺼이 축하하는 동시에 삶의 비극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경지에 올랐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유머와 슬픔, 사랑과 모험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며, 인간의 정신을 통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기분 좋은 소설._북페이지

얀 마텔의 문장은 예리하고 익살스러우며, 매우 통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종교란 단지 어떤 이의 믿음 체계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 웃음거리일 수 있지만,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_더 리스트



< 줄거리>

1부 집을 잃다
1904년 리스본. 일주일 만에 아버지와 아내와 아들의 죽음을 겪은 토마스. 신에게 대항하듯 뒤로 걷기를 1년, 그는 고미술 학예사 보조로 일하던 중에 17세기 고문서에서 기독교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만한 놀라운 십자고상을 발견한다. 그곳의 소재지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 인근의 작은 교회. 모든 것을 잃고 절망과 분노만이 남은 그는 신을 향한 복수를 다짐하며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먼 길을 떠나고, 아름다웠던 과거에 사로잡혀 퇴행하던 한 남자가 새로운 안식처와 집을 향해 앞으로 질주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2부 집으로
1938년 포르투갈. 섣달 그믐날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시각, 병리학자인 에우제비우에게 한 노부인이 찾아온다.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들고 먼 길을 달려와 부검을 의뢰한다. 부검을 통해 남편이 왜 죽었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려달라는 것. 당혹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앞에는 그가 늘 다루는 죽음과도 같이 예기치 않은 미스터리에 맞닥뜨린다.

3부 집
1981년. 캐나다의 상원의원 피터는 40년간 함께해온 아내의 상실을 겪은 후 큰 슬픔에 빠져 있다. 직책도, 집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버리고 포르투갈 북부에 자리한 고향 마을 투이젤루로 찾아간 그의 옆에는 이제 평범하지 않은 동반자인 침팬지가 함께한다. 인간인 피터는 침팬지를 닮아가며 그들만의 잊지 못할 하루하루를 보낸다.



<본문 속으로>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제 그의 집은 어디에도 없고 ― 알파마의 아파트는 수도사의 방처럼 을씨년스럽다 ― 어느 집이든 발을 디디면 그의 집이 없다는 사실만 상기될 뿐이다. 애초에 율리시스 신부에게 끌린 것도 그 때문이라는 걸 토마스는 안다. 둘 다 집이 없다는 점 때문에. _35쪽

우는 습관은 얼마나 기이한가. 동물이 울던가? 분명히 동물도 슬픔을 느끼리라 ― 하지만 슬픔을 눈물로 표현할까? 그는 의심스럽다. 고양이나 개, 야생동물이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울음은 인간만의 습성인 듯하다. 그는 울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른다. 실컷, 심지어 몸부림치며 울지만, 그 마지막에는 뭐가 남는가? 황량한 피로감. 눈물 콧물에 젖은 손수건. 울었다는 걸 누구에게나 알리는 빨간 눈. 그리고 울음에는 품위가 없다. 울음은 예의범절을 초월한 개인의 언어이고, 표현 방식도 제각각이다. 얼굴 찌푸림, 눈물의 양, 흐느낌의 음색, 목소리의 높이, 소란의 크기, 안색에 미치는 영향, 손의 움직임, 취하는 포즈가 다 다르다. 사람은 오직 울 때 울음 ― 울음의 개인적 특성 ―을 발견한다. 이것은 타인에게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낯선 발견이다. _65쪽

복음서만큼 높은 도덕 수준을 보여주는 유일한 현대적 장르가 바로 저평가되는 살해 미스터리죠. 애거서 크리스티의 살해 미스터리를 복음서 위에 올려놓고 조명을 비추면, 관련성과 적합성, 합의와 동일성을 보게 되죠. 패턴이 맞아떨어지고 서사적 유사점이 드러나요. 같은 도시의 지도, 같은 존재의 비유처럼 똑같아요. 똑같이 윤리적 투명성으로 빛나요. 애거서 크리스티가 세계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인 이유도 그 때문이죠. 그녀의 매력은 성서처럼 폭넓고, 그녀의 파급력은 성서만큼이나 대단해요. 왜냐하면 크리스티는 현대의 사도, 여성 사도이기 때문이에요. 이 새로운 사도는 또한 예수가 답한 질문들과 똑같은 질문들에 대답해요. 죽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살해 미스터리는 늘 마지막에 해결되며 의혹이 말끔히 해소돼요. 우리 삶에서 죽음도 그래야만 해요. 아무리 어려워도 죽음을 해결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맥락을 살펴야 해요._198쪽

오도가 죽 끓이기 같은 간단한 인간의 기술을 터득한 반면, 피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려운 동물의 기술을 익혔다. 그는 시간이라는 경주에서 족쇄를 풀고 시간 자체를 음미하는 법을 배웠다. 피터가 판단할 수 있는 한, 오도는 바로 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마치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처음에 그는 한눈을 팔고 싶었다. 기억 속으로 빠져들어 머릿속으로 같은 영화를 돌려보고, 후회하고 조바심치며 잃어버린 행복을 갈망하곤 했다. 하지만 강변에 앉아 빛나는 휴식의 상태에 젖는 데 점점 익숙해진다. 그러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오도가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가 오도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놀랍다. 테레사의 말이 옳다. 오도는 그의 삶을 차지해버렸다. 그녀는 오도를 닦아주고 보살펴준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그 정도를 훨씬 넘어선다. 피터는 침팬지의 기품에 감동받았고,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랑이다._365~366쪽

그는 이제 눈에 보이게 오도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항상 침팬지의 존재감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무시할 수가 없다.
때로 오도를 보면 피터의 심장이 마구 뛴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이제 그는 그 감정을 두려움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유인원의 존재로부터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그의 존재에 더 향하고 싶게 만드는, 긴장의 자각에 가깝다. 왜냐하면 오도가 늘 그의 존재를 향해 다가오기 때문이다. 결국, 피터가 장담할 수 있는 건, 오도가 변함없이 방에 나타나는 게 피터가 그 방 안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도가 들어오기 전에 피터가 방 안에서 무얼 했든지 간에, 오도만큼 그의 의식을 채울 수는 없다. 늘 그를 휘어잡는 그 눈길이 있다. 언제나 줄어들지 않는 경이로움이 있다._382~3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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