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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봄이 된 것은 : 바람보다 깨끗한 언어로 그려낸 제주 할망의 그림과 시
김영사 2025.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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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제주 그림할망

1 숨이 또깍 또까 차더라도
2 여기 초록 방석에 앉아서 쉬어라
3 가슴이 살락살락 탈랑탈랑

감사의 글
부록
저자 소개
엮음 : 최소연
미술가. 예술감독. 제주 선흘마을에서 ‘선흘 그림작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인류’를 만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현장 연구를 통해 다양한 언어로 문화를 소개해왔다. 워크숍, 전시, 포럼, 콘퍼런스, 예술가 레지던시 등을 설계하고 진행하며 예술과 공동체를 잇는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일대일 그림야학을 시작으로 선흘마을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왔다. 이 수업은 단순한 미술 교육을 넘어 마음과 우정, 그리고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환대와 다정의 공동체로 발전했다. 선흘 그림작업장은 ‘그림할망’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예술적 연대를 확장하고, 삶을 예술로 환원하는 실험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이곳에서 미술사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 특별한 존재인 제주 그림할망의 삶과 예술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접는미술관〉 〈명륜동에서 찾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있다. 저서로 《할머니의 그림 수업》 《난센여권》이 있으며, 《안티 젠트리피케이션》 《드로잉 괴물 정령》 《한남포럼》 등을 공동 집필했다.
홈페이지 socialmuseum.net
인스타그램 @socialmuseum.kr

그림 : 제주 그림할망
소막할망 강희선
1937년생. 2022년 동갑내기 초록할망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 막사를 개조한 미술관에서 그려낸 할망의 작품에는 고단한 삶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기도의 힘과 정성이 고요히 머물러 있다.

무지개할망 고순자
1939년생. 2022년 처음 붓을 쥐고 “이녁(나) 마음대로 그리겠다”라고 선언한 뒤, 제주 4·3 이후의 삶을 ‘무지개 바람’으로 형상화해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돌봄을 표현하고 있다.

우영팟할망 김옥순
1945년생. 우영팟(텃밭)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생명력을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텃밭이 통째로 들어간 할망의 스케치북에는 수확의 기쁨과 이웃과 나눈 추억이 기록되어 있다.

고목낭할망 김인자
1939년생. 처음 그림 그리는 순간, 꼭 고목낭(고목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만 같았다고 회상하는 할망은 여전히 60여 년 전 선흘마을 입구에 지은 집에서 생활하며 깊고 오래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무화과할망 박인수
1946년생. 귤밭 한편에서 자라난 무화과나무 한 그루에 매료되어, 무화과의 달콤함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성 복식에 관심이 많아 그림에 전통적·현대적 옷의 디테일을 살리고 있다.

신나는할망 오가자
1940년생.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몰입의 신이 된다. 신이 난 사람들에게 ‘신’이 깃드는 순간을 포착해 ‘기막힌 신들의 세계’를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우라차차할망 조수용
1930년생. 선흘에서 태어나 95년간 선흘에서 살아온 선흘마을의 정신적 지주다. 작고 빠른 몸짓과 총명한 눈빛으로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한 붓에 활기차게 담아내고 있다.

불할망 허계생
1953년생. 제주도 곳곳에 숨은 불과 관련된 신화적 이야기에 깊은 애정을 가진 할망은 해녀들이 불턱에 불을 지피듯 사람들 마음에 따뜻한 불씨를 나누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초록할망 홍태옥
1937년생. 선흘 그림할망의 시초. 제주 4·3에 불탄 집의 돌무더기 속에서 초록 싹을 틔워낸 적이 있는 할망은 생명의 소중함과 회복의 순간을 기리며 지금도 종이 위에 초록 싹을 틔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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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제주 선흘마을 할망들의 삶이 자연과 버무려져 그림으로 거듭났다. (…)
삶의 황혼길에 그림처럼 멋진 벗이 또 있을까?”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내가 가장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을 사랑했던
그 모든 순간의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눈부신 책이다.”
―정여울(《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감수성 수업》 《끝까지 쓰는 용기》 저자)

