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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씐 것과 쓰는 것_박인성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자 : 박민정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바비의 분위기』, 중편소설 『서독 이모』, 장편소설 『미스 플라이트』 『백년해로외전』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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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모멸과 혐오가 ‘공포’가 된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작
ANGST 시리즈의 시작 『호수와 암실』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수상작가
박민정 신작 장편소설!

“우리는 적이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도는
좀처럼 소거되지 않는 언캐니한 목소리들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유채색의 공포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그려내는 ‘ANGST(앙스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박민정의 『호수와 암실』을 출간했다.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학에서 가장 명징한 목소리를 내온 박민정 작가의 이번 신작 장편소설은 모멸과 혐오가 ‘공포’가 된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는 문제작이다. 무감각해진 우리의 인식 속으로 틈입하는 듯한 작가의 문장은, 유령처럼 우리 주위를 떠도는 좀처럼 소거되지 않는 언캐니한 목소리들로 인해 저주와 빙의로 가득 찬 오컬트적 세계가 되어버린 비정상적 일상의 풍경을 선연한 색채로 그려낸다. 그리고 어쩌면 ‘귀신과도 같은’ ‘귀신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우리에게 그 실체와 정확히 마주하고, 잃어버린 스스로를 되찾아야 한다고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감춰진 비밀을 공유하는 기억의 공간 ‘호수’와 ‘암실’

『호수와 암실』은 과거에 존재했던 공간인 ‘호수’와 ‘암실’로부터 이어지는 두 가지 기억의 궤적을 따라 전개된다. 주인공 ‘나(서연화)’는 대학 부설기관인 ‘승정원일기번역연구소’에 소속되어 고전 문헌을 번역하는 연구자다. “핼리혜성이 다시 오는 2061년 이후에도 끝나지 않을”(235쪽) 지난한 작업을 수행하며 변화 없는 나날을 보내지만 끔찍한 악몽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아상블라주처럼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반복해 떠올린다. 어린이모델 시절, 촬영 현장에서 자신을 희롱하던 스태프를 차로 치어 죽인 기억이 그것이다.
여전히 깊은 모멸감으로 남아 있는 그 기억은 시시각각 현재의 시간으로 침범해 들어오려는 두 여성의 존재로 인해 ‘현재’의 공포로 되살아난다. 촬영 현장에서 어린 자신을 학대하듯 방치한 ‘엄마’와 그 사건으로 입소하게 된 정화여학교(소년원학교)에서 만난 ‘로사’다. “예쁘고, 가난해 보이는”(64쪽) 아이들을 표적 삼아 성매매를 알선한 죄로 그곳에 오게 된 ‘로사’는 ‘나’에게 “최초로 혐오라는 감정을”(51쪽) 가르쳐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로사’와 재회하게 된 것은 ‘나’와 동류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재이’를 통해서다.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는 한물간 패션모델이 된 ‘재이’는 만 17세의 미성년 시절, 일명 ‘턱수염’이라 불리는 사진작가 앞에서 청바지만 입은 채 상반신은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화보 촬영을 했었다. 게다가 그 상태로 “길고 풍성한 머리를 늘어뜨린 채 먹기에 가장 부적절한 음식”인 “컵라면”(93쪽)까지 먹어야 했다. ‘재이’는 자신에게 모멸감을 준 세미누드 촬영을 자랑스러운 필모그래피라고 내세우는 ‘턱수염’에게 분노하지만 과거를 폭로하고 고발하는 데는 여전히 주저한다. 그런 ‘재이’에게 ‘나’는 그날 현장에서 겪은 모욕을 또렷이 기억하고, 과거의 순간과 반드시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정확하게 생각해내야 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고.” (107쪽)

“한순간에 찍히는 삶, 산산이 부서뜨려 박제하는
모멸과 정염과 절멸의 순간.”

자신을 잃고 ‘유령의 마음’으로 떠도는
공포에 점령되어가는 비일상적 세계

과거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재이’를 대신해 ‘턱수염’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 ‘나’는 인터넷 세계에 공허하게 떠도는 그의 흔적을 추적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턱수염’과 그의 동료 ‘킴’이 남성적 구조와 권위의 힘을 앞세워 상대를 얼마나 손쉽게 점령해왔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상대에게 빙의시키듯, 그를 취약하고 유순한 상태로 만들어 어떤 대항도 하지 못하게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마치 스스로를 잃고 귀신에 씐 듯, 모욕과 모멸감조차 느끼지 못한 채 떠도는 ‘유령의 상태’처럼. 그리고 그것이 비단 ‘턱수염’과 ‘킴’만의 방식이 아니라 과거에 ‘엄마’가 어린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로사’가 미성년 소녀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 ‘로사’가 ‘재이’에게 행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방식임을 깨닫는다. 이렇듯 우리는 좀처럼 소거되지 않는 언캐니한 목소리들과 언제나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작가는 ‘턱수염’과 ‘킴’이 감추고자 하는 학창 시절의 비밀스러운 공간인 ‘암실’과 ‘나’와 ‘로사’의 과거 기억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호수’라는 상징적 공간의 대비를 통해 이 이야기를 ‘남성과 여성’ ‘여성과 여성’ 간의 단순한 대결 서사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호수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을 비추는 반면, 암실은 무엇도 비출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이다.”(해설, 270쪽) ‘암실’이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공간이라면 ‘호수’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그 아래 가라앉아 있는 심연과 마주할 수 있는 ‘투영’의 공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호수와 암실』은 그렇게 거머쥔 진실을 통해 “우리의 삶과 일상이 해결하기 어려운 저주와 빙의로 가득 찬 오컬트 세계가 되어버렸음을 한탄하기보다 그 너머에 더 나은 풍경”(해설, 289쪽)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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