이토록 깨끗한 책이 또 있었을까?
아홉 명의 제주 그림할망이 그려낸
눈물만큼 투명한 삶의 감동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애순이’는 바다가 보이는 요양원에서 다른 노인들과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평생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애순이는 무얼 그릴지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파란 크레파스를 집어 든다. 파란 바다가 스케치북을 가득 채워가면 어느새 화면이 전환되어 시청자는 애순이와 함께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1950년대 투명하고 거칠던 제주로 초대받는다. 단 한 장의 스케치북과 크레파스가 애순이의 폭싹 속은(매우 수고한) 인생 이야기의 첫 장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여기, 애순이보다 조금 먼저 그림을 만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게 된 노년의 작가들이 있다. 바로 제주 선흘마을의 ‘찐 애순이’ 그림할망. 평생을 밭과 바다에서 골갱이(호미)를 휘두르고 점복(전복)을 찾아 헤매며 살아온 할머니들은 처음 붓을 쥐었던 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마른 고목낭(고목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만 같았지.” 겨울 지나 봄은 그렇게 조용히 찾아왔고, 새 언어를 익힌 할머니들은 지난 삶을 새로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리니까(그리니까) 배우는 기분이 들어.” “기리다 보니 커피를 잊어버리고 식어버렸다.” “새를 기리다 보니 엄마 보고 싶다. 그림 때문에 울어진다.” 눈물만큼 투명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놓았다.

할머니들에게 물감을 쥐어준 사람은 이 책의 저자 예술감독 최소연이었다. 최소연은 할머니들의 낡은 창고가 꼭 뭇 여성 화가의 작업실과 다름없어 보였다고 말한다. 일찍부터 현장 참여형 예술을 주도해온 그는 2021년 본격적으로 할머니들의 창고를 그림 작업실로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개시했다.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그림 그리기에 시큰둥한 할머니들을 매일같이 찾아가 지난밤의 안부를 묻듯 그림을 권했다. ‘그림이 할머니들의 삶을, 선흘마을의 삶을 펼쳐놓을 것이다.’ 그는 믿었고, 또 바랐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할머니들은 네 차례 단체 전시를 마친 작가가 되었고, 선흘마을은 공동체 문화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제주의 명소가 되었다. 그의 믿음과 바람이 이루어졌다.

신간 《살다 살다 봄이 된 것은》은 애순이 아이유의 방문으로 화제가 된 2025년 전시 〈폭싹 속았수다, 똘도, 어멍도, 할망도〉에 전시된 할머니들의 작품과 예술감독 최소연의 해설을 엮은 책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할머니들은 전보다 더 깊숙한 과거로 돌아갔다. 슬픔의 눈물과 환희의 눈물이 넘실거리는 과거 속에서 할머니들은 많이 울었고, 그 많은 눈물이 할머니들의 그림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삶의 감동이 눈물만큼 투명하게 담겼다. 그리고 모퉁이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어린 날의 자신과, 독자를 향한 응원을 눌러 담았다. “울지 마라. 복이 돌아와. 다시 살아진다.”

그림 속에서 자아를 찾아 신이 된 할머니들

할머니들은 그림을 그릴 때도 그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정직했다. 당신들은 오직 자신이 겪은 일상의 재료로만 이야기를 꾸렸다. 마치 그러지 않고서는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바당(바다), 점복(전복), 뭉개(문어), 배추 등을 그려나갔다. 일상의 사물만으로도 할머니들은 삶의 기쁨과 슬픔을 능히 이야기할 수 있었다. 실제 그런 삶이었다. 더없이 진실한 붓질이 계속 이어졌다.

저자 최소연은 한 가지 소재에 천착하는 할머니들의 그림 활동을 관찰하던 어느 날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그녀들을 마치 온갖 사물에 깃드는 동양의 신과 같이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날로 할머니들에게 걸맞은 신명을 붙이기로 했다. 최소연은 호명의 힘을 알고 있었다. ‘화가’라는 호명이 할머니들을 기꺼이 화가로 서게 했듯이, 새 신명이 할머니들을 여신으로 서게 해주리라 믿었다. 그렇게 우영팟(텃밭)을 그리던 김옥순 할머니는 ‘우영팟할망’이, 소막(소 막사)을 그리던 강희선 할머니는 ‘소막할망’이 되는 등 할머니들에게 새 이름이 주어졌다. 할머니들의 작가 세계에 신화가 입혀진 것이다.

바람보다 깨끗한 언어로 그려낸 제주 할망의 그림과 시

총 3부로 구성된 《살다 살다 봄이 된 것은》은 신이 된 할머니 아홉 분의 작품을 담고 있다. 1부는 고된 노동을 견디게 한 가족에 대한 사랑을, 2부는 현생의 고단함에 지쳤을 모든 이에게 전하는 응원을, 3부는 젊은 시절 가슴을 뛰게 했던 찬란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이 책의 묘미는 활기찬 그림과 함께 메시지를 전하는 할머니들의 바람보다 깨끗한 언어 감각을 느껴보는 데 있다. 마치 동시처럼 순수하게 쓰인 할머니들의 제주어를 읽고 있으면 살아서 펄떡이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뭉개를 잡으난 얼마나 기쁘냐.” “배추는 초록하다.” “사랑은 어두운 디서 이루어지는 거.” “어디로 뛰나 내가 알아. 가슴이 탈랑탈랑 뛴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 언어만의 활력은 유구한 독서 경험을 가진 독자에게도 신선한 감각을 일깨워줄 것이다.

끝으로 책 말미에서 한창 그림 작업 중인 할머니들의 ‘선흘 그림작업장’과 ‘할머니 미술관’ 현장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창고나 막사를 개조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버젓한 시설들을 통해 선흘마을의 공동체 생활이 이 프로젝트로 하여금 얼마나 큰 변화를 맞이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오늘도 할머니들은 그곳에 모여 진지한 각오로 팔 토시를 찬다. “캔버스를 땅에 눕히고 밭일하듯 허리를 굽힌 채 한 땀 한 땀 점을 찍어” 그림 그리기에 열중이다.

최재천 교수와 정여울 작가의 강력 추천
삶과 자연이 어우러진 삶에서 깨어나는 눈부신 일상의 감수성

일찍이 그림할망들과 저자 최소연의 활동에 응원을 보낸 이들도 적지 않다. 제주에 거주하는 유명인과 연예인을 비롯해 육지에서도 수많은 관객이 그들을 보기 위해 선흘마을을 찾았다. 특히 최재천 교수는 이번 신간 《살다 살다 봄이 된 것은》에 대해 “제주 선흘마을 할망들의 삶이 자연과 버무려져 그림으로 거듭났다”라며 삶과 자연이 버무려진 끝에 나온 할머니들의 그림에 대해 호평했고, 정여울 작가는 “내가 가장 뜨거운 열정으로 세상을 사랑했던 그 모든 순간의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눈부신 책이다”라고 말하며 제주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할머니들의 투명한 감수성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살다 살다 봄이 된 것은》은 문학을 읽지 않아도 얼마든지 삶을 문학적으로 살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다. 아홉 할머니들의 그림과 시는 우리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이기 앞서 자연의 언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연의 언어는 숲과 바다, 그리고 구름처럼 자유롭다. 할머니들의 언어는 속세에 진 빚이 하나도 없다는 듯 홀가분히 거닐고 헤엄치고 날아다닌다. 책장을 펼치면 이토록 순수한 제주의 언어가 독자의 마음속으로 고개를 들이밀 것이다.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끝내 삶을 긍정하고야 마는 힘을 전해줄 것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이렇게 끝난다. 어느덧 노인이 된 문학소녀 애순이에게 딸 금명이가 책을 한 권 선물해준다. 바로 애순이의 시를 엮은 시집. 애순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그 시집을 가슴에 묻는다. ‘찐 애순이’ 제주의 아홉 그림할망 역시 다르지 않다. 제 이름이 적힌 책을 이불 속에 고이 모셔두고 저마다 비단 같은 꿈을 꾼다.

마음이 아파도 몸이 아파도 살아야지
무사 밭을 놀령 시니(놀리면 쓰나)
씨를 뿌리난(뿌리니까)
초록 씨가 나완(나와)
씨가 잘 나면(잘 자라면)
마음이 편난하다(편안하다)
―초록할망 홍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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